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라떼’ 세대 이전부터 ‘인구에 회자’됐던 속담이다. ‘인구에 회자’라는 말에 홑 따옴표를 붙인 이유는 이 속담과 마찬가지로 ‘라떼’ 세대 이전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요새 말로 하자면 ‘SNS 댓글 폭발’이나 ‘해시태크 난리’라는 말과 얼추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디지털 트윈’, ‘스마트 폴’ 등등 ‘라떼’ 세대들에게는 외계인의 말처럼 들리는 용어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스마트시티에 관한 칼럼을 케케묶은 속담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뻔하다. 그 속담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스마트시티 거버넌스 세계 톱3 안에 랭크된 세계적인 스마트시티 서울에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반포한강공원에서 실종 엿새 만에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씨(22) 사망 사건과 관련해 "진심으로 위로를 전한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말하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CCTV와 신호등, 가로등을 하나로 묶은 '스마트폴' 안전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오 시장은 “서울시는 도로시설물(전봇대 등)과 CCTV, 스마트기기 등을 개별적으로 설치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로시설물만 약 24만본이 난립하고, 매년 4천여 개가 교체·설치되고 있었습니다. 미관 저해뿐만 아니라 시설·운영비 증가로 인하여 CCTV 수를 늘리는 것에 애로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10곳이 넘는 한강공원 구역 내 CCTV는 162개에 불과했다"고 지적하고 “이번 달 안에 '스마트폴' 표준모델을 마련하고 운영지침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사건의 경위는 차후에 밝혀지겠지만 이 사건은 스마트시티와 관련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고 있던 서울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 젊은이의 소중한 목숨을 잃고 스마트폴을 설치하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스마트시티 통합 플랫폼 구축’ 등 그동안 그렇게 떠들어 왔던 스마트 테크놀로지 향연은 ‘그들만의 잔치’였으며 결코 ‘행살편세’를 위한 스마트시티로의 전환을 위한 노력이 아니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민들이 목숨과는 상관없이 ‘그들만의 스마트 테크놀로지 향연’이 벌어지고 있는 서울. 그러나 서울시민의 63.8%는 "10년 뒤에도 서울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년 60.5% 보다 3.3%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특히 30대 연령층의 ‘서울고수’ 의지는 67.2%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시민이 느끼는 삶의 질, 전반적인 서울 변화와 사회상을 파악하기 위해 매해 분석·발표하는 ‘2020 서울서베이 도시정책지표조사’ 결과이다.
그렇다면 어마 무시한 예산이 투입되어 건설되고 있는 스마트시티가 여전히 어째서 ‘그들만의 잔치’에 머무르고 있는 것일까? 미국 팔로 알토 시(City of Palo Alto) CIO를 역임한 조나단 라이헨탈(Jonathan Reichental) 박사는 도시들이 스마트시티를 건설하면서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8가지 스마트시티 함정(Smartcity pitfalls)을 꼽고 있다.
▲ Leading with technology (기술을 통한 선도)
▲ Failure to engage stakeholders (이해관계자 참여 실패)
▲ Limiting efforts to city boundaries (전환 노력을 도시 내에만 국한)
▲ No clear vision, inadequate governance (명확한 비전 부재, 부적절한 거버넌스)
▲ Downplaying security and privacy (보안과 프라이버시 경시)
▲ Sharing successes – and failures – too narrowly (극히 제한된 성공과 실패 공유)
▲Sticking stubbornly to old ways (구시대적 방식 집착)
▲Thinking too short-term (초단기적인 사고)
라이헨탈 박사 역시 ‘기술위주’로 스마트시티를 추진하는 함정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첫번째로 지적하고 있다. 세계 각 도시가 추진하는 스마트시티 이니시어티브가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서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가 지적한 문제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Smart city pitfalls: Leading with technology
스마트시티 추진의 초점이 기술 사용을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그것을 기술 프로그램으로 간주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많은 도시들이 그들의 정보기술(IT) 팀에 그 일을 맡기는 것이 타당해 보일 것이다. 두 가지 가정 모두 타당해 보이지만 실수일 수 있다. 확실히, 스마트시티에 있어서 스마트 테크놀로지는 핵심 요건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기술 채택은 결과가 아니라 활성화 요소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항상 근본이 무엇인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스마트시티는 지역사회를 위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 핵심 신념을 사용하여 작업을 추진하고 이해 관계자들에게 자주 상기시켜야 한다. 스마트시티 전략을 기술 프로그램으로 설정하고 이를 IT담당부서나 팀에 할당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기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많은 이해 관계자들을 멀어지게 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이 충분한 지식이나 전제조건의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기여할 수 없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사실, 스마트시티 프로그램은 기관의 모든 부분과 지역 사회의 참여도가 높을 때 더 큰 성공을 거둔다.
