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우리금융 출범 이후 시작된 국내 은행지주회사의 이사회 독립성 문제가 여전하다. 은행지주 이사회의 이른바 '거수기'(rubber stamp)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주총시즌때마다 경영 승계의 불투명성이 도마에 오르면서 지주회사 이사회의 '옥상옥'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금융지주사 이사회 독립성 제고를 위해서는 미국 사법부의 배심원 제도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김우진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국내 은행지주의 거버넌스 이슈 및 개선방안>이란 보고서에서 "2001년 우리금융이 국내 최초로 금융지주회사를 출범시킨 이후 국내 은행지주회사들이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 은행지주에 대한 여론과 당국의 질타는 그 어느 때보다 매섭다"며 이같이 밝혔다.
특히, 지주회사는 조직이 비대해진 채 관리기능만 남아있는 옥상옥이라든지, 주인 없는 회사에서 경영진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 경영진과 이사회가 셀프연임을 조장하고 있다는 등 지배구조 측면의 각종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특히, 올해는 행동주의 펀드 공세까지 거세지는 등 우리나라 은행지주들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거버넌스는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대해 사전 또는 사후에 이를 확인하고 피드백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조직의 말단에서부터 최상층까지 이중 삼중 구축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좋은 거버넌스를 갖춘 회사는 직위와 상관없이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따라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돼 있다. 협의의 거버넌스는 이사회 중심의 지배구조를 의미하지만 광의의 거버넌스는 회사 전체의 운영체계를 포함한다.
전 · 현직 CEO나 금융전문가로 사외이사 풀(Pool) 마련해야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오늘날의 선진은행 이사회는 회사의 전략 방향 등에 대한 자문 기능을 수행한다. 즉, 이사회는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대해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challenge)함으로써 경영진이 한 번 더 고민하게 만든다. 이사회는 기업을 단지 통할(govern)하는 것이지 경영(manage)하는 것이 아니다.
경영진보다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 · 현직 CEO나 금융전문가가 이상적인 사외이사 후보지만 국내 금융권의 순혈주의 및 후보자의 이해 상충 문제 등으로 인해 인력의 풀(pool)이 대단히 부족하다. 전문성 있는 사외이사의 확보가 긴요한 만큼 사외이사의 보상수준이나 임기 등에 대한 정부의 긍정적인 시각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현재 신한지주, KB금융, 하나금융지, 우리금융지주 등 4대 주요 금융지주 이사진에는 전직 CEO들의 진출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선임 사외이사(lead outside director) 등 사외이사들만의 모임 활성화해야
만약 인수 · 합병과 같이 회사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사전에 이해와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진행되다가 마무리 단계에서 안건으로 상정되고 이사회는 지엽적인 문제만 논의하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사외이사만의 비공개 간담회의 정기개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이는 미국의 배심원제도와 유사하다. 배심원들은 재판을 통하여 충분한 정보를 습득한 후 최종판결에 앞서 배심원들만의 비공개회의를 진행한다. 美 OCC(Office of the Comptroller of the Currency)의 Directors’ Manual에서도 이사회의장과 별개로 선임이사(lead outside director)를 선정하고 사외이사만의 간담회 개최를 권유하고 있다.
비공개회의에서는 토론을 주도하는 배심원을 중심으로 합리적 의견을 도출해 내고자 최선을 다한다. 배심원들의 의견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만장일치의 의견을 재판부에 제출하게 된다.
익명성은 생각보다 위력이 대단하다. 판사 앞에서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라 했다면 배심원들은 자신의 부족한 전문성이 발각될까 두려워 다른 배심원의 의견을 추종하거나 처음부터 아예 배심원 선정 자체를 피했을 것이다.
금융지주사 이사회 독립성 제고, 美 사법부 배심원 제도에서 배워야
이처럼 이사회의 독립성을 높이고 더욱 심도 있는 토론이 이사회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美 사법부의 배심원 제도를 참고할 만하다.
김 연구위원은 "현재 국내 금융지주사의 경영진 승계 절차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며 "우선 은행지주 CEO의 경영승계 계획과 관련해 투명성과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내부 임원 및 외부 명망가 위주의 현행 롱리스트를 형식적으로 관리하기보다 숏리스트의 후보군을 우선 선정하고, 상시적인 접촉과 의견청취 등을 통해 후보군의 능력과 자질을 평상시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국내 은행지주들이 방향성을 가지고 지속성장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 구조를 더욱더 정교하게 발전시키는 한편 지주회사의 운영방식을 다양화하는 등의 노력을 배가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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