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우세현 기자| 인공지능(AI) 반도체 칩의 비약적인 진화 속도를 물리적인 데이터센터 건축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 발생하는 '시간 괴리'가 글로벌 인프라 투자 시장에 치명적인 딜레마를 낳고 있다.
너무 빠른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독
9일(현지시간) CN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챗GPT 개발사인 오픈AI는 최근 이 같은 기술 세대교체의 시차를 이유로 거대 클라우드 기업 오라클과 텍사스주 애빌린에서 진행하던 '스타게이트' 데이터센터 확장 파트너십을 전격 축소하기로 했다. 수년 전 맺은 천문학적인 인프라 투자 계약이, 정작 시설 완공 시점에는 이미 한물간 구형 하드웨어를 끌어안는 족쇄로 전락하는 'AI 투자의 역설'이 현실화한 것이다.
오픈AI가 막대한 매몰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텍사스 확장을 포기한 이유는 명확하다. 해당 데이터센터는 엔비디아의 최신 칩인 '블랙웰'을 기반으로 설계돼 앞으로 1년 뒤에나 실제 전력이 공급될 예정이었다. 문제는 엔비디아의 칩 출시 주기가 과거 2년에서 최근 1년으로 단축됐다는 점이다. 엔비디아는 이미 지난 1월 블랙웰보다 추론 성능이 5배나 뛰어난 차세대 칩 '베라 루빈'을 발표하고 생산에 돌입했다. 추론이란 이미 학습을 마친 AI가 사용자의 새로운 질문에 답변을 내놓는 과정을 뜻한다.
부지 확보부터 전력망 연결, 실제 시설 완공까지 최소 1년에서 24개월이 걸리는 데이터센터 구축 현실을 감안하면, 애빌린 데이터센터가 가동될 때쯤이면 이미 구형 칩을 쓰는 낡은 시설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AI 모델의 미세한 성능 차이가 개발자들의 선택을 가르고 기업가치로 직결되는 시장에서, 오픈AI 입장에서는 1년 뒤에 완공될 시설에 굳이 구형 칩을 쓸 이유가 없다.
현금 넉넉한 하이퍼스케일러, 부채에 허덕이는 오라클
이러한 기술 발전과 인프라 구축 사이의 시차는 빚을 내어 무리하게 덩치를 키워온 오라클에게 뼈아픈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은 막대한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인프라를 구축한다. 반면 오라클은 현재 1000억 달러(약 147조 원)가 넘는 빚을 끌어다 AI 인프라에 투자하고 있다. 자체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현금으로 투자를 감당하는 경쟁사들과 달리, 전적으로 부채에 의존하는 오라클은 구형 장비의 감가상각 리스크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라클의 자금줄 역할을 하던 핵심 파트너사마저 등을 돌리면서 재무 건전성 우려는 극에 달하고 있다. 최근 대체투자 전문 운용사인 블루 아울 캐피탈은 오라클의 잉여현금흐름 악화와 부채 증가를 우려해 미시간주에서 추진되던 100억 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을 철회했다. 잉여현금흐름은 기업이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돈에서 세금과 설비투자 비용을 빼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현금을 뜻하는데, 현재 오라클은 이 지표마저 마이너스로 돌아선 상태다.
자금 압박이 한계에 달한 오라클은 현금 확보를 위해 최대 3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구조조정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지난해 9월 고점을 찍었던 오라클의 주가는 현재 절반 수준으로 폭락했으며, 올해 들어서만 22% 급락했다.
당장 시장은 화요일에 발표될 오라클의 회계연도 3분기 실적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500억 달러 규모의 자본 지출 계획을 마이너스 현금흐름 상태에서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붕괴하는 자금 조달 파이프라인을 어떻게 복구할 것인지가 핵심 관건이다.
결국 이번 오픈AI와 오라클의 결별은 단순히 한 건의 계약 무산을 넘어, 글로벌 AI 생태계 전반에 숨어있던 거대한 리스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눈부신 칩 기술의 발전 속도가 역설적으로 AI 인프라 확장을 갉아먹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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