[초점] 스마트시티의 진화…기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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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시티 운동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기술적인 요소에 초점을 맞췄다. 급속한 기술 채택과 서비스 적용을 우선시하느라 지역사회의 요구는 뒷전으로 밀렸다. 심지어 지역사회에 맞지 않는 기술도 적지 않게 도입됐다.

당시에는 주민들도 스마트시티 기술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정부나 지자체가 발표하는 청사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고 의문 부호를 달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기술적인 접근은 상당수 실패했다. 시범 프로젝트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고 계획은 도중에 중단되기 일쑤였다. 도시 전역에 설치되는 CCTV가 우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지 못했고, 거기에서 얻어지는 데이터들이 어디로 흘러 들어가고 무엇을 위해 쓰이는지에 대한 정보도 공유되지 않았다.

일상을 파고든 CCTV (사진-셔터스톡)
일상을 파고든 CCTV (사진-셔터스톡)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고로 인한 인종차별 시위가 한창일 때 영상 촬영 도구가 시위를 주도한 사람을 색출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된 안면인식 솔루션이 그렇게 사용됐다. 중국에서는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됐던 거리의 센서들이 대중은 물론 개인까지 감시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스마트시티 기술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지난해 사이드워크 랩의 토론토 퀘이사이드 스마트시티 프로젝트가 중도에 폐지됐다.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리플리카 작업도 중단됐다. 다른 주요 기술기업들도 힘을 잃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다수의 기업들이 안면인식 솔루션 개발을 포기했다. 초기 스마트시티 마니아이자 솔루션 공급 업체였던 시스코 역시 스마트시티 소프트웨어 플랫폼 사업을 접었다.

기술 혁신에 의존했던 스마트시티 진화가 ‘사람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큰 물줄기가 트렌드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조지아공대 스마트시티 이니셔티브를 책임지고 있는 데브라 람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기술 기업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주도하던 스마트시티 운동은 ‘제1의 물결’이었고 ‘기술 전쟁’에 가까웠지만 이제 제1의 물결은 마감됐다”고 분석했다. 이제는 ‘제2의 물결’이라는 람 박사의 말이다.

제2의 물결은 무작정 기술을 도입하는 것에서 벗어난다. 앞뒤를 바꾸어 도시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한다. 문제가 밝혀지면 거기에 맞는 기술과 솔루션을 찾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솔루션을 적용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주민들에게 공개하고 그들의 피드백을 받는다.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에서 주민과 지역 시민사회 단체가 포함되는 것이 일반화된 것이 이를 반영한다.

미국의 경우 휴스턴이나 보스턴 등 여러 도시들이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한 스마트시티 구축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스마트시티 챌린지에서 우승해 5년 동안 스마트시티 정책을 진행했던 콜롬버스의 여러 프로젝트 가운데 주민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던 정책은 대체로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소식은 본보 7월 7일자 ‘스마트 콜롬버스는 진정 성공한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였나’ 제하 기사와 ‘스마트시티 구축 사례’로 실렸다.

요즘 스마트시티는 ‘디지털 도시’ 개념으로도 해석된다. 도시 서비스와 시스템을 현대화하고 변화시키며 주민들에게 더 나은 접근성을 제공하는 시스템의 정착이다. 그리고 주민들의 형평성을 증진시킨다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미국에서는 인종적 차별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다.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우리나라는 아직 ‘제2의 물결’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추진단을 구성하는데, 여기에는 정부 또는 지자체 담당 공무원들과 이해가 얽힌 기업들, 학계가 참여하고 있다. 어느 프로젝트에도 주민 또는 시민이 참여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예산 집행의 투명성도 결여된다. 실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가는 뒷전이고 언론을 통한 홍보부터 시작한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한 지자체의 각종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들이 그랬다. 서울의 북촌 스마트 폐기물 등 멈춰선 프로젝트가 허다하다.

한국은 디지털 기술을 실험하고 적용하는 테스트베드이자 선도적인 서비스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래서 다수의 외국들이 한국의 프로젝트를 주시하고 있고 실제로 우리의 방법론이 수출되기도 한다. 아직 진행 중이고 실패한 프로젝트라는 비판도 있지만 송도의 지하관료를 이용한 폐기물 수집은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실패라는 비판은 원활하지 못한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생기는 악취와 폐기물 처리장의 위치 등에서 생긴 문제였다. 다시 말하면 주민들의 편리를 무시한 행정에서 비롯됐다. 민원이 빗발치자 이제야 주민의 의견을 반영한 정책을 만들어 개선하고 있다.

스마트시티 구축의 제2의 물결에 서둘러 동참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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