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주도해 온 국내 벤처투자 생태계의 중심축이 2025년을 기점으로 민간과 금융권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고금리와 경기 부진으로 한동안 위축됐던 벤처투자 시장이 금융권의 ‘생산적 금융’ 확대와 정부의 파격적인 규제 완화에 힘입어 반등에 성공하면서, 올해는 연간 40조 원 규모의 ‘벤처 4대 강국’으로 도약하는 원년이 될 전망이다.
19일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민간주도 벤처투자의 부상과 금융권의 역할〉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하반기부터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권 자금이 대거 유입되면서 벤처투자가 완연한 회복세로 돌아섰다. 실제로 2025년 3분기 누적 벤처투자액은 9조 8,000억 원, 펀드 결성액은 9조 7,000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3.1%, 17.3% 증가한 수치로, 시장에 활기가 돌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시장의 흐름 변화는 금융권이 기존의 가계 주택담보대출 위주의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 유망 스타트업과 기술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생산적 금융’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결과로 분석된다. 현재 하나금융은 ‘K-방산 펀드’ 등 섹터별 특화 펀드를 조성 중이며, 5대 금융지주는 총 526조 원 규모의 생산적 금융 공급 계획을 수립하여 실행에 옮기고 있다.
특히 2026년에는 투자 재원 확대를 위한 법적 토대가 완성되어 시장 유동성이 더욱 풍부해질 것으로 보인다. 오는 7월부터 ‘벤처투자법’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기존 44개로 제한됐던 출자 가능 법정기금이 국가재정법상 67개 모든 기금으로 확대된다. 이는 2024년 기준 약 1,222조 원에 달하는 법정기금 여유자금이 벤처 시장의 새로운 ‘전략적 투자자(LP)’로 등장하게 됨을 의미하며, 시장에 막대한 ‘실탄’이 공급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금융권의 자본규제도 합리화된다. 은행이 벤처펀드 등에 투자할 때 적용받던 최대 400%의 위험가중치를 하향 조정하는 방안이 올해 1분기 중 시행될 예정이다. 이 조치가 시행되면 은행과 증권사의 자본 부담이 줄어들어 모험자본 공급이 한층 더 용이해질 전망이다.
벤처 생태계의 고질적 난제였던 ‘회수(Exit) 시장’ 활성화 대책도 본격 가동된다. 오는 3월 도입되는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가 대표적인 예다. BDC는 벤처펀드 지분을 상장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게 해, 민간 자금 유입을 촉진하고 투자자에게는 적기에 회수할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정부는 2035년 만료 예정이었던 모태펀드 존속기간을 10년 단위로 연장하는 절차에 착수하여, 펀드 만기 도래에 따른 지분 저가 매각(강제 청산) 우려를 해소하고 장기 투자가 가능한 환경을 조성할 방침이다.
김상진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금융권은 이제 단순한 자금 공급자를 넘어 대기업 CVC(기업형 벤처캐피탈)와의 협업과 초기-중기-후기를 잇는 ‘전주기 투자 모델’ 구축을 통해 벤처기업의 진정한 파트너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하며 금융권의 역할 변화를 주문했다.

댓글 (0)
댓글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