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종현 기자| 얼마 전 갔던 모 재개발 지구에서 있었던 일이다. 노후 주택가를 갈아 엎고 대형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로 온 동네가 들썩이고 있었다. 대로변은 물론 가는 길 곳곳마다 건설사와 설계사, 조합이 걸어 놓은 재개발 축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런 와중에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지역주택조합(이하 지주택) 사무실이었다. 서울 성수, 압구정, 금호, 한남 등 대형 정비사업이 치러진 곳을 수백번 돌아다녀도 사무실 간판조차 찾기 힘들었던 지주택 조합 사무실이 도로 한 켠 양 옆으로 3개씩이나 있었다. 실제 운영을 하는지 궁금해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40~50대로 보이는 여성 2명이 어디서 온 지도 모르는 청년을 반갑게 맞이해 줬다.
기자 신분을 밝히기 전이었음에도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다 주고, 잘 왔다는 말부터 요즘 젊은이들 고생한다는 말까지 ‘사탕발림’으로 들릴 말이란 말은 다 꺼내는 듯 보였다.
맞은편에 위치한 사무실은 풍경이 아예 달랐다. 노년의 남성 한 명이 사무실 내부서 컴퓨터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누군가와 열심히 통화하는데, 들은 내용으로 보아 협력사와 토지 매입에 관해 얘기하는 듯했다. 옆에서 조심스레 인사를 하며 명함을 요청했는데,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탁자 위 명함집에서 명함 한 장을 건네주며 곧바로 컴퓨터 화면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새였다.
일대 재개발 단지를 20여분간 취재한 후 그곳 근방에 들를 일이 있어 다시 사무실 내부를 봤는데, 여전히 그 남성 한 명이 20분 전 기자를 봤을 때와 똑 같은 자세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다른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근방 재개발 단지를 돌아다니며 지주택 사무실 2곳을 더 봤는데, 1곳은 문도 열지 않았다. 사무실 앞엔 동물 배설물이 치워지지 않은 채 있었고, 먼지가 가득 쌓인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머지 1곳은 비상연락망이 적힌 안내판도 걸어놓지 않은 채 굳게 잠겨 있었다. ‘부재중’이라는 표시도 없었다. 문에는 우체국의 ‘우편물 수령 권유’ 공문 종이가 붙여져 있었다. 조합원들의 재산을 운용하는 곳이 이렇게 길게 사무실을 비워도 되는지 의문이 들만큼 어이없고 황당했다.
하도 이상해 인근 다른 재개발 조합 사무실을 방문해 관계자들에 물어봤다. 도대체 이곳엔 지주택 사무실일 왜 이렇게 많냐고. 평일 근무시간임에도 일부 사무실은 문도 열어놓지 않았다고. 조용히 듣던 조합장이 기자에게 한 마디 했다.
“여기 사람들이 재개발, 재건축에 대해 잘 모른다고 판단하고 들어온 거죠. 사회 경험이 부족한 청년들이나 노년층이 많다 보니 이들이 ‘정비사업 관련 지식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다가가 ‘적은 돈으로 으리으리한 새 집을 마련할 수 있다’고 호객하는 거에요.”
할 말이 없었다. 정비사업에 대해 조금만 알아도 알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지주택이 한 곳도 아니고 5곳이 사업지 한 곳에서 버젓이 간판을 내걸고 있는 게 황당함을 넘어 우려스럽기까지 했다.
지주택은 일반 재개발 혹은 재건축, 가로주택정비사업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신축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단 장점이 있다. 이에 목돈을 마련하지 못한 서민층이 주 고객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주택은 성공 사례가 극히 드문 '로또 복권'과 같은 존재다. 사업 자체가 진행되지 않아 억대 돈만 날렸다는 피해자도 수두룩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서울 시내 지역주택조합 사업지 118곳 중 70%가 넘는 87곳이 사업 본 단계 초입인 '지구단위계획'도 가지 못한 채 '조합원 모집 신고' 단계에 머물렀다. 조합원을 모집하겠다고 신고만 하고 인허가, 착공 등 실제 사업은 진행하지 않은 것이다.
모집신고 단계 87곳 중 76곳(87.3%)은 모집신고 후 2년이 경과됐지만 별다른 진척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조합설립인가까지 진행된 14곳 중 8곳(57.1%)은 조합설립인가 후 3년이 지난 상태였다. 118곳 중 사업을 정상적으로 추진하는 곳은 17곳(14.4%)에 불과했다. 그나마 지주택으로 착공에 들어간 몇 안되는 사업장의 관계자들도 “재개발, 재건축이 훨씬 낫다. 절대 지주택 하지 마라”는 말을 도돌이표처럼 하는 형국이라고 한다. 절차를 밟음에 있어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지주택은 토지 확보와 인허가가 충분히 마무리되기 전 조합원을 모집하고 가입금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만일 토지 확보 부족, 사업계획 변경 혹은 분쟁으로 인한 소송 진행 등의 사유로 사업이 무기한 지연되거나 좌초될 시 조합원은 납부 돈 전액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이는 지주택 사업의 특성 때문이다. 지주택은 초기 조합원이 낸 가입금으로 업무대행 수수료, 홍보관 광고 수수료, 토지 매입비, 법률 회계 설계 인허가 용역비, 추진위원회 운영비, 금융비용을 지출한다. 서울시나 구청 등 당국의 관리·감독도 기존 재개발·재건축에 비해 상당히 약하게 받는다. 시와 구청이 사업 전 과정에 강력하게 관여하는 재개발·재건축과 달리 지주택은 설립인가 후엔 훨씬 더 자율적으로 사업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 조합장 등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횡령해도 조합원이 발견하지 않는 이상 쉬쉬하며 넘어갈 여지가 더 크다.
실제 지주택 조합에 억대 돈을 납부했다가 받지 못해 조합장 등 이해관계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선례가 다수 있다. 조합장 혹은 대행사가 억대 돈을 횡령하고 잠적해, 피해를 본 조합원들이 이들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죄질이 크다 판단된 일부는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부동산 정비사업에서 '정보의 격차'는 누군가의 전 재산을 위협하는 무기가 된다. 전문 용어와 복잡한 법조문으로 도배된 정비사업 구조 앞에서, 사회 경험이 적은 청년이나 노년층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지주택 사업자들이 노리는 지점도 바로 이 '무지와 정보 불균형'이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선 이들을 도와줄 합당한 명분이 있는 자들, 정부와 관계당국이 나서야 한다. 이들의 소중한 재산권이 침범당하지 않도록 제도를 만들고, 교육을 통한 피해 예방에 나서야 한다. 일반 서민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지주택, 재개발, 재건축, 가로주택정비사업에 대해 알려주는 문답의 장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변호인 선임 등 법률 구제책을 확대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모르는 게 약이 아닌 ‘아는 게 약’인 시대다.
정보 약자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은 국가와 지자체에 있다. 지주택의 자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관망할 것이 아니라, 조합원 모집 단계부터 엄격한 실태 조사와 행정 지도에 나서야 한다. 아울러 정비사업의 위험성을 알리는 사전 교육과 법률 구제망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모르는 게 약'이 아닌 '모르면 전 재산을 잃는' 잔혹한 현실에서, 서민들의 재산권을 지켜줄 강력한 방패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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