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나연 기자| 2021년 창업 초기, ‘메타버스’라는 단어 하나면 수많은 기업이 먼저 제휴를 요청할 만큼 시장의 설득이 쉬웠다. 하지만 신기루는 오래가지 않았다. 코로나19 엔데믹 선언과 함께 사명을 바꾼 메타(Meta)의 실적 부진이 겹쳤고, 메타버스 업계 전반에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다.
네이버제트와 슈퍼캣의 메타버스 합작법인으로 탄생한 젭(ZEP)은 이 상황을 단순히 시장이 식은 것이 아니라 “키워드가 더 이상 시장에서 의미를 갖지 못하는 시점”으로 직시했다. 김상엽 젭 대표는 “사업이 작은 회사다 보니 시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했다”며 “살아남기 위해 이 키워드를 붙들고 있기보다, 우리가 가진 기술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회상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명확했다. 메타버스가 정체성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되며, 해결해야 할 문제에 집중하는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상엽 대표는 “메타버스는 AI나 인터넷처럼 하나의 도구일 뿐”이라며 “도구 그 자체보다 이를 통해 해결할 솔루션이 무엇인지에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른 곳들은 구조조정을 거치며 사업을 정리했지만, 우리는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려 했던 것이 핵심”이라며 “메타버스와 가장 잘 맞는 산업군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해 찾은 답이 교육이었다”고 설명했다.
● 줌과 로블록스 사이… 바쁜 성인들도 1분 만에 적응하는 공간
젭이 가장 먼저 포착한 시장의 결핍은 기존 비대면 툴의 양극단 사이에 있었다. 화상회의 서비스인 줌이나 구글 미트를 활용하면 수업 진행은 가능했지만, 네모난 화면에 얼굴만 떠 있는 방식은 ‘교실의 공기’를 만들지 못해 몰입도가 떨어졌다. 반면 메타버스 붐 시기 떠오르던 플랫폼인 로블록스나 제페토는 너무 화려하고 놀이 중심이라 학습이나 세미나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산만했다.
젭은 성인 및 기업용 B2B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기존 메타버스 플랫폼과는 다른 전략을 취했다. 김상엽 대표는 “제페토와는 완전히 다른 전략으로 성인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며 “젭의 본질은 결국 ‘게임 플러스 줌(Game + Zoom)’”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철학은 줌처럼 쉽게 들어오되 캐릭터가 움직이며 춤추는 비언어적 요소를 더해 재미를 챙긴 독특한 설계로 이어졌다. 줌처럼 들어오되 캐릭터가 움직이며 춤추는 비언어적 다이내믹스를 더해 재미를 챙긴 것이다. 김상엽 대표는 “줌이나 구글 미트는 화면에 얼굴만 떠 있는 정도지만, 우리는 캐릭터가 뛰고 춤추는 역동성이 있다”며 “게임치고는 재미없을지 몰라도 동종 서비스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는 게임 회사 출신과 서비스 회사 출신 인력들이 한데 뭉쳐 합을 맞춘 젭 특유의 조직 DNA가 만든 하이브리드 전략이었다.
● “전국의 4학년은 다 썼다”… 방탈출 100만 회가 뚫어준 길
성장의 결정적 장면은 마케팅이 아닌 실제 교육 현장에서 터져 나왔다. 한 초등학교 교사가 젭의 맵 에디터 기능을 활용해 방탈출 게임 형식의 ‘4학년 수학 퀴즈’를 만들었는데, 이 단일 콘텐츠 하나가 기록한 플레이 수는 무려 100만 회에 달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상엽 대표는 “당시 4학년 학생 수와 대비하면 거의 모두가 젭을 경험한 셈”이라며 “제가 나온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다 쓰시는 걸 보고 현장의 체감 인기를 실감했다”고 밝혔다.
젭은 이 순간을 ‘운 좋은 히트’로 두지 않고 제품화로 연결했다. 교사들이 수업 자료를 더 쉽게 만들 수 있도록 기능을 다듬어 ‘젭 퀴즈’ 서비스를 공식 출시하며 쐐기를 박았다.

결과는 수치로 증명됐다. 출시 첫해 MAU(월간 활성 사용자 수) 0에서 시작한 젭 퀴즈는 1년 만에 20만을 찍었고, 지난 2025년 9월 기준으로는 300만을 돌파하며 연간 10배 이상의 J커브를 그렸다. 현재 국내 초·중·고 합산 학교 점유율 약 70%, 서울 소재 초등학교는 거의 100%에 달하는 주도권을 확보했다.
● 기업 연수부터 부트캠프까지… '함께 공부'가 만든 수익 구조
‘젭 퀴즈’가 전국 교실의 문법을 바꿨다면, 성인 교육과 기업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플랫폼 원형인 ‘젭’이 강력한 소통의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다. 그 생생한 활용법은 기업의 신입사원 연수나 송년회, 세미나 현장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화면만 바라보는 줌 환경에서는 집중력이 금방 흐트러지기 마련이지만, 젭은 OX 퀴즈나 배지 부여 같은 게이미피케이션 요소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몰입도를 극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용성은 IT 교육기관들의 ‘온라인 부트캠프’ 영역으로 넘어오며 강력한 비즈니스 모델로 진화했다. 현장 강의보다 온라인 학습이 대세가 된 시대에서 단순 인터넷 강의보다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젭을 ‘온라인 캠퍼스’로 삼는 방식이다. 실제 스파르타코딩클럽, 코드잇, 오즈코딩스쿨 등 국내 대형 에듀테크 기업들이 이미 젭을 핵심 인프라로 채택하고 있다. 김상엽 대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5일 내내 상주하며 스터디하는 부트캠프 현장에서 젭은 이미 일상이 됐다”고 전했다.
서비스 의존도가 높다 보니 기업 고객은 안정적인 연간 구독 형태로 계약을 맺는다. 플랫폼에 강력하게 락인(Lock-in)된 고정 고객층이 젭의 재무적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축이 된 셈이다. 여기에 전국적으로 파편화된 공교육 영업망은 지역 토착형 ‘리셀러(총판)’ 네트워크로 해결했다. 김상엽 대표는 “지방에서 먼저 파트너십 역제안이 오기 시작해 현재 10개 이상의 파트너와 협력 중”이라고 밝혔다.
철저한 실용주의로 무장한 젭은 작년 기준 매출 30억~40억 원을 기록하며 창업 후 첫 연간 손익분기점(BEP)을 돌파했다. 메타버스라는 키워드에 의존하지 않고 현장의 결핍을 채운 끝에 얻어낸 성적표다. 이제 젭의 시선은 AI 기술을 통한 구조적 혁신과 글로벌 시장이라는 더 큰 무대를 정조준하고 있다.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