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우세현 기자|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가 삼성전자와 TSMC의 반도체 생산 생산 확장 속도가 자사의 요구치에 미치지 못한다며 독자적인 첨단 반도체 생산 기지인 '테라팹' 구축을 선언했다. 하지만 반도체 제조의 핵심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물리적 공급 한계를 고려할 때, 수직계열화를 통해 연간 1테라와트(TW) 규모의 컴퓨팅 칩을 자급하겠다는 그의 원대한 계획은 당장 실현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현지시간) 머스크는 미국 오스틴에서 연간 1TW 규모의 인공지능(AI) 연산 처리를 위한 칩을 자체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테라와트 단위의 전력과 팹(반도체 생산공장)을 합성한 테라팹 프로젝트를 통해 칩 설계부터 생산, 테스트, 패키징까지 한 건물에서 끝내는 수직계열화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기존 공급사인 삼성전자나 TSMC 등이 최선을 다해 설비를 늘리고 있지만 자사가 원하는 우주용 AI 칩 물량을 대기에는 역부족이라며, 우주 공간의 무한한 태양광을 활용해 연산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장기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연간 70대 생산 vs 3500대의 수요
그러나 글로벌 반도체 장비 생태계의 병목 현상을 짚어보면 머스크의 호언장담은 장벽에 부딪힌다. 반도체 전문 분석기관 세미애널리시스의 딜런 파텔 수석 분석가에 따르면, 글로벌 AI 연산력 확장의 최종 병목은 전력이나 데이터센터 건설이 아닌 네덜란드 장비업체 ASML이 독점 생산하는 EUV 장비다. EUV는 극자외선 파장을 이용해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 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단위의 초미세 회로를 그려 넣는 첨단 기기로, 최신 AI 칩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설비다.

파텔의 분석을 종합하면 연간 1기가와트(GW) 규모의 AI 연산용 칩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약 3.5대의 EUV 장비가 필요하다. 이를 머스크가 목표로 제시한 연간 1TW, 즉 1000GW에 대입하면 산술적으로 무려 3500대의 EUV 장비가 독점적으로 투입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문제는 3500대라는 숫자가 현재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체급으로는 소화가 불가능한 허수라는 점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EUV를 만드는 ASML의 연간 생산 능력은 70대 남짓에 불과하다. 부품 공급망을 최대로 가동해도 2030년에 연간 100대 수준에 도달할 전망이다. 단순 산수로 따져보면 필요한 장비를 확보하는 데에만도 최소 35년에서 50년이 걸리는 셈이다.
ASML이 EUV 장비의 생산량을 단기간에 두 배 이상 늘리지 못하는 이유는 장비 자체의 극악한 난도와 복잡성에 있다. EUV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만 10만 개가 넘는다. 특히 빛을 반사해 회로를 그리는 데 쓰이는 독일 칼자이스의 초정밀 렌즈 시스템이나 고출력 레이저를 쏘는 트룸프의 발광 장치 등은 수작업에 가까운 공정을 거친다. 1단위 나노미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부품을 깎아내기 위해 협력사 직원 수천 명이 매달려야 하는 구조다.

이런 한계 탓에 ASML이 공식 자료를 통해 제시하는 연간 글로벌 EUV 캐파(Capacity·생산 역량) 증가율은 25% 수준에 머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ASML이 정의하는 생산 역량이 단순히 '물리적 장비 대수'의 증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생산 대수에 장비당 웨이퍼 처리량(Throughput), 그리고 기계 가동률(Availability)의 성능 향상분까지 모두 곱해진 종합적인 수치다.
가장 긍정적인 시나리오를 적용해 글로벌 EUV 생산 역량 전체가 매년 25%씩 꺾임 없이 복리로 우상향한다고 가정해 보자. 현재 전 세계 AI 연산용 칩 생산량이 연간 20GW 수준인데, 머스크의 목표인 1TW를 맞추려면 지금보다 생산 역량이 50배 커져야 한다. 매년 25%씩 팽창해도 이 50배의 격차를 좁히는 데는 산술적으로 약 18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다.
향후 장비 성능이 개선돼 1TW 달성에 필요한 기계 대수가 현재 추산치인 3500대보다 줄어든다 하더라도, 이는 그해 쏟아져 나온 전 세계 반도체 역량을 테슬라 단일 기업이 100% 싹쓸이해야만 달성 가능한 수치다.
현재 생산되는 EUV 장비는 TSMC, 삼성전자, 인텔,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반도체 거인들이 스마트폰, PC, 일반 서버용 칩을 만들기 위해 이미 수년 치 물량을 선주문해 둔 상태다. 신규 진입자인 테슬라가 수십조 원의 웃돈을 얹어준다 한들, 기존 고객사와의 장기 계약을 깨고 새치기하는 것은 상거래 관행상 불가능하다.
설계와 마스크 제작을 한 건물에서 신속하게 반복하겠다는 머스크의 아이디어는 혁신적일 수 있으나, 그 기초가 되는 수백 개의 초정밀 부품 협력사들을 단일 기업이 내부화하거나 속도를 통제하겠다는 것은 제조업의 현실을 간과한 발상이다.
EUV 확보한다고 해도 수율의 장벽 남아있어
심지어 3500대라는 아득한 숫자는 오직 첨단 로직 반도체를 찍어내는 데 필요한 노광장비 하나만 떼어놓고 계산한 최상의 시나리오다. 실제 연간 1TW 규모의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려면 칩 생산을 넘어 천문학적인 전력 인프라 구축, AI 연산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의 원활한 조달, 그리고 이들을 하나로 묶는 첨단 패키징 공정까지 수많은 병목을 동시에 뚫어내야 한다.

생산 라인을 선제적으로 구축하더라도 안정적인 수율(결함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을 확보하는 것은 또 다른 난관이다. 세계 최고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조차 미국 애리조나 공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현지의 숙련된 엔지니어 부족으로 오랜 기간 진통을 겪었다. 반도체 제조는 수천 단계의 화학적, 광학적 공정을 미세하게 제어할 전문가들이 필수적이므로, 테슬라가 단기간에 최고 수준의 나노 공정 노하우를 완벽히 습득하기는 쉽지 않다.
즉, EUV 장비 부족이라는 치명적 아킬레스건에 더해 전력과 메모리, 패키징 등 겹겹이 쌓인 산업 생태계의 한계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머스크가 꿈꾸는 테라팹의 완성 시기는 여기서 더 지연됐으면 지연됐지, 결코 앞당겨지기는 힘들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종합해 보면 머스크의 테라팹 구상은 우주 공간을 활용해 전력 한계를 극복하고 AI 연산력을 비약적으로 높이겠다는 혁신적이고 궁극적인 장기 비전임은 분명하다. 다만 대당 수천억 원에 달하는 장비를 수천 대 확보해야 하는 물리적 시간, 수만 명의 전문 인력을 단기간에 양성해야 하는 반도체 생태계의 굳건한 진입 장벽을 고려할 때 당장의 실현은 불가능에 가깝다. 수십 년에 걸친 인내와 천문학적인 자본 투자가 꾸준히 선행되어야만 그가 꿈꾸는 우주 시대의 반도체 자급 비전이 비로소 현실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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