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우토반' 질주하던 서학개미, '어린이 보호구역'으론 못 부른다

오피니언 | 김나연  기자 |입력

서학개미 75%는 '초단타·레버리지'… 고점 락업·손절 페널티 겹쳐 '계륵' 전락

|스마트투데이=김나연 기자| 정부는 서학개미를 단순히 '잠시 떠난 집토끼'로 진단했지만, 현실의 그들은 수익을 좇아 국경을 넘나드는 '거친 야생마'였다. 자본의 이탈 속도도 빠르다. 2023년 100억달러, 2024년 250억달러였던 개인 투자자의 해외 증권 순유출 규모는 2025년 525억달러(약 70조원)로 수직 상승했다. 불과 2년 만에 이탈 규모가 5배 넘게 폭증한 것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달러 인덱스와 괴리된 채 고공 행진을 이어가는 배경에도 서학개미들의 거센 해외 투자 수요가 원화 가치를 짓누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다급해진 정부가 세제 혜택을 미끼로 한 '국내 시장 복귀계좌(RIA)'를 내놨지만, 업계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정부 설계안이 70조원을 움직이는 서학개미들의 투자 패턴을 전혀 읽지 못한 채 동상이몽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룰이 다른데 입장료를 깎아준다고 해서 라스베이거스에 있던 자금이 동네 도서관으로 돌아올 리 만무하다.

● 고빈도 매매가 75%···'손절 페널티' 주는 RIA 산식

30일 예탁결제원 세이브로의 2025년 결제대금 상위 50개 종목 데이터를 전수 분석한 결과, 서학개미 시장은 '고빈도 매매'와 '장기 투자'로 극명하게 갈렸다. 전체 결제액 4653억1300만달러 중 75.3%인 3504억4800만달러가 고빈도 매매 그룹에서 나왔다. 서학개미 자금 100달러 중 75달러는 장기 투자가 아니라 찰나의 시세 차익을 노린 휘발성 거래에 쓰였다는 뜻이다.

이들 고빈도 매매 그룹(34개 종목)의 평균 회전강도는 100배를 웃돈다. 1달러를 계좌에 남기기 위해 100달러어치를 사고팔았다는 얘기다. 파생 상품이 본주를 압도하는 '웩더독(Wag the dog)' 현상도 뚜렷하다. 테슬라 2배 레버리지인 TSLL의 거래 규모(약 349억달러)는 테슬라 본주(약 433억달러)의 80%에 육박했고, 반도체 3배 레버리지인 SOXL(458억달러)은 시총 1위 엔비디아(262억달러)의 1.7배를 기록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특히 거래강도 1위인 TSLL의 회전강도가 무려 453.5배에 달한다는 점은 이 시장의 주류가 평균 보유 기간이 극히 짧은 '스캘핑(Scalping)' 자금임을 방증한다. 문제는 RIA의 세제 혜택 감면 기준 산정 방식에 숨어있는 함정이다. 정부는 양도소득세 공제비율을 조정할 때 'RIA 외 해외주식 순매수금액'을 'RIA 내 해외주식 매도금액'으로 나눈 비율만큼 차감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분자에 들어가는 '순매수'라는 표현이 걸림돌이다.

가령 1억원을 투자했다가 30% 손실을 확정 짓고 7000만원에 전량 매도한 상황을 가정해 보자. 투자자의 계좌에는 해당 주식이 단 한 주도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현재의 기계적인 산식(매수 1억-매도 7000만)을 대입하면 이 투자자가 여전히 '3000만원어치를 순매수 중'인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실제 자산은 공중분해 됐는데 전산상으로는 혜택 한도를 갉아먹는 '유령 잔고'가 남는 셈이다. 손실 금액만큼 세제 혜택 한도까지 차감당하는 구조적 모순이다.

● 코스피 신고가 행진 역설···'1년 락업'은 유인책 아닌 페널티

그렇다면 진득하게 주식을 모아가는 '장기 투자 그룹'은 돌아올까? 이마저도 회의적이다. 서학개미 대표 장기 보유 종목인 아이온큐(20.4배)를 투자자들이 계속 붙잡고 있는 이유는 세금 몇 푼이 아니라 특정 기업의 폭발적인 성장에 대한 강력한 '확신(Conviction)'이다. 이들에게 "국내 주식을 사서 1년 의무 보유하면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제안은 매력적일 리 없다.

더구나 최근 코스피의 파죽지세가 역설적으로 RIA의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다. 지난 23일 장중 5000 시대를 연 코스피는 30일 종가 기준 5224.36을 기록하며 역사적 신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남은 상승 여력이다. 주요 증권사 6곳이 전망한 연내 코스피 상단은 5300~5700선에 집중됐다. 현재 지수와 비교하면 추가 상승 여력은 한 뼘 남짓이다. 투자자들에게 이미 '머리' 꼭대기에 다다른 지수에 자금을 1년간 묶어두라는 건 세제 혜택을 담보로 막대한 '상투 리스크'를 떠안으라는 강요와 다름없다.

결국 지금의 RIA는 레버리지 트레이더에게는 '손절 페널티'를, 장기 투자자에게는 '기회비용'을 안겨주는 계륵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개별종목 2배 레버리지 ETF 허용과 같은 파격적인 유인책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RIA는 일부 배당주 투자자들의 '절세 통장'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시장을 이기는 정책은 없다. 서학개미들이 왜 밤잠을 설치며 미국장을 지키는지 본질적인 욕망을 읽지 못한다면 자본 리쇼어링은 요원한 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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