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주면 7억 줄게"… 재혼 남편의 달콤한 상속 제안

경제·금융 | 통합뉴스룸  기자 |입력

민법 "계부모와 의붓자녀간 상속권 無"..혈족위주 직계비속을 피상속인으로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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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투데이=통합뉴스룸 기자| 재혼 가정에서 '돈'은 사랑의 증표일까, 아니면 파국의 씨앗일까. 8일 미국 금융 매체 마켓워치(MarketWatch) 머니이스트(The Moneyist) 칼럼에 올라온 한 여성의 고민 상담이 국내 자산가들 사이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사연의 주인공인 재혼한 아내 A씨는 주식 3만 달러(약 4,400만 원)와 가족과 공동 소유 중인 주택 지분 10만 달러(약 1억 4,600만 원) 등 총 13만 달러(약 1억 9,000만 원)의 자산을 보유 중이다. 황혼을 함께 보내고 있는 재혼 남편은 최근 그녀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날 경우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남편인 자신에게 상속한다는 유언을 남기면, 본인(남편) 역시 자신(아내)를 위해 현금 40만 달러(약 5억 8,000만 원)와 14만 달러(약 2억 400만 원) 상당의 자동차, 그리고 부부 공동 자택의 종신 거주권(life estate)을 주겠다는 약속이다.

아내 입장에서는 약 1억 9,000만 원을 담보로 7억 원이 넘는 자산과 거주권을 보장받는 말 그대로 '남는 장사'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속 딜'에는 잔혹한 반전이 숨어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유언장은 사망 직전까지 언제든 수정하거나 파기할 수 있는 '가변적 문서'라는 점. 만약 아내가 먼저 주식과 주택 지분을 남편에게 넘기고 떠난 후, 다시 홀로 남겨진 남편이 마음을 바꿔 유언장을 새로 작성하거나 다른 이에게 자산을 상속한다면 A씨의 두 아들과 네 명의 손자녀는 어머니의 유산을 단 한 푼도 물려받지 못하는 '상속 절벽'에 내몰리게 된다.

실제로 그녀(A씨)도 "남편이 자녀들에게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을 것 같다"고 우려한다. 재혼 남편에게는 현재 소원해져 소식이 뜸한 성인 아들 1명과 조카딸이 있을 뿐이다. 결국 남편의 제안은 수치상으로는 A씨에게 유리하지만, 친자식들에 대한 배려는 전혀 담겨 있지 않은 셈이다.

칼럼니스트 퀀틴 포트렐(Quentin Fottrell)은 "남편이 40만 달러에 차, 자택 거주권까지 갖고 있다면 결코 가난한 사람이 아닌데, 굳이 아내의 소박한 자산을 상속받으려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꼬집고 있다. 수치상으로는 딜을 받아들이는 게 유리하지만, 자녀들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는 찜찜함이 든다면 남편과 솔직하게 대화해 볼 것을 조언했다.

"당신의 제안은 매우 좋지만 내가 먼저 떠난 뒤 내 자녀들이 소외됐다 느낄까 봐 마음이 편치 않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포트렐은 이어 말뿐인 약속 대신 법적 구속력 있는 신탁 설계를 할 것을 덧붙였다. 재혼 가정에 특히 유용한 'QTIP 트러스트(적격 종료이익 재산 신탁)'는 생존 배우자를 평생 수익자로, 자녀를 최종 수익자로 지정해 배우자 사망 후 자산이 자녀에게 자동 이전되도록 보장한다. 'A-B 트러스트' 역시 배우자 몫(취소 가능)과 사망자 몫(취소 불가)을 분리해 각자의 자녀 상속권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수단이다.

사실 이 같은 고민은 바다 국내에서도 현실의 문제로 불거지고 있다. 통계청의 '2024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재혼자는 6,326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10년 전(2015년 3,741명)과 비교하면 약 70% 급증했다. 전체 재혼 건수가 2005년 정점 이후 꾸준히 줄어드는 것과는 정반대의 흐름이다. 특히, 고령 여성의 황혼 재혼 증가세는 더욱 가파르다. 2015년 1,069명이었던 고령 여성 재혼자가 2024년에는 2,430명으로 2.4배 늘었고, 연평균 증가율(8.6%)은 남성(3.8%)의 두 배를 웃돈다. 재혼 가정 10곳 중 1곳이 이미 고령 재혼인 셈이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황혼이혼도 동반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혼인 지속 기간이 30년 이상인 고령 이혼은 2024년 1만 5,128건으로 10년 전 대비 46% 늘었고, 전체 이혼 중 비중도 8.9%에서 16.6%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재혼이 늘수록 황혼 이혼도 늘고, 그 사이에서 자녀들의 상속권은 더욱 복잡한 회색지대로 내몰리는 구조다.

국내 법체계에서는 계부·계모와 의붓자녀 사이에 직접적인 상속권이 발생하지 않는다. 부모가 자신의 자산 통제권을 재혼 배우자에게 넘기는 순간, 친자녀의 권리는 사실상 소멸한다. 우리나라 민법은 혈통 중심 상속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계부·계모와 의붓자녀는 '혈연'이 아닌 '인척' 관계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황혼 재혼 전에 반드시 자녀 증여·상속·재산 분할 등을 법적으로 반드시 정리해 둬야 한다고 조언한다. 계부·계모가 의붓자녀를 법적 입양 등의 절차를 사전에 마무리한 경우에는 이들 역시 법적 자녀로 상속 권한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는 얘기이다.

사랑과 의리를 볼모로 한 상속 설계가 자칫 가족 잔혹사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경고는, 한국도 미국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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