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박재형 기자| “오늘은 자동차 원청사와 하청사, 부품사 동지들이 처음으로 연대해 공동 파업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
박상만 전국금속노동조합 위원장이 단상에 올라 이같이 외치자 집회에 참여한 조합원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 위원장은 현대차·기아뿐 아니라 부품사와 하청 노동자들을 향해 “고맙고 감사드린다”며 공동 투쟁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날 금속노조는 현대차 본사 앞에서 ‘자동차 업종 공동 파업 대회’를 열었다. 현대차와 기아 등 완성차 사업장뿐 아니라 자동차 부품사와 하청 노동자들이 함께 참여했다.
박 위원장은 이번 파업을 현대차만의 임금·단체협상 문제로 한정하지 않았다.
그는 “오늘 투쟁은 현대차만의 투쟁이 아니다”라며 원청 교섭과 납품단가 문제 등을 언급하고, “이제는 원·하청이 함께 연대해서 힘차게 투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오는 26일 2차 완성사·부품사·하청사 공동 파업에 나서자고 제안했다.
21일 현대차 노조 8시간 전면파업
이처럼 완성차와 부품·하청 노동자까지 공동 행동에 나선 상황에서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이날 8시간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현대차지부가 전면파업에 나선 것은 2016년 이후 10년 만이다.
앞서 현대차 노조는 19일과 20일 각각 4시간 부분파업을 벌인 데 이어 이날 파업 수위를 전면파업으로 높였다. 오는 24일과 25일에도 각각 4시간 부분파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달 8일 15차 교섭 이후 41일 만인 지난 18일 사측과 16차 교섭을 재개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노조는 사측이 진전된 협상안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파업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스마트투데이에 “(협상안이)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회사가) 물러서지 않는 식이다 보니 교섭이 안되고 있다”고 밝혔다.
정년 연장·상여금 놓고 노사 평행선...전문가 "통상 교섭 범위 넘어"
실제 현대차 노사는 올해 임금협상을 두고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기본급 14만9600원 인상과 전년도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상여금 750%에서 800%로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국민연금 수급 시기와 연동한 정년 최장 65세 연장과 해고자 원직복직 및 손해배상·가압류 철회, 완전월급제 시행, 신규 인력 충원, 인공지능(AI)·로봇 도입에 따른 고용·노동조건 보장 등도 요구안에 담았다.
회사 측은 지난달 8일 15차 교섭에서 기본급 8만9000원 인상과 성과급 350%+1000만원, 자사주 15주 지급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노조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지난 18일 교섭에서 임금과 상여금에 대한 추가 제시안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회사 측은 해고자 문제는 연말에 복직 여부를 논의하고, 정년 연장은 관련 법 개정 즉시 보충협약을 통해 시행 시기를 논의하자는 안을 내놨다.
노조는 이 역시 수용하지 않았다. 정년 연장과 해고자 복직 문제를 당장 해결하지 않은 채 논의를 뒤로 미루는 수준에 그쳤다는 판단이다.
상여금 인상을 둘러싼 입장 차이도 크다.
노조는 현대차의 사내유보금이 2007년 11조4000억원에서 지난해 101조3000억원으로 늘었다는 점을 근거로 회사의 지급 여력이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년 연장 역시 핵심 쟁점이다. 노조는 정년을 2년 연장하더라도 연간 추가 비용이 최대 1800억원 수준이라며 회사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회사는 정년 연장 문제는 개별 기업의 노사협상만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 법·제도 개편 등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에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파업의 목적이 통상적인 임금 교섭의 범위를 넘어서 순이익 30% 성과급이 거론된다. 대통령도 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할 정도인데 이슈가 된 상황이고, 정년 연장 등 이슈도 거론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정적인 건 해고자 복직 문제인데 이게 과연 쟁의 대상인지 의문이 든다. 해고가 확정됐다는 것은 정당한 이유가 있던 것인데, 노조가 파업권이라는 기본권을 동원해 정당하게 해고된 조합원들을 복직시키겠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개별 권리 분쟁 영역이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대원칙”이라고 전했다.
美 관세·中 공세에 미래차 전환까지…파업 장기화 시 회사 부담↑
현대차를 둘러싼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도 노사 갈등 장기화에 대한 부담을 키우고 있다.
당장 파업 여파로 누적 매출 손실(생산 차질) 규모는 업계 추산 1조원을 이미 웃돌았으며, 10년 만의 전면 파업 등 추가 파업이 이어질 경우 최대 2조원대 이상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라는 관측도 나오는 상황이다.

현대차는 올해 2분기 매출이 49조원을 넘어서며 역대 분기 최대 수준을 기록했지만 수익성은 악화하고 있다. 영업이익은 2조8509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0.8% 감소한 것.
미국발 관세 부담과 인센티브 증가, 판매 믹스 변화 등이 겹치면서 올해 들어 영업이익 감소세가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대외환경도 만만찮다. 미국은 관세와 현지 생산 확대 압박을 통해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고, BYD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전기차뿐 아니라 배터리와 자율주행, 차량용 소프트웨어 등으로 경쟁 영역을 넓히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에 대응해 미국 생산시설과 배터리 투자를 확대하는 동시에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로보틱스 등 미래 사업에도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당장의 수익성을 방어하면서 미래 기술 경쟁에도 대응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의 노사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회사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을 역임한 이항구 평택대 특임교수는 “(회사는) 신차를 빨리 생산해야 하는데 파업이 나면 신차 생산에 차질을 빚는다. 추석을 기점으로 하여 9월에 들어가서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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