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나연 기자| 지난해 10월 발의된 대형마트 규제 완화 법안이 국회에 묶여 있는 사이, 2025년 만료 예정이던 영업시간 규제 연장안은 일사천리로 본회의를 통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가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이유로 규제 완화 법안을 방치하는 사이, 새벽배송 제한 규제에 묶인 원매자들로부터 투자 확약을 이끌어내지 못해 결국 매각 결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홈플러스 사태를 두고 MBK파트너스와 메리츠금융그룹의 책임론을 부각하고 있는 국회 역시 입법 공백으로 이번 파국을 부추긴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 등을 골자로 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총 4건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중 가장 먼저 발의된 법안은 지난해 10월 13일 제출됐으나 여전히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해당 개정안은 준대규모점포 규제를 폐지하고 대형마트 규제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내용이었다.

이어 올해 2월 들어 규제 완화 입법 움직임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은 2월 3일 심야영업 제한과 의무휴업 규제를 전면 폐지하는 자율화 방안을 냈고, 이틀 뒤인 2월 5일 김동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프라인 규제는 유지하되 온라인 새벽배송에 한해 제한을 면제하는 절충안을 발의했다.
관련 개정안들이 소위원회로 회부된 시점은 홈플러스 회생절차가 막바지에 이른 2026년 5월이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 5월 19일 회의를 열고 이들 3개 법안을 포함해 총 4건의 규제 완화 개정안을 법안심사소위원회로 넘겨 뒤늦게 논의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이유로 수개월째 방치되면서, 홈플러스 회생절차가 막바지에 다다를 때까지 극심한 입법 공백을 야기했다는 지적이다.
회생 절차 돌입 직후 '규제 연장' 발의…규제 완화안은 외면한 국회
반면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 일몰 조항을 연장하는 법안은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홈플러스가 심각한 경영 악화로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 개시를 신청한 날은 2025년 3월 4일이다. 그러나 국회는 홈플러스가 회생 절차에 돌입한 지 불과 보름 남짓 지난 2025년 3월 20일,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 일몰 조항을 연장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위기 기업의 영업 회복 가능성을 넓히는 규제 완화는 뒷전으로 미룬 채, 기존 규제를 더 오래 유지하겠다는 입법 논의를 가장 먼저 수면 위로 올린 것이다.
이어 같은 해 8월 28일 오세희 전 의원안이 추가로 제출됐다. 두 법안은 지난해 11월 11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 대안으로 통합된 후 이틀 만인 13일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규제 완화 법안이 방치된 것과 달리, 최초 발의 이후 불과 8개월 만에 대형마트 영업 규제 시한은 효력 상실을 10일 앞두고 2029년 11월까지로 대폭 늘어났다.
![[2214103]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https://cdn.www.smarttoday.co.kr/w496/q75/article-images/2026-07-09/61c7aede-5d08-4af0-9de6-6fa778af9a7c.png)
홈플러스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던 골든타임에 국회가 빠르게 처리한 것은 규제 완화가 아니라 규제 연장이었다. MBK파트너스와 메리츠금융그룹의 책임을 따지는 국회가 스스로의 입법 지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새벽배송 족쇄'에 흔들린 몸값…투자 확약 거부로 매각 결렬
이처럼 국회가 규제 완화를 방치하는 사이, 법원에서는 결국 회생절차 폐지라는 파국이 현실화됐다. 서울회생법원이 홈플러스 회생계획안을 관계인집회 표결에조차 부치지 않고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내린 주된 이유는 자금 조달과 매각 가능성에 대한 소명 부족이었다. 앞서 홈플러스는 37개 비핵심 점포의 영업을 중단하고 67개 핵심 점포에 집중하는 강도 높은 회생계획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 회생안이 이행되려면 최소 2000억원 규모의 신규 운영자금(DIP 금융) 조달과 잔존 사업부 매각이 필수 전제였다.
문제는 확정적인 자금 조달 근거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홈플러스는 금융기관 등의 대출·투자확약서(LOC)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고, 잔존 사업부 매각 역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소명 자료를 내놓지 못했다. 법원 입장에서는 회생계획이 실제로 이행될 가능성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 지점에서 국회의 입법 지연은 단순한 정치적 배경이 아니라, 매각 협상의 성패를 가른 핵심 변수로 작동했다. 홈플러스 잔존 사업부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은 전국 100여 개 도심 매장을 활용한 당일 및 새벽배송 인프라에 있었다. 기존 대형마트 점포를 도심형 물류거점(MFC)으로 전환할 수만 있다면, 인수 후보자는 별도의 대규모 물류센터 투자 없이도 즉시 강력한 배송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형마트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국회에 묶이면서 원매자들은 끝내 투자를 확약하지 못했다. 규제가 완화된다면 홈플러스의 점포망은 24시간 배송 인프라로 가치가 급등할 수 있었지만, 법적 제약이 유지되는 한 점포망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수 후보자들 입장에서는 향후 현금흐름을 산정할 기준 자체가 흔들려 선뜻 인수에 나서기 어려웠던 셈이다.
온라인 배송까지 묶은 2012년 유통법…11년 연속 역성장 부메랑
인수 후보자들의 발을 묶고 현금흐름 계산을 불가능하게 만든 이 규제의 뿌리는 2012년 도입된 유통산업발전법이다. 당시에 정립된 대형마트 규제의 핵심은 월 2회 의무휴업과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의 영업 제한이다. 문제는 이 제도가 오프라인 점포 영업뿐만 아니라 온라인 배송에까지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점이다. 과거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도입된 해묵은 제도가 치열한 온라인 배송 경쟁 국면에서 대형마트의 사지를 묶는 부메랑이 됐다.
