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유사 손실보전 절차가 재정지원 규정 예고로 시작됐다
- 최고가격제는 래깅효과 마진을 제한해 정유업체에 구조적 손실을 안긴다
- 불명확한 손실보전 기준으로 정부와 정유업체 간 줄다리기가 전망된다

|스마트투데이=박재형 기자|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따른 정유사 손실보전 절차에 착수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손실보전을 위한 재정지원 규정 제정안을 행정예고 하면서 원가 산정과 최고액 정산위원회 구성 등 보상 논의의 틀이 마련됐다.
다만 정유업계가 주장하는 누적 손실 규모가 정부 추경 예산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되는 데다, 손실보전 대상 기준이 아직 불확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며 정부와 업체 간 줄다리기는 당분간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따른 정유사 손실보전 절차 착수
24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최근 ‘석유판매가격 최고액 지정에 따른 손실보전을 위한 재정지원 규정’ 제정안을 행정예고 했다.
최고가격제로 발생한 정유업체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재정지원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려는 취지로 주요 내용은 △재정지원의 원칙 △원가 등의 산정 △최고액 정산위원회 구성 및 운영 등이다.
재정지원금은 최고가격제 대상 석유제품의 생산·판매에 들어간 원가 등을 기준으로 산정된다. 산업부 장관이 정한 기준 금액과 실제 최고가격의 차액 범위 안에서 지급하는 방식이다.
보전 대상 손실은 최고가격제가 적용된 기간에 발생한 손실로 한정된다.
원가는 최고가격 적용 기간 대상 석유제품을 생산·판매하는 데 들어간 원유 도입비, 생산비, 판매비 등 관련 비용을 말한다.
다만 정유사는 원유를 정제해 여러 석유제품을 동시에 생산하는 만큼, 전체 생산·판매 비용 중 최고가격제 대상 제품에 해당하는 비용을 합리적 기준에 따라 나눠 산정하게 된다.
산업부는 손실보전액 산정을 위해 ‘최고액 정산위원회’도 구성한다. 위원회는 회계·법률·석유시장 전문가와 정부 위원 등 20명 이내로 꾸려지며, 원가 산정 방식과 보전 기준 등을 심의할 예정이다.
행정예고가 끝나는 29일이 지나면 정산위원회를 중심으로 정부와 정유사 간 손실보전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정유사 손실보전 기준 불확실성 여전
업계에서는 최고액 정산위원회를 통한 심의 절차가 마련되면서 정유사들이 원가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의견을 전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된 부분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최종적인 보상 규모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3월 13일부터 시행된 최고가격제는 래깅효과 마진을 제한하는 요소다. 래깅효과란 원재료를 구입하는 시점과 이를 가공해 최종 제품을 판매하는 시점 사이에 발생하는 시간 차로 인해 이익이나 손실이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정유업체들은 국제 시세에 맞춰 원유를 수입하는데, 정부가 국내 공급가를 최고가격으로 묶어두면 실제 원가보다 낮게 팔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 구조적 손실이 생긴다.
여기에 최고가격제 적용 기간에는 국제가격으로 수출할 수 있는 물량을 내수용으로 돌려야 하므로, 국제 시장에서 얻을 수 있었던 잠재적 수익을 포기하게 되는 기회비용까지 발생한다.
현재 산업통상부는 7차 석유 최고가격 지정 전까지 현행 최고가격인 리터당 휘발유 1934원,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을 유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정유업계에서는 MOPS(싱가포르 국제 현물 시장 가격) 기준으로 국내 최고가격과의 차이를 손실로 산정해 보전해 달라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양기욱 산업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지난 18일 “원가가 기준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명확히 했다”며 “정유사들이 희망한 MOPS 가격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업계에서는 국제유가 하락기에 고가로 매입했던 원유가 완제품으로 만들어져 판매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고평가손실 역시 보전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정부 측에서는 예산이 한정돼 있고, 손실보전이 합리적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손실 보전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난관이 남은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정유업계에서 말하는 재고평가손실 및 수출 기회비용에 따른 수익 포기 등을 손실보전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공학과 초빙교수는 “최고가격제가 아니더라도 정유사들은 그 비용(재고평가손실 및 수출 기회비용에 따른 수익 포기 등)이 다 들어갔던 것이므로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실보전 기준 두고 정부·정유업체 간 줄다리기 이어질 듯
이렇듯 아직 불명확한 손실보전 기준으로 인해 정부와 정유업체 간 줄다리기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최고가격제에 따른 정유사 손실보전에 쓸 추가경정예산은 4조2000억원으로 알려졌다.
양 실장은 “과거 데이터로 시뮬레이션을 해 4조2000억원을 추산한 것”이라며 “지금 손실보전을 하기에는 예산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5월 말까지 정유사 누적 손실이 4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으로 확보한 손실 보상 비용을 넘어선 수준이다.
강 교수도 정부에서 추산한 4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에 대해서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석유 최고가격제와 관련해 일정 부분 시장에 맡길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강 교수는 “국내 최고가격제를 일본 등 여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안 된다. 가령 일본은 (기름값을) 시장 흐름에 맡겨 둔 편이었다. 국내에서도 시장 쪽에 일부분 맞길 필요가 있다. (국제유가)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 이렇게 오를 때에만 정부가 나서 컨트롤해야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걱정하는 건 물가가 오르다 보니 (기름값)을 컨트롤 하지 않으면 집권당 입장에서는 골치다. 하지만 어차피 한번은 넘어야 할 차례”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에 대응해 핵심 산유국들과의 외교적 협상을 통해 공급선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면 정유사가 손실보전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건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실제 지난달 31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략경제협력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한국과 캐나다 간 에너지·자원, 공급망, 첨단산업 분야 협력 확대를 논의하기 위해 캐나다로 출국했다. 이번 방문은 원유 수급선 다변화 등 한·캐나다 에너지·자원 협력 추진을 위해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지난 5월 29일 세계 12위 원유 생산국인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원유 도입 진정 상황 등을 점검했다. 카자흐스탄은 지난달 강 실장이 원유 1800만 배럴을 확보한 바 있다.
김병준 폴리텍대 석유화학과 교수는 “핵심은 원유가 공급이 막혔는지다. 원유 공급이 막혀 실제 제품 생산하는 게 어려움이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제품에 대한 정찰제(최고가격제)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면 정유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손해일 것”이라며 “다만 상황이 원유가 막혔느냐를 놓고 봤을 때 공급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다. 정찰제를 가지고 정부에서 문제를 최소화하려고 한 것이니 정부 정책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유사의 손실보전과 관련해서도 “원유 공급에 문제가 생겼는지에 대한 것을 증명해야 한다. 가령 정부에서도 대통령 특사 등을 통해 원유 공급에 문제가 없게끔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을 하나도 안 하고 가격을 맞추라 하면 정유 업계의 주장이 맞겠지만, 정부에서도 문제가 없게끔 노력을 하고 있고, 또 무형의 정성적인 부분을 가지고 더 받을 수 있었는데 못 받았으니 보전해 달라는 부분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