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한솔 기자| 영원무역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정자료 허위 제출 고발 이후 법률·규제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회사는 준법경영과 이사회 전문성 강화를 위한 인선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성래은 부회장이 사외이사 후보 추천에 참여하는 구조에 이사회 정원 축소까지 맞물리면서 이사회의 독립적인 견제 기능이 오히려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가 주목하는 영원무역 사례
공정거래위원회는 6일 대기업집단 지정자료를 허위로 제출한 동일인에 대한 고발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고발지침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은 의무 위반에 대한 인식 가능성이 낮더라도 위반 행위가 중대하면 고발할 수 있도록 기준을 강화한 것이 핵심이다.
공정위는 지난 2월 성기학 영원무역그룹 회장을 지정자료 허위 제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성 회장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지정자료를 제출하면서 82개 계열회사를 누락해 영원무역그룹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누락된 회사의 자산총액은 약 3조2400억원으로 누락 기간과 회사 수, 자산 규모 모두 역대 최대 수준으로 파악됐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도 지난 5월 국민주권정부 1주년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영원무역 사례를 직접 언급했다. 주 위원장은 “영원무역은 공시 대상에 없다가 누락된 계열사를 반영하니 공시대상기업집단이 됐다”고 밝혔다.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계열회사 현황과 대규모 내부거래 등에 대한 공시 의무가 부과된다. 계열회사 누락이 이뤄진 것으로 지목된 시기는 영원무역그룹의 승계 작업이 진행된 때다. 이 기간 성기학 회장은 그룹 최상단 지배회사인 YMSA 지분 50.01%를 차녀 성래은 부회장에게 넘겼다. 계열회사와 지배구조에 대한 시장 감시가 제한된 기간에 그룹 승계가 진행된 셈이다.
공정위 고발 직후 검찰·공정위 출신 사외이사 영입
공정위 고발 한 달 뒤 열린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영원무역은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왕상한 전 공정위 비상임위원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회사는 이영렬 이사가 법조 경험을 토대로 준법·윤리경영 체계를 강화할 것으로 평가했다. 왕상한 이사에 대해서도 공정거래와 조세·금융 규제 분야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의사결정에 기여할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규제기관의 고발 직후 검찰과 공정위 출신 인사를 영입했다는 점을 두고 시장의 평가는 엇갈린다. 먼저 법률 리스크와 내부통제 역량을 보완하기 위한 인선으로 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면 사외이사의 역할이 경영진 감시보다 사법·규제 위험 대응에 치우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들이 공정위와 검찰, 금융당국 등 공직 출신 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것은 규제 환경이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법률과 정책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하려는 측면이 있다”며 “특히 공정거래와 준법경영, 내부통제, ESG 등 기업의 리스크 관리에도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 교수는 “사외이사 제도의 본래 목적은 경영진을 감시하고 주주가치를 높이는 데 있다”며 “단순히 대관 업무나 규제 대응을 위한 ‘전관 활용’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면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직 출신 사외이사는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독립성과 주주가치 제고라는 본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에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성래은 부회장, 사외이사 후보 추천에 참여
영원무역의 사외이사 인선 구조는 지배주주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어렵다. 후보 추천 단계에 지배주주 일가가 참여하는 데다, 주주총회에서도 최대주주가 과반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원무역의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2025년 말 기준 사외이사 2명과 성 부회장으로 구성됐다. 지배주주 일가이자 사내이사인 성 부회장이 사외이사 후보 추천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다. 성 부회장은 영원무역홀딩스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도 사내이사 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주주총회에서 선임할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역할을 한다. 사외이사 선임 안건은 주주총회 보통결의 사항으로, 출석 주주의 의결권 과반수 찬성과 발행주식총수의 4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영원무역은 최대주주인 영원무역홀딩스가 지분 50.52%를 보유하고 있다. 별도의 의결권 제한이 없다면 최대주주 지분만으로도 사외이사 선임을 위한 보통결의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수준이다. 결국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통과한 후보가 최대주주의 의사와 일치할 경우 주주총회에서 선임될 가능성이 높은 구조다.
기존 사외이사의 선임 이후에도 내부통제의 실효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공정위가 계열회사 누락이 이어졌다고 본 기간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다. 이 기간인 2023년 정기주주총회에서 공정위 출신 한철수 사외이사가 지주사인 영원무역홀딩스 이사회에 합류했다. 회사는 당시 내부통제 강화를 선임 배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준법경영 체계는 계열회사 누락을 걸러내지 못했다. 한 사외이사는 지난 정기주주총회에서 재선임됐다.
이사 정원 축소로 외부 후보 진입 가능성도 낮아져
공정위 고발과 내부거래 문제로 사외이사의 견제 역할이 중요해진 상황이지만, 외부 주주가 추천한 후보의 이사회 진입 가능성은 오히려 낮아졌다. 영원무역이 이사 정원을 줄이면서 소수주주가 집중투표제를 활용할 수 있는 여지도 함께 축소됐기 때문이다.
영원무역은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사 정원을 기존 ‘3명 이상 12명 이내’에서 ‘3명 이상 8명 이내’로 축소했다. 회사는 이사회 운영의 효율성과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개정 상법을 반영해 이사 과반을 독립이사로 구성하도록 정관을 변경했다.
독립이사 비중 확대는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조치지만, 이사 정원 축소는 집중투표제의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 집중투표제는 동시에 선임하는 이사가 많을수록 소수주주가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 당선시킬 가능성이 커지는 구조다. 반대로 이사 수가 줄면 후보 당선에 필요한 지분율이 높아지고 정원이 모두 찰 경우 외부 후보가 새로 진입할 여지도 좁아진다.
실제로 이사 정원 축소가 집중투표제의 실효성을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 바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2월 이사 정원 축소와 관련해 “소수주주가 추천할 수 있는 이사 후보의 수 자체가 제한돼 집중투표제의 효과를 충분히 활용할 수 없게 된다”고 밝혔다.
영원무역은 검찰·공정위 출신 사외이사 선임 배경과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독립성 문제, 계열회사 누락 당시 내부통제가 작동하지 않은 원인 등에 대한 질의에 “현재 진행 중인 사안으로 별도로 전할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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