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고] 스마트시티의 새로운 가치 – 기술을 넘어서

산업 | 입력:

기술을 넘어 인문학 개념의 협업과 시민참여 이뤄져야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도시 공간과 정보통신기술의 만남은 이제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도시에 살게 되면서 이 만남의 정점에서 스마트시티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아젠다가 되었다. 국가마다 도시마다 각자의 상황에 맞는 스마트시티를 그려내고 있지만 이 새로운 미래도시를 통해 도시가 가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같은 꿈을 꾸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이미 거대한 흐름을 이루어 너무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어 거스를 수 없을 뿐더러 낙오자는 도태되는 운명에 처하게 될 것처럼 보인다. 20년 전 스마트시티를 태동시키며 화두가 되었던 유비쿼터스 컴퓨팅 관련 기술들은 이제 더 이상 신기술이 아니며 정보통신업계에서 주도하는 컴퓨팅 기술들만으로는 물리적인 도시공간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이끌어 갈 수 없게 되었다. 모빌리티와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기업들이 도시의 인프라를 스마트하게 만드는 기술의 융합영역에서 새로운 기회를 보고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융합된 디지털기술들은 주요 산업의 프로세스는 물론 빌딩과 공장에서 도로와 네트워크를 통해 주거단지와 캠퍼스, 시가지와 도시전체로 확산되며 주요 생활공간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국내에서는 스마트시티가 유시티의 허물을 벗고 현 정부의 4차 산업 8대 혁신 성장 동력 중 하나로 지정되면서 공간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주도하고 있다. 국가시범도시사업과 챌린지사업, 스마트시티 통합플랫폼 사업은 물론 관련기술의 R&D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많은 도시정부와 지자체들은 스마트시티를 추진하기 위한 조직을 만들고 기술기업과의 파트너십을 맺으며 스마트시티화를 통한 도시경쟁력의 키우고자 노력중이다.

그러나, 이 경쟁들은 스마트시티 사업이 중앙정부 주도의 정책과제로 추진되면서 공모사업 형태로 진행된다. 이들 공모사업은 대개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매칭 펀드로 진행되고 있으며 기존 지자체의 지리적 조건(주로 인구규모)과 재정능력이 출발선이 된다. 공공주도의 스마트시티 개발은 공공성을 확보하고 향후 도시의 운영과의 연계성 측면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고 민간기업도 스마트시티 개발과 서비스에 필요한 도시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공공이 분담하거나 지원해주길 기대한다.

공공 공모사업의 속성이나 단기간의 가시적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재정지원은 대도시나 인구규모가 큰 지역부터 순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공모에 지원하기 위한 제안서 작업에서도 전문 인력이 부족한 지자체들은 기술기업이나 컨설팅 기업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별도의 재원이 필요하다. 결국 재정상황이 좋은 도시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출발선에 서게 된다. 도시를 비롯한 국토공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회와 수단으로써 스마트시티에 대한 기대는 그 출발선에서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고 스마트시티개발을 통한 경제적 기회와 결과에서도 공간격차와 불균형이 심화되어 갈 수 있다는 위험에 처해있다.

스마트시티 개발을 위한 초기 논의에서는 스마트시티 개발에 적용할 기술들의 안정성과 경제성, 새로운 서비스 적용분야 등이 주된 논제였다면 이제 성인이 되어가는 스마트시티 논의는 이제 기술과 서비스를 통해 물리적 공간을 스마트하게 편리하게 만드는 일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기존의 도시가 가진 교통난과 환경오염, 주택문제뿐만 아니라 국토공간이 가진 오랜 난제인 지역불균형을 완화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도시로서 모두에게 행복한 도시인가에 대한 답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스마트시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중심에 있는 주체로서의 시민들의 스마트한 시민의식과 참여에 대한 예시를 보여주어야 한다. 종종 과거 유시티와 스마트시티의 구분을 ‘시민’의 참여 여부로 보기도 한다. 과거 공급자 중심의 유시티에서 벗어나 시민이 참여하는 스마트시티가 성공할 수 있는 모델로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스마트시티 개발 과정에서 쉽게 택하고 있는 시민참여 방식인 시민공청회의 개최나 인터뷰, 설문조사 정도의 절차를 수행한 것으로 스마트시티 개발에 시민이 참여했다고 말하는 것은 과거 유시티의 허물을 다시 쓰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보다 창의적이고 발전적인 진정한 시민참여방안을 찾기 위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의미 있는 비효율을 감내해야 한다.

스마트시티가 가진 미래도시로서의 가능성과 시민참여에 대한 이 두 가지 아젠다는 기술기업들이 주도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도시정부와 도시 공간을 다루는 여러 전문가, 그리고 시민과 관련된 인문사회과학의 협업으로 다뤄져야 하는 복잡하고 거대한 사회적 담론의 영역이다. 기술기업들과 건축, 토목 등의 공학영역과 사업성 분석을 위한 개발 영역 전문가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공간을 다루는 전문가와 공공부문의 종사자들, 민주적 시민의 행동과 더 나아가 인간의 행복 추구를 고민하는 인문사회과학자들의 제안과 시민의 진정한 참여를 통해서만 풀 수 있는 문제이다. 물론 스마트시티 개발의 궁극적인 목표를 새로운 아파트단지나 신도시를 만들어 공급하는 수준의 사업으로 보거나, 자율차가 다니는 스마트한 도로건설, 수출 가능한 도시개발 모델과 같은 물리적 상품으로 보는 시각에서라면 이러한 문제제기에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필자가 대학에서 스마트시티를 가르치기 시작한 지 3년 차에 접어들면서 학생들의 질문과 스마트시티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의 관심은 이제 단순히 신기술의 공간에 대한 적용과 새로운 서비스와 사례분석을 넘어섰다. 그동안의 스마트시티 사업을 통해 기술의 공간 적용과정과 새로이 등장하는 기술의 발전과 융합을 통해 도시공간과 국토공간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 지와 시민들은 그 혜택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 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 이미 스마트시티 관련 기술과 서비스의 달콤함을 맛본 시민들도 이젠 생활의 편리함을 넘어 도시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들, 역사적으로 도시가 주었던 가치들, “자유와 기회, 그리고 정의”라는 측면에서 지금의 스마트시티 개발은 얼마나 도시민의 행복에 기여하고 있는 가를 묻고 있다.

▲ 허정화 교수 - 현 국토부 스마트시티 전문위원 및 인재개발원 강사, 현 서울대학교 비전임교수(스마트도시의 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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