지난 10여 년간 유통 시장의 패러다임은 급격히 재편됐다. 온라인 유통 플랫폼은 24시간 영업과 새벽배송을 무기로 시장을 장악하며 전체 유통 매출 비중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주류로 올라섰다. 반면 대형마트는 도심 요지의 점포와 풍부한 재고, 자체 물류망을 모두 확보하고도 심야 및 휴일 배송 경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됐다. 유통 경쟁의 추가 배송 시간과 속도로 완전히 이동했음에도 관련 제도는 여전히 2012년 오프라인 매장 규제 틀에 갇혀 있는 셈이다.

낡은 규제에 손발이 묶이면서 대형마트 매출은 제도 도입 직후부터 장기 침체의 늪에 빠졌다.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주요 유통업체 매출동향 통계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2012년 -3.3%의 성장률을 기록한 이후 2022년까지 11년 연속 역성장하는 전례 없는 부진을 겪었다. 2023년 0.5%로 일시 반등했으나 2024년 -0.8%, 2025년 -4.2%로 다시 곤두박질쳤다. 올해 2026년 들어서도 명절 효과가 반영된 2월을 제외하면 1월 -18.5%, 3월 -15.2%, 4월 -6.6%, 5월 -5.1%로 매출 감소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기업형 슈퍼마켓(SSM)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대형마트와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는 기업형 슈퍼마켓은 2021년 매출 성장률이 -9.1%까지 급감했다. 2026년 들어서도 3월 -8.6%, 4월 -6.9%, 5월 -8.0%로 매달 역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 모두 이커머스 급성장의 충격을 정면으로 맞았지만, 규제에 가로막혀 온라인 전환을 통해 대응할 최소한의 제도적 활로마저 차단당했다.
규제 면한 백화점·편의점은 고공행진…제도적 격차가 키운 양극화
반면 오프라인 규제 대상에서 비껴간 백화점과 편의점은 전혀 다른 성장 가도를 달렸다. 백화점은 2021년 24.1%, 2022년 15.8% 성장하며 코로나19 타격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자산소득 증가와 명품 수요 확대에 힘입어 2026년 2월 25.6%, 5월 24.5%라는 압도적인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편의점은 한층 더 안정적인 성장세를 구가했다. 편의점은 2014년 이후 단 한 번도 연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지 않은 채널이다. 2015년 26.5%, 2016년 18.2%의 폭발적인 고성장을 달성한 이후에도 매년 4~10% 수준의 견고한 성장률을 유지해 왔다. 2026년 5월에도 전년 동월 대비 5.9% 성장하며 순항 중이다.
이러한 오프라인 채널 간의 극명한 격차는 홈플러스 파국을 단지 개별 기업의 경영 실패나 대주주의 오판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채널들은 소비 트렌드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생존 경로를 구축했다. 반면 대형마트는 이커머스와 생존을 건 배송 전면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서조차 의무휴업과 심야 영업 제한이라는 족쇄에 묶여 있었다. 국회가 급변하는 유통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규제 체계를 방치하는 동안 대형마트 산업의 기초체력이 고갈된 것이다.
'최종 파산' 갈림길 즉시항고 시한 임박…업계 "청문회보다 입법 재개 먼저"
국회 정무위원회 등 정치권은 홈플러스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MBK파트너스와 메리츠금융그룹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추진하고 있다. 대주주의 경영 책임, 채권자의 자금 회수 구조, 회생절차 대응 과정은 당연히 따져야 할 쟁점이다. 그러나 책임 추궁이 기업과 금융회사에만 머무르면 홈플러스 사태의 구조적 원인은 감춰진다.
서울회생법원이 지난 7월 3일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내리면서 홈플러스는 현재 법적 불복 신청 기한인 14일 이내에 즉시항고를 해야 하는 벼랑 끝에 서 있다. 홈플러스가 메리츠금융그룹에 긴급 운영자금(DIP) 대출을 간청하며 마지막 승부를 벌이는 긴박한 상황에서, 국회가 스스로의 입법 지연은 외면한 채 청문회만 고집하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처사다.
오는 7월 17일에서 7월 20일 사이로 다가온 즉시항고 마감 시한까지 최소 운영자금 2000억원의 조달 확약서나 입금 증빙을 반드시 첨부해야만 항고가 받아들여지는 가혹한 조건 역시 국회가 초래한 제도적 불확실성과 무관하지 않다.
홈플러스의 최종 운명은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주채권단인 메리츠금융그룹의 자금 조달 합의 여부에 달렸다. 이번 마감 시한까지 즉시항고가 이뤄지지 않으면 회생절차 폐지가 최종 확정된다. 회생절차 폐지가 확정되면 법원은 즉시 파산 선고 기일을 지정하고 전국 매장 폐쇄와 자산 매각 등 청산 절차를 본격화할 전망이다.
반면 기한 내에 2000억원을 확보해 즉시항고에 성공하면, 법원이 스스로 기존 결정을 취소하는 재도의 고안을 통해 회생 절차가 재개된다. 이 경우 멈췄던 관계인집회 기일도 다시 지정될 수 있다.
유통업계와 금융권에서는 국회가 청문회를 통한 대주주 책임 추궁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계류 중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의 처리 방향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규모 일자리 상실과 협력업체의 연쇄 피해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결국 규제 완화에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가 온라인 배송 영역에서만큼은 이커머스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국회가 조속히 법안 심사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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