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분기 공시' 폐지 추진, 50년 증시 관행 바뀌나

미 상장사 실적 발표 '6개월' 연장 검토 단기 실적주의 타파한다는 의도지만, 시장은 깜깜이 투자 우려

글로벌 | 우세현  기자 |입력

|스마트투데이=우세현 기자| 미국 백악관과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상장 기업들의 분기별 실적 공시 의무를 전면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기업을 단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정부의 의도지만, 일각에서는 투자자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주식 시장의 투명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SEC는 기업들이 실적을 3개월이 아닌 6개월(반기)마다 공개하도록 선택권을 주는 규제 변경안을 이르면 다음 달 발표할 예정이다. 분기 실적 공시는 상장사가 3개월마다 매출과 이익 등 재무 상태를 의무적으로 대중에게 밝히는 제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제도가 바뀌면 기업이 비용을 절감하고 경영진이 회사를 제대로 운영하는 데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강력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였던 지난 2018년에도 반기 보고 시스템 도입을 지시했지만 무산된 바 있으며, 이번 규제 완화는 백악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행보로 풀이된다. 백악관과 SEC가 50년 넘게 유지된 이 제도를 손보려는 핵심 이유는 증시에서 우량 기업들이 이탈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다.

규제 완화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기업들이 3개월마다 월가 분석가들이 제시하는 단기 실적 예상치를 맞춰야 하는 상황에 큰 부담을 느껴왔다고 지적한다. 당장의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필수적인 인력 채용을 미루거나 장기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삭감하는 등 근시안적인 경영에 매몰되는 이른바 '단기주의'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최고경영자와 워런 버핏은 지난 2018년 공동 기고문을 통해 경영진이 다음 분기 실적 전망치를 달성하는 데 급급해 회사의 미래에 필요한 지출과 고용을 억누르고 있다며 이러한 제도의 폐해를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여기에 막대한 공시 유지 비용까지 겹치면서 스페이스X나 오픈AI 같은 거대 혁신 기업들은 아예 증시 상장을 미루는 경우도 있다. 그 결과 1997년 정점을 찍었던 미국 내 상장사 수는 현재 절반 수준인 3천7백여 개로 급감했다. 당국은 공시 부담을 줄여 유망 기업들을 다시 공개 주식 시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이다.

깜깜이 투자의 우려

문제는 규제 완화가 초래할 부작용이다. 당장 주식 시장의 신뢰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는 경고가 쏟아진다. 3개월마다 제공되던 핵심 재무 정보가 사라지면, 투자자들은 반년 동안 기업의 건전성 악화나 위기 신호를 제때 파악할 수 없는 깜깜이 투자에 내몰리게 된다. 정보의 공백은 결국 주식 시장의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극도로 키울 수밖에 없다.

정보 비대칭성을 악용한 개인 투자자들의 사기 피해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규제 당국은 상장사의 공시 의무를 줄여주는 동시에, 사모 시장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성까지 높이려 하고 있다. 사모 시장이란 소수의 기관이나 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만 비상장 주식이 거래되는 폐쇄적 시장을 말한다. 명확한 가치 평가 기준이나 재무 공개 의무가 없는 비상장 기업 투자에 개인을 끌어들이는 것은 에어백 없이 고속 질주를 시키는 것과 같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비상장 주식을 거래하게 해 주겠다며 투자자를 모은 중개업체 링토가 고객에게 주식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파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는 투명한 정보 공개가 담보되지 않은 시장에 일반 투자자가 무방비로 노출됐을 때 얼마나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무리한 규제 완화 추진에 대한 강력한 경고음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규제 완화가 당국의 의도대로 시장에 안착할지도 미지수다. 2013년경 분기 공시 의무를 선제적으로 폐지한 유럽과 영국에서도 투자자들의 강력한 정보 요구와 시장 관행 탓에 여전히 많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3개월마다 실적을 발표하고 있다. 기업의 편의를 명분으로 일반 투자자의 눈을 가리는 섣부른 규제 완화가 자칫 시장의 거센 역풍만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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