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관치 칼바람 앞에 선 주요 금융지주사들이 올해 사상 최대 실적에도 웃음기가 싹 빠진 모양새다. 내년도 사업 계획을 위한 빅 이벤트인 연말 인사에서 변화와 혁신 대신 안정을 택했다. 은행권을 둘러싼 대외 환경이 그만큼 녹록치 못하다는 점을 방증하고 있다.
올 연말 금융권 인사의 골자는 호실적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다가올 위기에 대한 대비책 마련이다.
◇"전쟁 중" 연임 택한 신한·하나·우리
4대 금융지주회사 중에서 신한, 하나, 우리가 일제히 연말 인사에서 주요 계열사 사장을 상당부분 유임시켰다. 새해 은행 안팎의 경영 환경이 그만큼 녹록치 못하다는 강한 위기 의식에서 울며겨자먹기식 카드를 고른 것이다.
신한금융은 자회사 사장 9명을 모두 연임시켰다. 하나금융은 임기를 마친 최고경영자(CEO) 10명 중 7명을 재차 기용했다.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대체투자자산운용 등 비은행권 수장만 제한적으로 교체했다.
지난 3월 출범한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우리은행장과 계열사 사장단을 모두 교체했기 때문에 우리금융의 연말 인사도 조직 개편과 직위 손질에 초점을 맞췄을 뿐 이렇다할 변화는 없었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위기 속에서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격언처럼 CEO 교체보다 연임으로 책임경영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했다"는 말에 속사정이 엿보인다.
주요 금융지주사들이 일제히 현 상황을 '전시'로 인식한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서 불거진 횡재세 등 경제 밖 상황까지 고려된 선택으로 풀이된다.
설상가상. 과거 어느 때보다 감독당국의 입김이 거센 데다 금리 변동성,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등 다양한 난제가 산적해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금융 수장들은 조직 추스르기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실적 좋은 CEO가 연임하는 것은 당연한 거고, 내년 어려움이 예상되고 부동산 PF 이슈도 있고,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계속 맡아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세대 교체한 KB..주력계열사는 그대로
올해 4대 금융지주 중에서 KB, 신한, 우리 3곳의 수장이 바뀌었지만, 연말 인사에서 변화폭이 가장 큰 곳은 선두주자 KB금융이다.
KB금융만 계열사 사장 9명 중 6명을 물갈이했다.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11월 취임한 까닭에 이유 있는 세대 교체다.
하지만 인사 내용을 뜯어 보면 주력 계열사 대표들은 그대로 기용해 조직 안정에 초점을 맞췄다. 양 회장은 취임 직후 이재근 KB국민은행 은행장을 연임시킨 데 이어 이창권 KB국민카드 사장도 다시 선임했다.
불가피하게 라임펀드 징계로 당국과 법적 분쟁 중인 박정림 KB증권 WM(자산관리) 부문 대표를 이홍구 부사장으로 교체하면서, 각자 대표인 김성현 IB(투자은행) 부문 대표를 5년째 기용했다. 즉 주력 계열사에 조직 안정을, 나머지 계열사에 세대 교체를 염두에 두고, 투 트랙으로 포석을 깔았다.
◇지주 부회장제 역사 속으로?
안정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감독 당국이 지주회사 쇄신을 압박한 것도 배경이다. 차기 금융지주 회장감이라는 부회장직도 존폐 기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폐쇄적인 부회장제 손질을 주문한 만큼 금융지주회사에서 부회장 직제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12일 8개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과 만나 "선의를 갖고 부회장 제도를 운영하는 건 좋지만 (외부 후보가) 현 회장이나 행장 등 유리한 사람들의 들러리를 서는 게 아닌가 하는 형태로 선임절차가 진행되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4대 지주사 중에서 부회장직이 없는 곳은 신한과 우리다. KB와 하나도 고심하지만, 이 원장이 직접 언급한 DGB금융을 비롯한 지방은행 지주사들이 더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실제로 당국의 내부통제 강화 주문에 DGB금융은 주식 1주를 보유한 주주 1인당 사회이사 후보 1명을 추천하게 하기로 했고, BNK경남은행은 윤리경영부를 신설했다.
한편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낸 4대 금융지주는 올해도 그에 못지 않은 실적을 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KB금융그룹은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당기순이익 4조 3460억 원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 증가했다.
신한금융의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3조 8183억 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지난해보다 11% 감소했다. 하나금융은 전년 대비 4% 증가한 2조 9779억 원을 기록했다. 우리금융은 2조 4383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8%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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