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4구역] 일대 고층 빌딩, 바로 앞 종묘 경관 훼손 논란 직면
일대 상인들, 힐스테이트로 남산 경관 가려지자 ‘불만’
조합원 재산권이냐 문화유산 가치보존이냐…서울시-문체부 법적공방 

|스마트투데이=김종현 기자| 서울 종로 한복판인 세운재정비촉진지구 4구역(이하 세운4구역)에서의 고층 빌딩 건립을 놓고 조합원들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문화재청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재개발 지구 바로 맞은편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가 있는데, 최고 약 142m의 건물이 들어서면 종묘의 경관이 헤쳐진다며 문체부와 문화재청은 행정소송까지 제기했다.

일대 부동산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떨까? 다수의 전문가들은 세운4지구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종묘 경관이 훼손되는 건 맞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종묘 경관의 훼손 정도가 조합원들의 재산권에 제약을 걸 만큼 심하다는 의견에 대해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 14일 오후 기자가 만난 서울 종로 세운4지구 일대 부동산 전문가들은 재개발 지구에 들어설 고층 건물이 종묘의 경관을 훼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가 고시한 계획만큼 최고 약 142m의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문체부와 문화재청이 우려하는 만큼 종묘의 경관이 가려지게 된다는 데에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시민들이 세운4구역 재개발 지구 공사 현장을 지나고 있다. 출처=김종현 기자
시민들이 세운4구역 재개발 지구 공사 현장을 지나고 있다. 출처=김종현 기자

◆ 남산까지 보였던 경관, 고층 건물들로 인해 막혀

세운4지구 인근에 위치한 A 공인중개사의 관계자는 “원래는 종묘에서 남산타워까지 일대 경관을 다 볼 수 있었다”면서도 “몇 년 전 청계천 남쪽 세운3구역에 고층 아파트 ‘힐스테이트 세운센트럴’이 들어서면서 남산 경관이 거의 다 가려졌다. 이 때문에 종묘 인근 상인들의 불만도 많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런 상황에 종묘 바로 앞에 142m의 건물이 들어서면 남산은 물론 서울 일대 경관도 대부분 다 가려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B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문화재청과 시민단체들이 우려하는 만큼 종묘 경관이 훼손되는 건 맞다”며 “세운4구역 부근 예지동도 그렇지만 봉익동 상인들과 주민들은 적지 않은 불만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경관의 헤침 정도가 조합원들의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걸 만큼 큰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세운4구역에서 바라본 종묘. 출처=김종현 기자
세운4구역에서 바라본 종묘. 출처=김종현 기자

C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종묘 경관 문제로 세운4구역 조합원들은 10년이 넘도록 재개발을 미뤄 왔다”며 “그동안 조합원들이 본 재산적 피해액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안다. 대법원에서도 초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온 만큼 문체부와 문화재청도 재개발에 제약을 거는 것에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분석했다.

A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재개발 행위에 대해서 맹목적으로 반대만 할 수 없는 게 법적으로 걸리는 부분이 없다”며 “조합원들의 재산권도 걸린 만큼 문체부와 문화재청이 재개발 사업 자체를 막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B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고 문화적 가치가 높은 것은 맞지만, 그것 때문에 국민의 재산권 행사를 막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조합원들의 재산권 행사를 막으면서까지 문화재의 경관을 지키는 행위에 정당성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의견을 내비쳤다.

서울 세운상가. 출처=김종현 기자
서울 세운상가. 출처=김종현 기자

◆ 서울시 vs 문체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경관 문제로 정면충돌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는 2006년부터 재개발 논의가 본격화됐다. 2007년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세운4구역의 사업시행자로 지정되고, 최고 122m 높이의 초고층 건물 개발 계획을 구상했다.

그러나 2009년 문화유산심의위원회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의 경관을 해한다며 재개발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종묘 맞은편에 고층 건물을 지으면 종묘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해쳐지기 때문에 높이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남산 등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경관을 볼 수 없게 돼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관람 만족도가 떨어질 것이란 분석도 제기됐다. 아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취소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실제 유네스코는 올해 3월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이 종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세계유산영향평가(HIA) 실시를 요청하는 공식 문서를 국가유산청에 보냈고, 유산청은 이를 서울시에 전달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일대. 출처=김종현 기자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일대. 출처=김종현 기자

그러나 서울시는 묵묵부답이었다. 유네스코의 권고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만큼 HIA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아예 한발 더 나아가 “세운상가는 종묘로부터 170m가량 떨어져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HIA를 받으면 결과가 나오는 데에만 수년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재개발 사업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어 서울시가 유네스코의 요청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산업혁명 당시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영국 리버풀 해양도시는 인근의 대규모 재개발 공사로 인해 2021년 세계문화유산 지위를 상실했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던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 계곡도 인근에 4차선 다리가 건설되며 2009년 세계문화유산 목록에서 제외됐다.

수십년간 여러 논의가 오고 간 끝에 2018년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받은 세운4구역은 2022년 철거 작업에 돌입했다. 이후 2023년 10월 서울시는 문화재보호 조례 일부를 수정해 세운4구역에 최고 141.9m의 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게끔 했다. 서울시 문화재보호 조례에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국가지정유산 100m 이내) 밖이더라도 건설공사가 문화유산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그 영향을 검토해야 한다는 조례를 삭제한 것이다. 조례안 수정 후 세운4구역의 종묘 쪽 건물 높이는 기존 55m에서 98.7m로, 청계천 쪽은 71.9m에서 141.9m까지 고도제한이 완화됐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2구역 일대 전경. 출처=김종현 기자
세운재정비촉진지구 2구역 일대 전경. 출처=김종현 기자

문체부와 문화재청은 반발했다. 서울시가 조례 개정 과정에서 문화재청 등 관련 기관과 협의를 하지 않은 점을 이유로 대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권한을 가졌다고 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겠다는 서울시의 발상과 입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비판했고, 허민 문화재청장은 “종묘 앞에 세워질 빌딩은 서울 내 조선왕실 유산들이 수백 년간 유지해 온 역사 문화경관과 가치를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대법원은 이달 6일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시의 조례 개정 행위가 법령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의 판단까지 나온 지금 세운4구역 재개발에 법적인 제약은 일단 없는 상태다. 추가적인 소송 등 사업을 지체할 만한 리스크가 더는 나오지 않으면 최고 141.9m 높이의 건물과 30~40층 규모의 마천루를 세워 글로벌 기업을 유치한다는 서울시의 계획대로 세운4구역은 개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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