IT 리더와 팀은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이 다원적 프로그램을 전적으로 맡아 할 자격이 없을 수도 있다. 기술에 대한 지식이 도시 전역에 걸쳐 있는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역량과 같다고 가정하는 것은 오버 센스다. 물론, 스마트 시티 전략을 이끄는 능력과 지식을 갖춘 슈퍼스타급 IT 리더를 보유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이 접근 방식을 수용해도 좋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기술에 중점을 두는 것은 우선 순위와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는 프로그램을 홀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스마트시티 프로그램이 단순히 또 하나의 기술 프로젝트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실은 스마트시티 건설은 조직의 최고 수준에서 리더십을 필요로 하고 항상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IT 리더와 팀은 필수적이며 소중한 프로그램 파트너여야 한다. 그들의 기여가 스마트시티 프로그램의 성공에 결정적일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라이헨탈 박사의 말처럼 스마트 테크놀로지는 스마트시티 조성의 필수조건이다. 스마트시티 건설 성패를 결정짓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멋진 기술을 어떻게, 어디에 중점을 두고 구현할 것인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중앙 정부는 물론 지자체의 인식과 의지의 문제다. 시민들은 불의 사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10년이 지나도 거주할 도시가 ‘행살편세’이 되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라이헨탈 박사가 지적하고 있는 스마트시티 추진 중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함정 중의 하나인 ▲Thinking too short-term(초단기적인 사고)은 특히 경계해야 할 점이다. 이 함정에 빠지는 것은 의사결정권, 예산집행권을 가진 책임자들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그의 지적을 잠깐 살펴보자.
▲ Smart city pitfalls: Thinking too short-term
스마트시티 사업은 리더십의 임기와 결부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4년이라는 기간이 지속되기 때문에 많은 이니셔티브들이 시작되어 그 기간에 완료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올바른 일을 잘 해내는 것이 리더십의 목적이지만, 추가적인 동기부여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임기 내에 이니셔티브가 성공하는 경우, 공무원은 스마트시티 추진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으며, 재선 또는 다른 임기에 임명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물론 도시에서의 일이 왜 그리고 언제 이루어지는지 많은 이유가 존재한다. 그것은 도시마다 다 다를 것이다.
많은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는 합리적으로 단기간에 완료될 수 있다는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4년 내에 도시 커뮤니티에 매우 유용한 앱을 만들고 배포할 수 있다. 그러나 스마트시티 조성 전체 프로그램의 복잡성과 범위는 훨씬 더 긴 기간에 걸쳐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마트시티 전략은 일반적으로 대담하고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있다. 많은 개별 프로젝트가 필요하며, 그 중 많은 프로젝트가 상호 의존적이며 새롭고 복잡한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및 프로세스 요구사항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단기간 함정에 빠지기 쉬운 이유는 불과 몇 년 후 만을 내다보고 있는 것과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성공적인 결과를 보고싶어 안달이 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마트시티 이니시어티브에 대한 보다 실용적인 접근 방식은 그것을 단기, 중기, 장기 관점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다.
스티븐 코비는 "끝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스마트시티 전략에는 장기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치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너무 많은 단기적 사고를 하면 다음과 같은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1. 조직 및 커뮤니티에 대한 기대치를 잘못 설정
2. 전체적인 스마트시티 아키텍처의 과소 평가
3. 장기 예산 요구 사항에 대한 의사소통 부족
4. 마라톤의 출발점에서 전력 질주
10년 후에도 서울을 떠나지 않고 살겠다는 시민들을 위해서도 스마트시티는 단기간의 성과를 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서울시의 경우 보궐선거를 통해 시장이 새로 등장해서 임기가 1년 밖에 되지 않는다. 시장 재선을 위해서는 단기적 성과에 목맬 수밖에 없을 현실적 이유가 분명한 것처럼 보인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겠다’고 아주 빠른 시간에 대응하는 모습에서도 그것은 읽힌다. 또 하나 우려가 되는 점도 나타나고 있다. 전임시장이 꽤 오랜 기간동안 추진해왔고, 중앙 정부에서도 전국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는 ‘도시 재생’ 사업이 것이다.
한 언론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 후 첫 조직 개편을 추진하면서 시청 과(課) 이상 부서 이름에서 ‘도시 재생’을 모두 없앤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도시 재생은 박원순 전 시장의 대표 정책으로, 전면적 재건축이나 재개발 대신 소규모 개발로 동네 특성을 살린다는 개념이다. 여러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시는 최근 시의회에 오 시장의 공약 등을 반영한 조직 개편안을 제출했다. 개편안은 우선 도시 재생 정책을 추진하던 도시재생실을 균형발전본부로 흡수, 통합하도록 했다. 산하 부서들도 ‘재생’이란 단어를 다 버린다. 재생정책과는 균형발전정책과로, 역사도심재생과는 도심권사업과로 각각 이름을 바꾼다. 주거재생과는 주거혁신과로 바뀌고, 공공재생과는 다른 부서에 통합된다. 시 관계자는 “시민들과 약속한 기존 도시 재생 사업은 차질 없이 진행한다”고 말했고 이 언론은 보도했다.
물론 도시재생 사업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전국적으로 지적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도시 재생이던 스마트시티이건 간에 시민의 목숨은 물론 ‘행살편세’를 최우선시하고 그에 걸맞게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바뀌어 정책의 명칭이 바뀌는데 정권이 바뀌면 정책 자체가, 그 정책과 관련된 예산이 모두 바뀔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스마트시티의 정책, ‘전국도시의 스마트화’가 계속 이어질 것인가 역시 미지수이고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행살편세’를 위한 스마트시티 운명 역시 마찬가지다. 시민들이 거버넌스에 적극 참여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민들의 삶의 터전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스마트시티’라는 명칭이 ‘도시재생’처럼 사라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 행살편세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편한 세상
필자: 이연하. 전직 언론인. CEOCLUB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퍼실리테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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