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나연 기자| AI 업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항상 기대와 의심으로 양분돼 있다. 하지만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이정환 상무는 단호했다. 그는 현재를 AI 거품이 꺼지는 시기가 아니라 '학습(Training)'에서 '추론(Inference)'으로 중심축이 이동하는 거대한 전환기로 봤다. 서비스가 늘어날수록 병목현상은 AI 모델이 아니라 전력과 데이터센터의 '공간'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AI 투자의 승부처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공장을 돌릴 수 있는 '공급 능력(Capacity)'에 있다는 것이다.
이정환 상무는 “이제부터는 소프트웨어의 화려함보다, 그 뒷단을 지탱하는 '전기 먹는 하마'들을 감당해낼 하드웨어 기업들의 실적 잔치가 열릴 것”이라고 단언했다. AI는 화면 속 데모 버전을 넘어 실제 '공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2026년은 그 공장을 가동할 부품과 전력이 승자를 가르는 원년이 될 전망이다.
● 빅테크 틈새 파고든 'AI 특화 네오클라우드'
인프라 전쟁의 최전선에는 '네오클라우드(Neo-Cloud)'가 있다. 아마존(AWS)이나 마이크로소프트(Azure) 같은 하이퍼스케일러가 주춤하는 사이, 코어위브(CoreWeave)나 네비우스(Nebius), 아이렌(Iren) 같은 신흥 강자들이 급부상했다.
이정환 상무는 하이퍼스케일러와 네오클라우드의 관계를 '백화점 vs 특화 매장'으로 비유했다. 기존 빅테크가 온갖 서비스를 다 파는 백화점이라면, 네오 클라우드는 오직 연산만을 위해 설계된 "AI 전용 특화 매장"이라는 것이다.
하이퍼스케일러 대비 네오클라우드가 가지는 경쟁력은 '속도'와 '비용'이다. 설계 단계부터 GPU 연산에만 최적화된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범용 클라우드 대비 GPU 활용률과 연산 효율을 극대화한다. 필요한 시점에 즉시 대규모 GPU 자원을 확보할 수 있어 고객의 '시간'을 사 준다. 부가 서비스가 복잡한 기업용 스택을 덜어낸 만큼 비용 구조도 가볍다. 누가 더 많은 GPU를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GPU를 바로 꺼내 쓰게 만드는 '공급 체인'이 승부처가 되는 환경에서는 네오클라우드가 하이퍼스케일러 대비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
네오클라우드의 또 다른 무기는 엔비디아와의 관계다. 하이퍼스케일러가 자체 칩(ASIC)을 키우며 엔비디아를 견제하는 흐름과 달리, 코어위브 등은 엔비디아가 직접 투자할 정도로 결이 맞는다. 이정환 상무는 최신 GPU를 우선 공급받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엔비디아 생태계의 수혜가 네오클라우드로 몰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따놓은 당상’ 변압기 vs ‘모험자산’ SMR
데이터센터가 급증할수록 전력망의 부하는 한계치에 다다른다. 이정환 상무는 전력 섹터 내에서도 투자 기회를 '현재의 실적(변압기)'과 '미래의 에너지(SMR)'로 명확히 구분했다. 같은 전력 테마라도 시간축과 리스크의 성격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그는 국내 전력기기 3사(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 LS일렉트릭)의 호황을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인 공급자 우위"로 진단했다. 초고압 변압기는 100% 주문 제작 방식이라 리드타임이 18개월에서 길게는 2년 이상 걸린다. 한국 기업들이 축적한 설계 데이터와 레퍼런스, 그리고 북미 현지 공장(앨라배마 등)을 통한 대응력은 중국 기업이 배제된 시장에서 확고한 점유율로 이어졌다. 이 시장의 해자(Moat)는 기술이 아니라 '납기 준수 능력'이다.
