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박재형 기자| 일본 에히메현 우치코에서는 오래된 집의 벽부터 눈에 들어온다. 흰 회벽과 옅은 노란빛의 흙벽이 이어지고, 처마 아래에는 저마다 다른 창과 장식이 자리한다. 처음에는 골목 풍경을 보다가 어느새 집 한 채 앞에서 걸음을 멈추게 된다. 마쓰야마에서 성에 오르고 온천에 몸을 담갔다면, 이번에는 옛집의 문턱을 넘어볼 차례다.
우치코와 오즈를 잇는 여행에는 집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목랍(木蠟·식물성 왁스)으로 부를 쌓은 상인의 저택에서 옛 생활을 들여다보고, 역사적인 건물을 고친 호텔에서는 그 안에 머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강변의 별장, 가류산장에 이르면 아름다운 창밖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 기사는 에히메·한국 경제관광교류추진협의회의 지원으로 진행한 현지 취재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벽에 눈길, 계단에 발길…우치코 옛집의 발견


우치코의 요카이치·고코쿠 거리는 에도시대 후기부터 다이쇼시대에 걸쳐 목랍 생산으로 번성한 마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목랍은 나무 열매에서 얻는 식물성 왁스로, 양초 등의 원료로 쓰였다. 당시 상인들이 쌓은 부는 거리를 따라 들어선 저택과 상가에 남았다.
약 600m에 걸친 거리는 1982년 국가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선정되어 있다. 흰 회벽 사이로 보이는 옅은 노란빛 벽에는 지역에서 나는 흙을 썼다. 비슷해 보이는 집들도 가까이에서 보면 벽의 색과 장식, 창의 생김새가 조금씩 다르다. 집 안에서 눈길을 끈 것은 수납공간을 겸한 계단이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길 아래에 물건을 넣을 자리를 마련했다. 회반죽으로 빚은 벽 장식에서는 집을 꾸미던 이들의 솜씨가 느껴졌다.
우치코의 재미는 이런 작은 발견에 있다. 골목 전경을 사진에 담는 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계단 하나와 창문 하나가 구경거리가 된다. 오래된 집이라는 이유로 한데 묶어 보았던 건물들이 저마다 다른 표정을 갖는다.
거리에는 목랍자료관 가미하가 저택과 공예품점, 찻집이 있고 지금도 주민이 사는 집들이 함께 자리한다. 공개된 저택을 둘러보고 다시 골목으로 나오면, 여행자가 구경하는 거리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다가온다.
객실을 나서면 골목…오즈가 호텔이 되는 방식

우치코에서 이어 찾은 오즈에서는 옛집의 또 다른 쓰임을 만났다. ‘닛포니아 호텔 오즈 조카마치’는 마을 곳곳의 역사적인 건물을 객실과 프런트, 식당으로 활용하는 분산형 호텔이다. 옛 상인의 집과 창고 등을 고쳐 여행자를 맞는다.
이곳에서는 호텔의 공간들이 골목으로 이어진다. 한 건물 안의 복도를 따라 객실과 식당을 오가는 대신, 마을을 걸으며 서로 다른 건물에 닿는다. 숙소 바깥의 거리까지 여행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이번에는 숙박 대신 시설을 둘러봤다. 옛 건물의 모습을 간직한 공간에 객실과 라운지가 들어선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구경하던 집이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자, 건물을 바라보는 생각도 달라졌다. 이곳에서 묵는다면 아침에는 어느 골목부터 걸어볼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 같았다.
강을 들이고 계절을 새긴 집, 가류산장

오즈의 가류산장에서는 다시 걸음이 느려진다. 히지카와 강을 내려다보는 이 별장은 목랍 무역으로 부를 쌓은 상인 고치 도라지로가 조성했다. 전통 다실의 미감을 반영한 스키야 양식의 건축으로, 가류인·후로안·문고 등 세 건물이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문을 들어서면 건물에 닿기도 전에 돌담이 시선을 붙잡는다. 돌을 불규칙하게 맞물리게 쌓은 부분 옆으로 부채꼴 배열이 이어지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물이 흐르는 듯한 모양이 나타난다. 하나의 담 안에 서로 다른 표정을 담은 모양새다.

방 안에도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장치들이 숨어 있다. ‘세이스이노마’ 방은 무더위를 고려해 문을 북쪽을 향하게 하고 다른 방보다 천장을 높여 바람이 잘 통하도록 했다. 꽃과 물, 눈을 소재로 한 세공에는 계절을 담았다. 안내를 곁들여 둘러보면 방의 방향과 천장 높이까지 감상의 대상이 된다.
다실 공간인 ‘가게쓰노마’에는 둥근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장치가 있다. 창은 바깥을 내다보거나 빛을 들이는 역할을 넘어 방 안에 또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모르고 보면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여러가지 요소 및 작은 공간에 이토록 여러 생각을 담았다는 점이 가류산장을 보는 재미다.

정원을 지나 강 쪽으로 향하면 절벽 위로 내민 후로안이 나타난다. 히지카와(肱川·히지강)를 내려다보도록 지은 작은 건물이다. 집 안의 세공을 따라 움직이던 시선이 이곳에서는 강으로 향한다. 방과 정원, 강물이 이어지며 별장의 풍경이 완성된다.
한편, 에이메현 여정에 바다 풍경을 더하고 싶다면 이요시의 JR 시모나다역도 후보에 넣을 만하다. 바다를 마주한 승강장과 이요나다의 낙조로 알려진 작은 무인역이다. 이렇듯 오래된 골목을 걷고 옛집에 담긴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면, 에히메현 우치코와 오즈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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