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나연 기자| 지난주 미국 뉴욕 금융시장에서 인공지능(AI) 랠리에 균열이 발생하자 국채가 전통적인 안전자산 지위를 되찾고 있다. 앤트로픽과 코어위브 등 핵심 기업의 사업 불확실성으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100 지수가 급락하자, 투자자들의 자금이 국채 시장으로 급격히 이동했다. 이에 따라 올해 국채 가격의 추가 하락을 예상하고 대규모 매도 포지션을 취했던 공매도 세력은 큰 손실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마감 기준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한 주 동안 약 17bp 하락했다. 같은 기간 나스닥 100 지수는 5.5% 폭락했다. 뉴욕 금융시장에서 10년물 국채 금리와 기술주 벤치마크 지수가 단 일주일 만에 이 정도로 동반 급락한 것은 2025년 4월 관세 갈등 여파 이후 처음이다.
이번 국채 반등은 그동안 주식 시장 침체기에도 국채가 방어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흐름과 대조를 이룬다. 끈질긴 인플레이션과 견조한 경제 지표, AI 투자 붐을 조달하기 위한 정부와 기업의 대규모 차입이 겹치면서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7개월 동안 치솟아 20여 년 만의 최고 수준에 도달한 바 있다.
주식 시장의 최근 변동성은 국채 약세에 쏠려 있던 시장 구도를 뒤흔들었다. 투자자들이 채권 약세에 지나치게 공격적인 베팅을 걸어둔 상태였기에 숏커버링(공매도 청산)이 촉발됐다. 제임스 아세이 말버러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 포트폴리오매니저는 마크 트웨인의 명언을 빌려 “미국 국채의 죽음에 대한 소문은 대단히 과장됐다”고 말했다.
AI 붐 전체의 종료를 단언하기는 이르지만 시장에서는 균열의 조짐을 주시하고 있다. AI 대표 기업인 앤트로픽의 매출 성장세 둔화 조짐과 AI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 코어위브의 채권 가격 급락은 국채 약세를 이끌었던 AI 테마에 의문을 낳고 있다. 그동안 막대한 AI 설비 투자는 경제를 부양하는 동시에 반도체 수요를 폭발시키며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워왔다.
아폰소 보르게스 율리어스베어 채권전략가는 보고서에서 “AI 주도 경기 침체는 전통적인 수요 충격에 훨씬 가깝고 디스인플레이션의 촉매가 될 수 있다”며 “이러한 국면에서는 중기 국채가 다시 효과적인 포트폴리오 헤지 수단 역할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율리어스베어는 중기 국채 비중 확대를 권고했다. 보르게스는 2000년부터 2020년 사이 주식 시장이 하락할 때 10년물 국채가 일관되게 플러스 수익률을 안겨줬다고 지적했다.
AI 인프라 확충을 위한 기업들의 대규모 채권 발행도 국채 수급을 짓누르는 요인이었다. 올해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한 투자적격 등급 기업들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29% 늘어난 1조7000억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AI 투자에 대한 기대감이 식을 경우 자본 조달 경쟁도 완화될 수 있다.
존 브릭스 나틱시스북미 금리전략총괄은 “투자자들이 보유 중인 AI 연계 채권의 가치 하락을 목격하면 신규 채권 인수에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며 “단기적으로 AI 회사채 발행 여력이 줄어들면서 자금 쏠림에 대한 우려가 완화돼 장기 국채 매수가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지난주 극단적인 숏 포지션에 들어갔던 원자재거래자문사(CTA)들이 선물 매도 포지션을 청산한 점 역시 채권 강세를 뒷받침했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는 끈질긴 인플레이션이 채권 시장에 가하던 부담을 일부 덜어줬다. 지난주 예상치를 웃돈 소비자물가 발표 직후 시장에서는 연방준비제도(Fed)가 이달 기준금리를 인상할 확률을 50% 수준까지 반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식 급락세가 이어지며 금리 인상 기대는 빠르게 식었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국제통화기금(IMF) 연례 총회에서 물가 안정을 달성하겠다는 발언 외에 정책 경로에 대해 침묵한 점도 반영됐다.
채권 랠리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경계 섞인 시각도 상존한다. 스티븐 배로우 스탠다드뱅크 G10전략총괄은 향후 인플레이션 위험과 국채에서 주식으로 이동하는 구조적 흐름을 지적하며, 이번 반등이 오히려 시장의 혼란을 유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 전쟁 여파로 폭등한 유가도 복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산 디젤 추가 방출 합의를 둘러싼 의구심 속에 유가가 뛰자 지난 금요일 장중 국채와 주식이 함께 하락세를 나타내기도 했다.
마사히코 루 스테이트스트리트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 선임채권전략가는 워시 의장의 포워드 가이던스 부재가 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장기 투자자에게는 “상황이 다르게 보인다”며 “AI발 위험 회피 국면이 본격화한다면 국채는 지난 몇 년간 투자자들이 놓쳤던 헤지 기능을 제공할 역량을 점차 보여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주 채권 시장은 주요 경제 지표 발표와 국채 입찰을 소화할 예정이다. 19일 전미주택건설협회(NAHB) 주택시장지수를 시작으로 20일 ADP 주간 고용 변동·필라델피아 연은 비제조업 활동 지수·주택착공 및 허가 실적, 21일 MBA 모기지 신청 건수, 22일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콘퍼런스보드 경기선행지수, 23일 S&P 글로벌 미국 구매관리자지수(PMI)·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 등이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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