수요 또한 견고하다. 미국 송전선의 70%가 25년 이상 된 노후 설비인 데다, 교체 주기(약 40년)와 AI 데이터센터 증설 수요가 맞물렸다. 이정환 상무는 수주 잔고가 이미 2027~2028년치까지 차 있는 상황이라며 “수요가 먼저 달리고 공급이 쫓아가는 국면”이 최소 2~3년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기대감이 아니라 '실적의 시간표'가 이미 돌아가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그는 SMR을 '게임체인저'인 동시에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건너야 하는 모험 자산으로 분류했다. SMR은 막대한 초기 설비투자가 선행되어야 하기에 금리 환경과 규제 리스크에 민감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정환 상무는 SMR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선 '마일스톤’을 꼭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적으로 점검해야 할 마일스톤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표준 설계 인증과 첫 상업용 원자로(FOAK) 착공 여부다. 사업적으로는 아마존·구글 같은 빅테크와의 PPA(전력구매계약) 체결을 핵심 마일스톤으로 확인해야 한다. 확실한 수요처가 담보되어야 상용화 이전의 수익 공백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SMR은 단순한 테마주가 아니라 옵션 투자와 같은 성격으로 봐야 한다며 그 가치는 기대감이 아니라 통과한 '마일스톤'에 따라 계단식으로 결정된다고 강조했다.
● 로봇, 2026년 하반기 '몸'을 얻다
AI 인프라의 종착지는 피지컬 AI, 즉 로봇이다. 이정환 상무는 업계가 2026년을 로봇이 실험실을 벗어나는 '응용의 해'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테슬라 옵티머스의 대량 생산과 중국 유니트리 등 저가형 로봇의 출하가 본격화되며, 2026년에는 출하량이 5만 대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그는 2026년을 단순한 기술 시연의 해가 아니라 "부품 발주가 실제 매출로 전환되는 해"로 봤다.
로봇 산업에서 한국 기업의 기회는 하드웨어에 있다. 로봇 원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부품인 감속기와 서보모터 분야에서 에스비비테크, 레인보우로보틱스 등이 내재화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또한 삼성, 현대차, LG 등 제조 대기업들이 로봇 산업을 수직 계열화하며 자사 스마트 팩토리에 우선 도입하는 '캡티브(Captive) 시장'이 열려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이정환 상무는 빅테크 공장 내 로봇 배치가 테스트를 지나 양산 단계로 넘어가는 "2026년 하반기"를 실적 증명의 분기점으로 지목했다.
● 케빈 워시와 '조건부 비둘기'
이 모든 인프라 투자의 대전제는 '돈줄(금리)'이다. 차기 연준(Fed) 의장으로 지명된 케빈 워시(Kevin Warsh)의 성향에 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이정환 상무는 워시를 '조건부 비둘기(Conditional Dove)'로 정의했다. 물가 안정이라는 원칙은 지키되, AI가 생산성을 높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금리는 내리고 연준의 자산은 축소(QT)하는" 정책 조합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이는 "유동성은 조이되, 금리 인하로 기업의 투자 활력은 살리는" 정교한 줄타기다.
이 조합은 AI 투자자에게 양면의 칼이다. 금리 인하는 자본집약적인 AI 데이터센터·SMR 기업에 조달 비용 하락이라는 호재다. 하지만 QT로 시장 유동성이 줄어들면, 그 타격은 '실적 없는 기대주'가 가장 먼저 받는다. 같은 AI 섹터 안에서도 자금이 필요한 기업과 현금흐름이 증명되는 기업 간의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기대감이 아니라, 비용 절감과 이익 증가를 '숫자'로 증명하는 기업에 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될 것이란 진단이다.
이정환 상무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AI 테마 내에서의 냉정한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AI라도 막연한 기대 구간이 아닌, 숫자로 증명되는 '실적 구간'을 선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전력기기 산업을 예로 들며, 과거 저가 수주 경쟁으로 낮은 PBR에 머물던 업종이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재편되며 "영업이익률이 20%를 상회하는 국면"에 진입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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