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반면교사 '입방아'

|스마트투데이=김세형 기자|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경영권 분쟁 중이다.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를 대주주로 넘기라는 대주주 화천측의 일방적 요구에 창업자이자 동시에 전문경영인이 반기를 들고 맞서 싸움중이다. 화천그룹이 법원을 통해 3세들을 신규 이사진에 편입시키기 위한 임시주주총회 소집 일정을 일방적으로 정하자 김군호 전 대표이사 등을 포함한 사내 임직원들도 반격에 나섰다.

특정 대주주로부터의 독립적인 경영을 기치를 내건 호소에 소액주주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창업 당시 자금지원을 했던 권영열 화천그룹 회장(사진 왼쪽)과 창업주 김군호 전 대표이사(오른쪽)의 만남과 헤어짐이 반면교사로 벤처인들의 입방아에도 오르내리고 있다. 

국내에 벤처캐피탈이란 개념이 도입되기 이전, 초기자금(Seed money)을 지원한 권 회장과 에프엔가이드 창업자로 피투자자인 김 전 대표가 20여년만에 혈투 중이다. 

양측의 지분율 격차는 상당하다. 화천측이 41.08%를 확보한 데 반해 창업주 김군호 전 대표측 지분은 29.32%에 그친다.

지분 29.32%(332만여주)를 들고 있는 소액주주들의 최종 선택은 다음달 31일 예고돼 있다.  

◇ 에프엔가이드 130배 성장, 김군호 창업자 없어도 가능했을까?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김 전 대표이사는 권 회장으로부터 지난 2005년 10억원을 지원받았다. 투자 당시 에프엔가이드 순자본은 20억원에 그쳤다. 현재는 600억원 수준으로 순자본이 팽창했다. 자산총계는 900억원대, 시가총액은 2600억원 상당으로 불어나 회사 가치가 130배 이상 늘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 전문경영인인 김 전 대표는 정석대로 회사를 경영해온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회사를 설립한 2000년부터 지난해말까지 줄곧 대표이사를 맡아 일선에서 회사 성장을 이끌었다. 지난해말 석연찮은 이유로 24년만에 대표이사직에서 밀려났다. 화천측의 무리한 경영개입에 맞선 것이 화근이었다는 얘기가 새나오고 있다. 

2000년 에프앤가이드 설립 이전, 김 전 대표의 직업은 애널리스트였다. 권영열 화천그룹 회장을 만난 시기, 삼성증권에서 기계업종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로 활동했다. 자사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위한 경영인 vs. 애널리스트 관계였던 것. IR 업무를 계기로 이뤄진 만남은 상호 신뢰하는 인간적 관계로 발전했고, 이후 밀레니엄시대를 거치면서 선후배 창업자 관계로 진일보했다.

마곡에 있는 자체 신사옥 마련(2018년)과 코스닥시장 상장(2000년)은 김 전 대표이사의 대표적인 경영 성과들이다. 회사를 떠나기 직전까지 그는 신용평가사업 진출을 위해 SCI평가정보 인수를 타진했다. 코스닥상장사 SCI평가정보는 지난해 7월 M&A시장에 매물로 나왔고, 친정 삼성증권이 인수 주관사로 나섰다. 대우건설 출신의 부동산 디벨로퍼 박중양 회장 등의 57% 지분을 일괄 사들이는 조건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좋았던 인연은 20여년이 지난 현재, 서로를 외면하는 최악의 관계로 돌변했다. PC통신이 인터넷를 거쳐 인공지능(AI)시대로 급변한 것처럼 이들도 확 달라졌다. 당시 마흔살이던 김 창업주는 재작년 환갑을 넘겼다. 쉰넷이던 권 회장은 이제 팔순을 코앞에 두는 원로경영인이 됐다.   

2000년도는 IT와 증권 투자 붐이 한창이었다. 당시 (삼성)에프엔메신저의 위상은 오늘날 카카오톡 이상의 영향력을 가진 플랫폼이었다. 하지만 소위 돈되는 비즈니스기회를 발굴하지 못한 채 누적적자에 허덕였다. 화천측이 에프앤가이드 투자 당시 연이은 결손으로 회사의 납입자본금 65억 중 남은 순자본은 고작 20억원에 불과했다.

권 회장은 여기에 10억원을 투자했다. 주당 투자금은 액면가 500원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200원. 

◇ 화천그룹 권 회장이 '한우물 정신'을 내던진 속내?

화천그룹 창업1세대 권승관 회장은 한우물 장인 정신으로 오직 기계업에만 매진했다.

