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학습자’란 경계선 지능을 가진 이들을 일컫는다. 지적장애로 진단되어 장애판정을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평균 지능보다는 전반적인 지적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느리지만 천천히 배워간다는 의미를 담고 ‘느린 학습자’라고 통칭하고 있다.
지적장애 진단 기준은 지능지수(FSIQ) 70 이하인 경우가 해당하며, 평균 지능지수는 85이상으로 본다. 그 경계인 71~84 사이를 느린 학습자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교육에 있어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인재두뇌과학 이슬기 소장은 “센터에 내원하는 느린 학습자 아이의 부모님과 상담하다 보면 제도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면서 “제도적 지원은 장애등급 판정을 기준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어떤 부모님은 학교 담당자로부터 아이 학습 지도를 일부러 멈추고 방치해서 지능지수를 더 떨어뜨리는 게 어떨지 조심스럽게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며 서러움을 토로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적 장애 아동등록이 되면 교내 도움반(특수반)수업이 가능해지고 장애인 바우처 등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느린 학습자들은 학습과 일상생활, 또래관계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지만 여러 정책적인 지원이 있는 지적장애인 그룹에 속하지도 않고 평균 집단에도 끼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정규분포를 따르는 지능지수 평가에 따라 느린 학습자는 전체 인구의 13.59%에 이르며, 한국의 경우 700만명 이상이 느린 학습자에 해당한다는 이야기다.
<느린 학습자 자가진단 리스트>
1. 지능은 정상인데 이해력이나 암기력이 떨어진다.
2. 공부를 열심히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3. 문장이나 단어를 정확하게 베껴 쓰지 못한다.
4. 타인이 말하는 이야기 속 정보를 이해하기 힘들다.
5. 다른 잡음들과 중요한 대화 소리를 구별하지 못한다.
6. 어제, 오늘, 내일, 나중 등 기본적인 시간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
7. 또래아이들의 농담이나 기초적인 은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8. 방금 보거나 들은 것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9. 사용하는 단어가 제한적이다.
10. 사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여, 대명사를 자주 사용한다.
11. 달리기, 줄넘기 등의 기본적인 운동 동작을 적절하게 수행하지 못한다.
이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평균 지능을 가진 또래와 함께 수업을 받기에도 어려움을 느끼고, 도움반(장애학급)에 운 좋게 배정된다고 해도 자신에게 적절한 발달적인 자극을 받지 못한 채 다양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 다반사다.
게다가 등교거부와 같은 학교 적응문제를 자주 겪는 편인데, 초등 저학년까지만 해도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관계에 변화가 생겨나며 친구들이 기피하는 대상으로 낙인 찍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학교 친구들에게 ‘빌런(villain)'으로 불리기도 한다. 빌런이란 원래 악당을 뜻하지만,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는 특이한 행동을 보이거나 민폐를 끼치는 사람을 얕잡아 부르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수인재두뇌과학 이슬기 소장은 “느린 학습자와 모둠형 과제를 함께 하지 않으려고 불쾌한 행동을 유발하는 아이 때문에 고민을 하고 계시는 부모님이 정말 많고, 요즘 아이들이 또래와 조금이라도 핀트가 맞지 않는 다른 아이를 불편해 하는 것 때문에 친구들에게 돈으로 환심을 사기 위해 부모 몰래 지갑에 손을 대는 아이들 케이스도 자주 접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또래관계의 제한된 경험과 학습성취경험을 유년기부터 박탈당한 상태의 느린 학습자들은 낮아진 자기 효능감으로 인해 우울감에 빠지거나 심한 경우 은둔형 외톨이가 되기도 한다"며 "따라서 적절한 시기에 치료와 관심을 받지 못하면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고 우려했다.
우울증, 강박, 틱장애, 선택적 함구증, 자해와 극단적 선택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느린 학습자가 겪게 되는 고충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경계선 지능을 가진 느린 학습자의 성폭력 실태를 연구한 홍미영 박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삼촌과 조카, 교사와 제자, 사장과 종업원 등 면식이 있는 사이에서 성범죄의 피해자가 된 경우가 50%에 달했으며, 처음 본 관계에서도 가해자가 호의를 보이면 느린 학습자는 쉽게 경계심을 낮추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느린 학습자를 조기에 선별하고 제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이 소장은 “느린 학습자는 말 그대로 배우는 속도가 느린 것이며, 결국에는 조기 개입과 적절한 치료선택이 가장 중요하다"며 "겉으로 보기에 또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느린 학습자들은 실상 생애 전반에 걸쳐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외부인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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