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의 퇴근 시간 모습은 매우 흥미롭다. 같은 곳에서 서로 확연히 다른 두 모습이 보인다.
내국인들은 집으로 가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인파를 가른다. 휴대전화로 지하철 시간을 확인하고, 신호가 바뀌기 전에 횡단보도를 건너려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들에게 명동은 ‘지나가는 곳’이다.
반면 골목마다 가득 찬 해외 관광객들의 걸음은 전혀 다른 속도다. 화장품 가게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길거리 음식을 바라보며 관심을 갖고, 간판 하나에도 카메라를 든다. 같은 거리인데도 그들에게 명동은 ‘머무는 곳’이다.
똑같은 10분도 빨리 지나가야 하는 시간과 오래 기억하고 싶은 시간으로 구분된다.
우리는 흔히 여유를 시간의 많고 적음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여유는 시간의 양보다 시간을 바라보는 태도로 결정된다. 일정이 비어 있어서 여유로운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목적이 아닌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여유가 생긴다.
인생도 비슷하다. 우리는 늘 다음을 향한다. 다음 회의, 다음 승진, 다음 집, 다음 삶. 목적지가 생기면 생길수록 현재는 통과해야 할 과정이 된다. 그렇게 현재는 점점 짧아지고 생은 어느새 해야 할 일들의 목록으로 채워진다.
그런데 여행에선 목적보다 과정이 의미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일부러 골목길을 돌아가고, 이름 모를 카페에 들어가며, 예정에 없던 풍경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어쩌면 삶에 필요한 것은 여행자의 시선인지도 모른다. 매일 지나는 거리도 처음처럼 바라볼 수 있다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새로운 풍경은 얼마든지 발견된다.
명동에서 사람들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걷는 속도가 아니다. 같은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이 있고, 음미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여유는 시간이 아니라 관점으로 만들어진다.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