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박재형 기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뉴빌리티의 하이브리드 휴머노이드 ‘빌리’가 천천히 밖으로 나와 선반 앞으로 이동한다. 작업 지점에 도착한 빌리는 자신의 위치와 주변 공간, 물체의 위치를 확인한 뒤 팔을 뻗어 상자를 집어 적재함에 실었다. 작업을 마친 뒤에는 팔을 접고 상체를 낮춰 주행 자세로 전환했다. 사람과 로봇이 함께 오가는 공간에서 이동부터 인식, 조작, 운반까지 하나의 작업 흐름을 이어가는 모습이었다.
29일 뉴빌리티가 처음 공개한 빌리의 시연 모습이다. 뉴빌리티가 이날 강조한 것은 개별 동작의 화려함보다는 하나의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하는 능력이다. 김락희 뉴빌리티 PO는 단순히 이동하는 로봇을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니라 하나의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하게 수행할 수 있는 로봇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빌리, 사람처럼 걷는 대신 ‘일하는 환경’에 맞춰져
빌리는 뉴빌리티가 자율주행 로봇 ‘뉴비’를 운영하며 축적한 공간지능에 물체를 인식하고 조작하는 능력을 결합한 첫 상용 폼팩터다. 작업 대상과 주변 환경을 인식한 뒤 필요한 이동 경로와 작업 위치를 판단하고 물품 이송·적재, 설비 조작 등을 하나의 업무 흐름으로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외형도 이 같은 목적에 맞춰 설계됐다. 두 다리 대신 휠 기반 하체를 적용했고, 두 개의 팔과 손, 높낮이 조절과 360도 회전이 가능한 상체, 모듈형 적재부를 결합했다. 뉴빌리티 관계자는 실내·외 공간에서 빠르고 안정적으로 이동하기 위해 이족보행 대신 휠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사용하는 선반 등 기존 작업 공간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상체 구조와 양팔도 적용했다.
실제 작업에서는 이동과 조작을 별개의 기능으로 보지 않는다. 물건을 집는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로봇이 잘못된 위치나 각도로 접근하면 작업 자체가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빌리는 먼저 작업에 적합한 위치와 자세를 확보한 뒤 물체를 인식하고 조작하는 방식으로 이동과 조작을 연결한다. 현재 빌리가 한 번에 들 수 있도록 설정한 무게는 15㎏ 미만이며, 적재함을 이용할 경우 최대 60㎏까지 싣고 이동할 수 있다.
피지컬 AI 상용화 관건, 예외 상황 대응 능력
빌리의 기반에는 뉴빌리티가 기존 자율주행 로봇 사업에서 축적한 현장 데이터가 있다. 회사는 국내외 150개 이상의 서비스 현장에 약 400대 규모의 로봇을 배치·운영했으며 누적 자율주행 거리는 14만㎞를 넘었다고 밝혔다. 현재 운영 규모를 기준으로 연간 약 1억4500만건의 시간·공간 인지 데이터가 생성된다는 설명이다.

다만 기존 주행 데이터가 빌리의 조작 능력으로 곧바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뉴비가 축적한 주행·공간 데이터는 로봇이 작업 위치와 자세를 결정하는 공간지능의 기반이 되지만, 실제 물체를 집거나 설비를 조작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조작 경험과 데이터가 필요하다. 회사는 몸과 손의 작업 데이터를 별도로 확보하고 있으며 향후 실제 개념 증명(PoC) 과정에서 각 작업에 필요한 데이터를 학습할 계획이다.
결국 피지컬 AI 상용화의 관건은 통제된 환경에서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것을 넘어 현장에서 발생하는 예외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느냐라는 분석이다. 김 PO는 “로봇에게 있어 자율성이란 한 번에 완벽하게 끝내는 것이 아니라 예상과 다른 상황을 맞이했을 때 그 상황을 이해하고 다음 동작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뉴빌리티는 성공 사례뿐 아니라 작업 실패와 예외 상황도 데이터로 축적해 기능과 스킬을 고도화한다는 방침이다.
산업 분야마다 수개월 PoC…사람의 80~95% KPI 목표
상용화까지 넘어야 할 과정도 남아 있다. 뉴빌리티는 질의 응답에서 로봇이 실제 현장에 들어가기 위해 기본 동작에 대한 강화학습·모방학습을 거친 뒤 다양한 예외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현장 학습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 통상 수개월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제조·물류 등 산업별로 필요한 동작과 판단이 다른 만큼 특정 산업별 PoC를 거쳐 단계적으로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PoC가 예정된 분야는 정밀 제조, 식품, 물류, 대규모 교통 복합시설 등 네 곳이다. 이 가운데 CJ제일제당과는 올해 안에 빌리 한 대를 투입해 작업 가능성을 검증할 예정이다. PoC 이후 상용화 단계에 진입하면 같은 산업 내 다른 기업으로 공급을 확대하고 단기적으로 수십~수백대 규모의 현장 배치를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이 회사는 작업 성능 역시 단계적으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초기 단계에서는 사람 대비 30~40% 수준의 KPI 달성을 목표로 시작한 뒤 총 4단계를 거쳐 마지막 단계에서 사람 대비 80~95%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 현재 사양을 기준으로 작업에 따라 한 번에 약 4~6시간 동안 업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회사는 휴게시간을 제외하면 한 교대조에서 작업자 한 명 수준의 업무 시간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현재 목표치와 회사 측 계산으로, 향후 PoC를 통해 실제 현장에서 검증해야 하는 부분이다.
강기혁 뉴빌리티 CEO는 이날 범용 휴머노이드 자체를 만드는 것보다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이동과 조작을 먼저 연결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기존 배달·순찰 로봇 사업을 운영하면서 단순한 이동만으로는 고객의 투자수익률(ROI)을 충분히 높이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도착한 뒤 실제 임무까지 수행하는 로봇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는 설명이다.
뉴빌리티는 빌리를 통해 제조·물류 현장에서 피지컬 AI의 상용 가능성을 검증한 뒤 적용 영역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강 CEO는 “사람이 일하는 공간 안에서 이동과 조작을 연결해 제조·물류와 같은 실제 임무를 수행하는 로봇을 지향한다”며 “피지컬 AI 상용화 가능성을 현장에서 증명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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