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아산병원의 명의의 생명을 앗아간 적색신호등시 우회전 금지가 미국에서도 전격 도입된다. 미국 주요 도시들이 그동안 허용해오던 적색 신호등시 우회전(right-on-red)를 금지키로 도로교통법을 속속 개정하고 있다. 도시로의 인구 집중 즉, 스마트시티가 가속화되면서 이와 관련한 사고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올해 시행된 주요 도로교통법 중 하나는 ‘전방 신호등이 적색일 경우 우회전하는 차량은 무조건 일시정지 해야 한다’는 규칙이다. 우회전하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행인 및 자전거와 충돌하는 사고가 빈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정 규칙 시행 후, 일시정지로 인해 사고유발 효과가 더 커졌다는 비판도 일었다.
미국도 적색 신호등 시 우회전(right-on-red)을 폭 넓게 허용해 왔다. 우회전하려는 운전자는 좌측으로 다가오는 차량들을 주시하면서 진입할 틈이 생기기를 노리며 서행한다. 그러면서 횡단보도에 바퀴를 들여놓는다. 좌측 자동차만 신경 쓴 탓에 갑자기 횡단보도에 진입한 사람을 식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행자에게는 잘못이 전혀 없다. 보행신호였으니까. 그러나 부주의한 자동차 탓에 비극은 발생한다.
미국 전역의 도시 정부들이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특히 스마트시티로의 행보가 빨라지면서 보행자와 자전거 운행이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보행자와 자전거 라이더의 죽음도 4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최근 몇몇 지자체들이 적색신호 시 우회전 금지 정책을 채택했으며 다른 여러 지자체도 이를 따르고 있다고 패스트컴퍼니가 보도했다. 이제 적신호 시 우회전 금지 규제는 연방 차원에서 논의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유럽연합의 경우 기본적으로 불법으로 규정돼 있으며 지정된 교차로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적신호 시 우회전 허용 정책은 당초 연방이 채택했다. 그 전에는 불허됐었다. 1970년대의 석유 위기로 미 정부는 정지 신호 우회전을 허용하면 자동차가 신호등에 멈춰 공회전하는 동안 소비되는 연료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며 교통법을 개정했다.
연료 소모를 줄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충돌 사고가 급증한 것은 분명했다. 1982년의 한 연구는 새로운 정책이 보행자나 자전거 타는 사람과 우회전하는 차량 사이의 충돌 등 사고의 급격한 증가를 촉발했다고 발표했다. 연구 대상이었던 오하이오에서 보행자 충돌 사고 57%, 자전거 라이더 사고는 80% 증가했다. 위스콘신에서는 그 수치가 각각 107%와 72%였다. 캐나다 토론토에서도 보행자 사망의 약 2%와 자전거 타는 사람 사망의 4%가 우회전 차량에 의한 사고로 추정된다. 이 비율을 미국의 횡단보도 사고에 적용하면 전국적으로 연간 약 19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최근의 연구도 우회전 허용 제도가 왜 문제가 되는지를 설명해 준다. 연구팀은 운전석 뒤에서 운전자의 행동을 관찰했다. 우회전하는 운전자들은 적신호가 켜졌을 때 왼쪽 방향에 관심을 집중했다. 오른쪽 횡단보도에서 자전거를 타고 건너거나 보행인보다 자신이 합류하려는 차선을 따라 좌측에서 오는 자동차의 흐름에 집중했던 것이다.
또 정지 신호등에서 멈춰 선 운전자들은 방향을 바꾸기 전에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앞으로 전진하면서 횡단보도를 막았다. 운전자가 횡단보도에서의 통행권을 막은 것이다.
그러나 캐나다와 미국은 뉴욕시와 몬트리올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우회전 허용 제도가 표준으로 남아 았다. 적신호에서 우회전 금지 표지판이 부착된 경우를 제이하고는 모두 허용된다. 유럽과는 반대인 셈이다.
우회전 금지 법제화를 적극 주창하는 매사추세츠 캠브리지 시의원 버한 아짐은 특히 거리에서 SUV와 트럭이 증가하고 있어 사고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자율주행 차량까지 운행되기 시작하면 불안감이 고조될 것임은 자명하다. 반대로 보행 및 자전거 인구는 승용차 및 대중교통을 대체하면서 날로 늘어나고 있다.
캠브리지에 이어 콜롬비아 특별구(워싱턴D.C.) 시의회도 우회전 금지 규칙을 통과시켰다. 최근에는 미시간 주 앤아버가 시내 전역에서 적신호 우회전을 금지했다. 시애틀이 바로 뒤를 이었고 다시 워싱턴 주 전역에 확산시키기로 했다.
다만 이 법안에 대해서도 민주당과 공화당의 분쟁이 이어진다. 공화당 주지사 지역이 반대의 선봉이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서는 지역 지자체 정부가 금지시켰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주 및 시의회는 ‘우회전 금지를 막을 수 있는 법안’을 제출하거나 통과시켰다. 교통 전문가들은 연방 정부가 나서서 우회전 금지의 법제화를 촉구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예산 지원을 중단하는 강수를 두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앞서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인근 교차로에서 이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흉부외과 명의가 우회전하던 트럭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인은 의료계 안팎에서 '대체 불가능한 명의'로 존경받아온 인물이다. 특히 그는 급한 수술에 대비해 병원에서 10분 거리의 자택에서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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