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 손실 위험이 있는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파생상품 투자가 30~40대 청·장년층보다 50~60대에 집중되면서, 50~60대가 노후자금 절반 이상 잃고 노후파산으로 내몰렸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실에 지난 11월 말 5대 은행(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의 홍콩 H지수 연계 ELS 편입 주가연계신탁(ELT)·주가연계펀드(ELF) 판매실적 연령별 자료를 제출했다.
◇ 50~60대 시니어가 절반 이상
홍콩 H지수 ELS 가입자의 절반 이상이 50~60대에 집중됐다. 소득이 끊길 시점에 안전한 자산 대신 고수익 투자에 손댄 결과는 50% 넘는 원금 손실이다. 지난 2021년 1만 2000 고점을 찍었던 H지수는 지난 15일 5700선을 간신히 회복했지만, 절반 수준인 6000선 고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지난 17일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에서 ELS 주가연계펀드에 가입한 고객 중 50~60대는 3952명으로, 전체의 51%를 차지했다. 주가연계신탁에 가입한 50~60대는 4만 7761명으로, 62%에 달했다.
NH농협은행에서 ELS 주가연계신탁에 가입한 50~60대는 모두 1만 6447명으로, 전체 가입자의 63%를 차지했다. 신한은행 은 1만 5411명으로, 60%를 기록했다.
하나은행에서 ELS 펀드와 신탁에 가입한 50~60대는 8212명으로, 49.7%로 나타났다. 우리은행은 247명으로, 55.6%를 차지했다.
ELS에 가입한 65세 여성은 "수입이 없어서 애들이 주는 돈이랑 펀드 같은 데 투자한 수익을 합쳐서 쓴다. 당장 들어갈 데 없는 돈이면 투자할 곳을 찾게 된다. 그 돈은 당연히 노후자금이다. 원금 손실 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난 투자 안 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 90대한테 파생상품 판 5대 은행들
가장 심각한 문제는 90대한테도 홍콩 ELS 파생상품을 팔았다는 사실이다. 5대 은행 중에서 우리은행을 제외하고 4곳이 모두 90대를 상대로 파생상품 영업을 했다. 특히 하나은행이 11명으로 가장 많았다. 농협(6명), KB국민은행(3명), 신한은행(2명)이 그 뒤를 이었다.
80대에게 가장 많이 판매한 은행은 NH농협은행이다. 총 436명에게 홍콩 ELS 주가연계신탁을 영업했다. 하나은행(332명)과 KB국민은행(314명)도 80대 고객이 300명을 넘었다. 신한은행은 181명, 우리은행은 11명에 그쳤다.
보통 80대 이상 초고령층이 안정적 투자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 비춰 보면 이례적이다. 80대 넘는 노인이 ELS를 알고 자의로 투자하겠다고 나섰다고 보기 어렵다. 리딩뱅크 자리를 두고 실적 경쟁을 벌인 은행들이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고위험 상품인 ELS를 은행 창구에서 80대 이상 노인을 상대로 권유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금융 당국이 은행권의 불완전판매를 의심하는 지점이다.
더군다나 5대 은행 고객수 통계에는 함정이 있다. 은행이 고객 연령을 집계할 때, 최초 투자시점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실제 연령대는 더 높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21년 89세에 처음 ELS 투자를 시작해, 계속 투자를 이어갔다면 현재 나이는 91세다. 즉 80대에 투자를 시작해 90대가 됐어도 80대로 기록한다는 소리다.
◇ 최소한의 양심 지킨 우리은행
우리은행만 유일하게 90대에게 파생상품을 판매하지 않았다. 우리은행에서만 적합성과 적정성의 원칙이 기능한 셈이다. 왜 다른 은행들은 원칙을 지키지 못했을까.
금감원은 이달까지 홍콩 H지수 ELS 문제로 KB국민은행을 현장 조사했다.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지난 11월 말과 이달 초에야 H지수 ELS 판매를 잠정 중단했다. 이에 앞서 NH농협은행은 지난 10월부터,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지난해부터 판매를 중단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고위험, 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에게 특정 시기에 몰려서 판매됐다는 것만으로 적합성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구심을 품어볼 수 있다"며 "설명 여부를 떠나서 권유 자체가 적정했는지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적정성의 원칙은 일반 소비자와 전문 소비자로 구분해서, 일반 금융소비자에게 원금 손실 위험이 있거나 구조가 복잡해 이해하기 어려운 금융상품을 권유해선 안된다는 영업 준칙이다. 파생상품이 일반 소비자에게 적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적합성의 원칙은 일반 소비자에게 금융상품이 적합한지 연령, 자산, 부채, 소득 등에 비추어 판단하고, 적합한 경우에만 계약을 권유할 수 있다. 적합성의 원칙을 지키지 않은 계약은 소비자가 해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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