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민영화는 오랜 논쟁거리다. 한화의 지분 확대로 민영화 논의가 다시 불붙었지만, 누가 인수할 것인가에 앞서 따져야 할 것은 KAI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다. 민영화의 근거로 거론되는 투자 확대와 책임경영도 회사의 실태에 비춰 검증해야 한다. 본지는 KAI가 축적해 온 기술과 사업 역량, 재무구조와 경영체제를 들여다본다. 이어 성장을 이끈 경쟁력과 도약을 막는 한계를 짚고, 민영화가 그 한계를 풀 해법인지 살펴본다.
|스마트투데이=박재형 기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훈련기와 경전투기, 헬기에 이어 KF-21 전투기 양산에 들어갔다. 지난달 22일 첫 KF-21 양산기를 공군에 인도했고, 이달 12일에는 사천 우주센터의 위성 환경시험시설 완공을 발표했다. 여기에 KAI는 군용 완제기를 개발·생산하는 한편 보잉·에어버스에 민항기 구조물을 공급하고, 위성 개발도 맡고 있다.
KAI의 사업 영역은 넓지만 분야별로 확보한 경쟁력에는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T-50·FA-50 계열은 해외 고객을 확보한 수출 제품이고, KF-21은 군 운용을 시작하는 단계다. 헬기는 국내 군·관용 수요를 바탕으로 성장해 수출에 나섰으며, 대형 민항기에서는 완성기 제작사의 공급망에 참여한다. KAI의 현재 경쟁력은 이들 사업의 개발·양산·수출 경험을 함께 놓고 봐야 드러난다는 평가다. 이에 폭넓은 항공기 개발·양산 경험을 쌓은 KAI의 다음 과제는 훈련기·경전투기에서 확보한 해외 시장 기반을 전투기와 헬기로 넓히는 데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훈련기·전투기·헬기…한 기종을 여러 제품으로 키워
KAI의 군용기 사업은 KT-1 기본훈련기, T-50 고등훈련기, FA-50 경전투기, KF-21 전투기로 이어진다. 회전익에서는 수리온과 소형무장헬기(LAH) 미르온을 생산한다. 비행교육부터 전투, 병력 수송, 의무후송 등으로 제품의 용도를 넓혀 왔다.
성장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기존 기체를 바탕으로 파생형을 개발하는 능력이다. 미국 록히드마틴과 공동 개발한 T-50은 2002년 초도비행 이후 TA-50과 FA-50으로 확장됐다. FA-50에는 전술데이터링크와 정밀유도무기 운용 기능 등을 적용했다. 초음속 훈련기 개발 경험을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 제품으로 연결한 것이다.
수리온도 같은 방식으로 활용 범위를 넓혔다. 육군 기동헬기에서 출발해 상륙기동·의무후송용과 경찰·소방·산림·해경용 등으로 파생형을 개발했다. 별도로 개발한 미르온은 에어버스 H155B1 플랫폼을 기반으로 항전장비와 무장 사격통제장비 등을 통합한 소형무장헬기다. 2022년 체계개발을 마치고 2024년부터 육군에 배치됐다.

KF-21은 이보다 높은 성능을 요구하는 전투기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약 1600회의 비행시험을 거쳐 지난 5월 블록Ⅰ의 기본성능과 공대공 능력에 대한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다. 시제기 개발·시험을 넘어 양산기를 공급하기 시작했지만, 공대지 능력은 후속 개발·시험을 통해 확보해야 한다.
민수사업에서는 보잉·에어버스의 대형 민항기 동체와 날개 등 주요 구조물 설계·제작에 참여한다. 군용기에서는 완제기 개발과 생산을 맡고, 대형 민항기에서는 구조물 공급사로 참여하는 구조다. 에어버스도 KAI와 대한항공을 한국의 주요 산업 협력업체로 소개하고 있다.
우주사업에서는 위성 부품 제작에서 개발 총괄로 역할을 넓혔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차세대중형위성 1호는 항우연이 개발을 총괄했고, KAI는 기술을 이전받아 후속 2~5호 개발 총괄을 맡았다. 최근에는 위성 설계·제작·조립에 필요한 시설에 환경시험시설을 더했다.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서 기술을 축적해 산업체가 개발을 주도하는 단계로 옮겨가는 사례다.