1969년 어느 날, 22살의 청년 권영렬은 부친 권승관 화천기공 사장에게 당찬 어조로 "아버지, 공작기계를 국산화해야겠어요"라고 말했다. 당시 공작기계가 일본이나 독일 제품이어서 가격이 너무 비싸고 고장났을 때 수리가 용이하지 않아 이대로는 발전하기 어렵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한양대 전기공학과 출신인 권 회장은 1977년 세계에서 네번째이자 국내 최초로 NC(수치제어)선반 WNCL-300을 부친과 함께 개발했다. 수치제어 선반은 부품을 깍는 기계로 전체 공작기계의 절반에 해당되는 필수 기계이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기계산업의 독립을 이루게 된 것이다. 

1946년생 권 회장은 2006년 한국공학한림원에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가운데 기계부문 1인으로 선정됐다. 1979년 국방부로부터 기간산업체 지정 및 수출유공석탑훈장까지 받았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 공작기계산업회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기계산업진흥회 부회장과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 김 창업자 웃돈까지 보탰지만 화천측 액면가 절반이하에 지분 확보..'역차별'

김 전 대표이사는 삼성에서 사내벤처로 분사 당시 액면가로 투자해 지분을 확보했다. 화천이 액면가 절반 이하에서 인수한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비싼 값에 지분을 확보했다. 사업 초기 십시일반으로 주식을 나눠 투자했던 직원들이 이후 회사를 떠날 때,그는 사재로 이들의 지분을 떠안았다. 

배당을 줄이거나 회사 자금으로 퇴사자 지분을 사줄 수도 있었지만 자신과 함께한 고마움에 적금통장마저 헐었다.   

에프엔가이드는 창업 10년차인 2009년(제10기)부터  배당을 꾸준히 진행했다. 당기순이익의 30% 가량을 주주몫으로 돌려줄 정도로 배당성향도 업계 평균을 웃돌았다. 화천측의 원금 회수기간이 그만큼 단축됐다. 

◇ 화천그룹이 돈독오른 이유가 본업부진(?)..감독당국 "감사 고려"  

지난해 11월 화천기계가 보유했던 자사주 220만주를 화천기공이 시장가 대비 할인해 매입했다. 권 회장을 필두로 두 동생(권영두 전 화천기공 대표와 권영호 서암기계공업대표)이 보유했던 지분 전량을 지난 3월 일괄 처분하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당시 화천기계 주식은 조국혁신당 대표 바람을 타면서 급등했다. 화천기계 소액주주들 사이에서 대주주가 테마에 편승해 보유지분을 고가에 전격 처분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화천기계는 거래소측의 주가 급등 공시 요구에 "당사 주식이 특정 정치인의 테마주로 거론되고 있으나 과거 및 현재 당사의 사업 내용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해명했다.

특히 오너 일가가 주식을 팔아치운 3월19일과 20일 화천기계 주가는 최고점을 찍었다. 주가 급등기를 틈타 개인 보유주식을 내다 팔았다.  

관련기사 :  화천기계, 주가급등 틈타 대주주 싹 다 팔았다 (입력 2024.03.26 18:30)

화천그룹이 본업 부진에 돈독이 올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주주 화천측의 자사주 처분 요구에서 이번 경영권 분쟁이 야기됐다는 분석도 이같은 가설에 힘을 보태고 있다. 

감독당국은 자사주를 포함한 일련의 경영 분쟁 상황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전 검토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날 경우, 본 감사에 나설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임시주총(이하 '임총') 소집으로 김 전 대표가 밀려난 지 1년만에 재차 임총을 통해 이철순 대표 마저 몰아내고, 대주주 일가족이 경영권을 뒤늦게 장악하려하는 속내가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를 포함한 기업 밸류업계획에 역행한다는 판단이다.     

◇ 화천그룹 3세 승계 "진행중"..ESG수준 '취약'

화천그룹은 화천기공을 모기업으로 CNC선반 및 머시닝센터 등 금속공작기계좌조와 주물제작을 영위하고 있다. 계열사로 화천기계(범용선반제작, 자동차부품제작), 서암기계공업, 에프엔가이드 등 3개 상장사와 티피에스코리아, 시리우스인베스트먼트(신기사) 등 4개 비상장회사를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3세로의 승계 시계는 여전히 급박하게 돌아가는 중이다. 화천기공과 화천기계의 ESG 수준은 모두 낙제 수준이다. 한국ESG기준원이 발표한 2023년 ESG종합평가에서 양사 모두 취약하다(C)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환경평가(E)에서는 D등급(매우 취약)으로 최악의 점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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