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기술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면서, 공공저작물 정책 역시 전환점에 서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신설한 ‘공공누리 제0유형’과 ‘공공누리 AI유형’은 AI 시대에 공공저작물을 보다 폭넓게 활용하기 위한 제도적 실험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번 신유형 도입은 그동안 당연한 전제로 여겨져 온 ‘출처명시 의무’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출처명시 의무, 공공저작물 활용의 제약 요인으로
공공누리 제도는 2012년 도입 이후 국민의 자유로운 저작물 이용과 민간 활용 확산을 목표로 운영돼 왔다. 그러나 현행 제도에서는 공공저작물을 이용할 때 반드시 출처를 명시해야 하는 의무가 부과되어 있다. 이로 인해 실제 이용 현장에서는 적지 않은 혼선과 부담이 발생해 왔다. 상업적·변경 이용이 가능한 공공안심글꼴을 간판이나 제품 디자인에 활용하면서 출처 표기를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를 두고 이용자들이 반복적으로 문의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국문화정보원 공공저작물 개방지원센터에 접수된 상담 사례를 보면, 출처명시 의무와 관련한 문의 비중은 2021년 2%에서 2025년 16%로 크게 증가했다. 이는 공공저작물 이용이 확산될수록 출처명시 의무가 실질적인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수백만 건 이상의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는 AI 학습 환경에서는 개별 저작물마다 출처를 명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에서, 현행 규정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법적으로도 공공저작물의 출처명시 의무는 복합적인 구조를 갖는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저작재산권을 전부 보유한 저작물은 저작권법 제24조의2에 따라 자유이용이 허용되지만, 동시에 제37조에 따른 출처명시 의무가 법률상 강행규정으로 부과된다.
반면, 공공기관 저작물이나 일부 권리만 보유한 저작물은 공공누리 라이선스를 통해 이용이 허락되며, 이 경우 출처명시는 법적 의무가 아니라 이용조건에 해당한다. 동일한 ‘공공저작물’임에도 적용되는 법적 성격이 다른 셈이다.
해외 주요국의 입법례를 보면, 우리나라의 출처명시 규정은 상대적으로 엄격한 편에 속한다. 미국은 연방정부 저작물을 저작권 보호 대상에서 제외해 출처명시 의무 없이 자유 이용을 허용하고 있으며, 영국과 유럽연합(EU), 일본 역시 법률상 강행규정이 아닌 라이선스 조건을 통해 유연하게 출처 표기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기술적·물리적으로 출처 표시가 어려운 경우 대체 표기를 허용하는 등 이용 환경을 고려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공공누리 신유형이 제시하는 제도 전환의 방향
이러한 국제적 흐름 속에서 공공누리 제0유형과 AI유형의 신설은 의미 있는 변화로 평가된다. 제0유형은 출처명시 없이 상업적·변경 이용까지 허용하는 완전한 이용허락 방식이며, AI유형은 AI 학습에 한해 자유로운 이용을 허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저작권법 제46조에 근거한 이용허락 방식을 통해, 법 개정 이전에도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정책적 의미가 크다.
다만, 신유형은 저작권자의 동의를 전제로 운영되는 한계도 분명하다. 법률상 출처명시 의무가 존속하는 한, 제0유형과 AI유형의 적용 확대에는 구조적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에 전문가들은 저작권법 제37조의 출처명시 의무 규정에서 공공저작물 자유이용을 예외로 포함시키는 등 법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법률상 의무를 삭제하고, 출처 표기를 라이선스 조건으로 전환할 경우 제도의 유연성과 실효성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AI 학습데이터 확보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공공저작물은 방대한 규모와 높은 신뢰성을 갖춘 핵심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공공저작물의 출처명시 의무를 둘러싼 논의는 단순한 표시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자산을 어떻게 활용해 국가 경쟁력을 높일 것인가라는 정책적 선택의 문제다. 공공누리 신유형 도입을 계기로, 공공저작물 제도가 AI 시대에 걸맞은 방향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문화정보원 임보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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