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한솔 기자| SK하이닉스의 미국 ADR 상장 추진으로 과거 LG디스플레이의 사례가 재조명되고 있다. 대규모 자금 조달 후 산업 침체로 고전했던 LG디스플레이의 전례는 시장의 우려로 남아있지만, AI 초활황의 정점에 선 SK하이닉스는 다르다는 평가다. 이번 뉴욕행이 글로벌 블루칩 도약의 발판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 공모의 3배 물량 쏟아부은 미국 시장… 7억달러대의 실탄
LG디스플레이는 지난 1999년 한국의 LG전자와 네덜란드의 필립스가 50대 50의 지분 비율로 합작하며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의 거물로 출범했다. 이들은 차세대 대형 LCD(액정표시장치) TV 시장의 패권을 선점하기 위해 2004년 7월 23일, 한국증권거래소(KRX)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동시 상장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 국내 공모 시장보다 미국 뉴욕 증시(ADR)를 통한 자금 조달 규모가 컸다. 한국 시장에는 총 864만주의 보통주가 배정되어 약 298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는 데 그쳤으나, 미국 시장에는 한국 시장의 3배에 달하는 파격적인 물량이 배정되며 글로벌 자본을 대거 흡수했다. 또한 당시 발행된 ADR은 보통주 1주당 ADR 2주가 대응하는 1대 0.5의 비율로 설계되어, 글로벌 투자자들이 미국 시장에서 보다 유연하게 거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LG디스플레이의 ADR은 미국 시장에서만 총 2496만주를 발행하며 7억4880만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8631억원) 규모의 글로벌 자본을 수혈받았다. 상장 과정에서 확보된 이 막대한 실탄은 당시 총 5조3000억원이 투입된 파주 7세대 LCD 공장 건설과 디스플레이 클러스터 조성의 결정적인 마중물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기존 6세대 라인 대비 월등한 생산성을 바탕으로 40인치 이상 대형 TV 시장의 주도권을 선점하고, 생산 기지 집적화를 통해 제조 원가 경쟁력을 극대화하려 했던 LG디스플레이 핵심 비전이었다.
SK하이닉스와 다른 한·미 동시 상장… 24시간 주가 연동의 덫
LG디스플레이의 ADR은 기존 주식을 기반으로 한 미국 시장 상장이 아닌, 한국 시장과 미국 시장에 동시 상장하는 방식이었다. 이미 국내 증시에서 확고한 지위를 굳힌 상태에서 글로벌 유동성 흡수와 밸류에이션 재평가를 노리는 현재의 SK하이닉스와는 다른 구조다.
ADR의 경우 양국 시장의 시차를 두고 주가가 쉼 없이 연동되는 특성을 갖는다. 산업 활황기에는 미국 ADR 시장의 강세가 국내 본주의 상승을 견인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지만, 반대로 업황이 꺾이면 ADR의 하락세가 국내 주가까지 끌어내리는 하방 압력의 전이가 일어난다. 심지어 LPL은 전체 공모 물량의 75% 이상을 미국에 배정해 연동 리스크에 더욱 취약했다.
LG디스플레이 ADR의 경우 산업의 구조적 붕괴가 맞물리면서 주가 하락세가 고착화됐다.
상장 이후 장기적으로 글로벌 LCD 산업은 중국발 공급 과잉이라는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중국 정부의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들의 무차별적 증설이 쏟아졌다. LCD 기술은 급격히 범용화됐고, 중국발 치킨게임으로 패널 가격은 하락에 직면했다.
2022년 말, 미국 상장 자금의 상징이었던 파주 P7 공장은 LCD TV 패널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현재는 수익성이 무너진 LCD 생태계를 축소하고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IT 및 차량용 등 중소형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설비에 재투자하는 등 사활을 건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2004년 IPO 당시 국내 공모가는 3만4500원, 뉴욕 ADR는 15달러에 형성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러나 2026년 3월 31일 현재, 전일 LG디스플레이의 종가는 1만1400원까지 밀려났으며, 뉴욕 증시의 LPL(LG필립스LCD)은 3.89달러를 기록 중이다. 현재 환율로 환산한 ADR 1주의 가치는 약 5968원으로 발행 비율을 고려할 때 사실상 양국 주가는 연동되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필립스 엑시트와 중국발 치킨게임
당시 대주주였던 필립스는 2005년 말부터 단계적으로 지분을 매각했다. 2009년 3월 잔여 지분(13.2%) 전량을 처분하며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완료했다.
필립스의 지분 매각으로 대규모 유통 주식이 시장에 풀려났지만, LG디스플레이는 그 수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TSMC가 필립스의 지분 매각 이후 늘어난 유동성의 효과를 온전히 본 것과 달랐다.
과거 압도적인 규모로 글로벌 자본을 유치했던 LG디스플레이와 대만 TSMC의 사례는 ADR을 통한 유동성 확대 이전에 사업의 성장성이 선행되어야 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TSMC는 필립스의 지분 매각으로 늘어난 유동성이 긍정적으로 작용했지만, LPL의 경우 장기적인 산업의 성장이 이어지지 못해 수혜를 누리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의 ADR 상장이 LPL과는 다른 산업적 궤도에 서 있다는 평가하고 있다. 과거 LPL이 치킨게임이 만연한 범용 LCD 시장의 구조적 하락세와 맞물려 유동성의 덫에 빠졌다면, 현재 SK하이닉스는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차세대 반도체를 중심으로 AI(인공지능) 산업의 거대한 확장 사이클 내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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