KAI 국내 강점은 폭넓은 유인 군용기
국내 업체와 비교하면 KAI의 강점은 훈련기부터 전투기, 헬기까지 이어지는 유인 군용기 제품군과 개발·양산 경험이다. 여러 종류의 항공기를 설계하고 시험한 뒤 군에 공급했으며, 사용 목적에 맞춰 기체와 장비를 바꾸는 사업을 반복해 왔다. 엄효식 국방안보포럼 방산안보실장은 스마트투데이에 KAI가 고정익과 회전익 항공기를 개발해 온 성과를 높게 평가했다. 그는 “(국내에서) KAI의 위치는 절대적인 거고 지금까지 이룬 성과도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국내 항공기 사업 전체를 KAI의 독점적 영역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항공기 사업을 하는 또 다른 업체인 대한항공은 KAI와는 다른 분야에서 사업 기반을 쌓았다. 군용기 창정비와 성능개량, 민항기 구조물 제작에 참여해 왔고, 무인기에서는 체계종합을 맡고 있다. 올해 4월에는 중고도 정찰용 무인항공기(MUAV) 양산 1호기를 출고했다. 대한항공은 이 사업에서 비행체와 지상통제체계, 데이터링크, 센서 등을 통합했다. 유인 훈련기·전투기·헬기에서는 KAI가 폭넓은 제품군을 갖췄지만, 무인기와 군용기 개조·정비에서는 대한항공이 별도의 개발·사업 경험을 확보하고 있다. 기체 구조물에서는 두 회사 모두 해외 완성기 업체의 공급망에 들어가 있다.
민영화 논란이 불거진 한화 계열사와는 완제기와 핵심 장비를 나눠 맡는 관계가 두드러진다. KF-21에 들어가는 GE F414 엔진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면허생산에 기반한 국내 조립과 부품 국산화를 담당한다. 한화시스템은 국방과학연구소 주관의 AESA 레이더 개발에 참여하고 임무컴퓨터 등 항전장비를 공급한다.
이 같은 분업에서 KAI가 맡는 역할은 체계종합이다. 기체와 엔진, 레이더, 무장이 함께 작동하도록 설계·통합하고 비행시험으로 성능을 검증해 완제기로 생산한다. 엔진 등 핵심 장비에서는 국내외 업체와 협력하면서 항공기 전체의 개발·생산을 책임지는 구조다.
훈련기 수출로 쌓은 경쟁력…전투기·헬기는 해외 기반 확대 과제
KAI는 훈련기·경전투기 수출을 통해 해외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바 있다. FA-50은 2023년 말레이시아의 선택을 받았고, 당시 말레이시아 국방장관은 항공기의 운용 이력을 구매 근거로 설명했다. 다만 이 시장에서는 이탈리아 레오나르도의 M-346 계열 등과 경쟁해야 한다. 레오나르도는 2024년 전투형의 AESA 레이더와 추가 무장 통합을 포함한 블록20 개량 계획을 발표했다. 수출 이후에도 성능개량과 고객 지원을 놓고 경쟁이 이어지는 시장이다.
전투기와 헬기는 해외 고객 기반을 더 쌓아야 한다는 분석이다. 프랑스 다소항공의 라팔은 2004년 해군, 2006년 공군에서 운용을 시작했으며 공중전과 지상타격·정찰·대함공격 등을 수행한다. KF-21은 공대공 능력을 검증한 초기 양산 단계로, 확보한 임무 범위와 운용 경험에서 차이가 있다. 수리온도 국내에서 여러 파생형을 생산했지만 첫 수출계약은 2024년 12월 이라크와 체결했다.
엄 실장은 KAI의 항공기 개발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해외 시장 확대에는 기체 성능 외의 역량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마케팅이라는 거는 그냥 비행기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며 “유지보수 능력이라든지 또는 국가적 차원에서 금융 지원 능력, 품질, 기술 개발 이런 것들이 다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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