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나연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실적 달성과 이익 전망치 상향에도 주식시장에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3분기 107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세와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자금 조달 우려가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다만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와 메모리 공급 부족이 2027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는 변함이 없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주 예정된 ASML과 TSMC의 실적 발표가 향후 반도체 주가의 방향을 가름할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대비 4.39% 하락한 25만500원, SK하이닉스는 4.52% 내린 160만5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외국인은 두 종목을 합쳐 1조5762억원을 순매도했다. 이는 같은 날 코스피 전체 외국인 순매도액의 약 78%에 달하는 규모다.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027년 합산 영업이익 전망치는 이달 초 946조원에서 956조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실적 기대감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외국인 매도가 이어짐에 따라 향후 이익 성장의 지속성과 수급 회복 여부가 주가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역대급 실적에도 외국인은 매도…높아진 눈높이와 자금 조달 우려
삼성전자는 지난 8일 3분기 연결기준 매출 195조원, 영업이익 107조4000억원의 잠정실적을 발표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782.5% 급증하며 사상 처음으로 분기 100조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발표 당일 주가는 2.42% 하락했고 12일에도 4% 넘게 떨어졌다.
실적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가 이미 상당히 높아진 점이 주가 발목을 잡았다. 연합인포맥스가 집계한 3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105조7533억원으로 실제 발표치가 이를 약 1.6% 웃돌았다. 반면 매출은 시장 전망치인 200조원 안팎을 밑돌았다.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음에도 주가 상승을 이끌 추가 동력은 부족했던 셈이다.
이익 전망과 주가가 엇갈리는 현상은 미국 시장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DS투자증권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AI 하드웨어 기업 23곳의 이익 전망치는 평균 4.4% 상향됐으나, 지난주 주가는 2.0% 하락했다. 반면 소프트웨어 기업 28곳은 이익 전망치 상향폭이 0.7%에 그쳤음에도 주가가 5.0% 상승했다. AI 투자에 필요한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지면서 투자자들이 미래 이익의 실현 가능성을 재평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오픈AI의 매출 규모를 둘러싼 논란도 투자심리를 악화시켰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8일 오픈AI의 9월 말 기준 연환산 매출이 기존에 거론되던 700억달러 수준에 못 미치는 약 500억달러라고 보도했다. 매출 집계 방식에 따른 차이였으나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커졌다. 오픈AI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약 2780억달러의 누적 마이너스 잉여현금흐름을 예상하고 있다. 미국 장기금리가 5%대에서 움직이는 상황에서 AI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과 투자 지속 가능성이 반도체 업종의 새로운 변수로 부각됐다.
국내 증시에서는 외국인 매도세가 주가 하락 압력을 키우고 있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외국인은 12일까지 5거래일 연속 코스피에서 순매도를 이어갔다.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이 종료되고 SK하이닉스도 매입 완료를 앞두면서 수급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태다.
AI 반도체 호황은 견조…2027년 D램 공급 부족 심화 전망
반도체 업황 자체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긍정적이다. 특히 AI 반도체와 PC·스마트폰·자동차용 비(Non)AI 반도체 간 차별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DS투자증권은 최근 인텔, 퀄컴, NXP 등 비AI 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업황에 대한 시장 평가가 악화했다고 분석했다. PC와 스마트폰, 자동차 시장의 수요 부진이 영향을 미친 탓이다. 반면 엔비디아와 AMD 등 AI 반도체 기업은 최근 주가 조정에도 불구하고 중장기 업황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유지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수급 구조도 공급업체에 유리하게 흐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2026년 D램과 낸드 공급 부족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2027년에는 부족 규모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역시 2027년 D램 수급 불균형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트렌드포스가 추산한 2026년 D램 공급 부족률은 1~2% 수준이며, 2027년에는 수요 증가율이 공급 증가율을 더욱 크게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공급 제약의 핵심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 확대다. HBM은 범용 D램보다 생산에 필요한 웨이퍼가 많다. 메모리 제조사들이 생산능력을 HBM과 서버용 D램에 우선 배정하면서 범용 D램 공급이 제한되는 구조다. 신규 공장을 건설하더라도 실제 생산 물량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는 시점은 2028년으로 예상된다.
공급 부족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올해 4분기 범용 D램 계약가격이 전 분기 대비 10~15%, 낸드 계약가격은 15~20%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과거 메모리 호황기와 구분되는 핵심 변화는 장기공급계약(LTA)의 확대다.
마이크론은 지난달 30일 실적 발표에서 2027년 HBM 공급 예정 물량 대부분에 대해 고객과 계약을 체결했으며, 계약 가격도 전년 대비 상당 폭 인상됐다고 밝혔다. 현재 마이크론이 확보한 장기 고객공급계약은 26건으로, 2030년까지 예상 매출의 35%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추산된다. 마이크론은 D램과 낸드 모두 2027년과 2028년까지 공급 부족이 지속될 것으로 보았다. 장기계약을 통해 일정 수준의 공급 물량과 가격 조건을 확보하면서 실적 예측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다만 낸드 시장에 대해 트렌드포스는 신규 생산능력 확대로 2027년 하반기부터 공급 여건이 완화될 것으로 전망해 시각차를 보였다.
AI 인프라 투자 역시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JP모건자산운용에 따르면 알파벳,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주요 하이퍼스케일러 5곳의 전체 설비투자는 2026년 7990억달러에서 2027년 1조930억달러로 37%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8년에도 투자 규모가 10%가량 추가 확대될 전망이다. AI 데이터센터 증설에 필요한 반도체 수요가 지속되는 반면 공급 확대에는 시간이 걸려 메모리 호황이 장기화될 가능성에 힘이 실린다.
ASML·TSMC 실적이 첫 분기점…2027년 설비투자 확대 여부 주목
향후 반도체 주가의 방향을 가름할 첫 번째 이벤트는 이번 주 예정된 ASML과 TSMC의 실적 발표다. ASML은 14일, TSMC는 15일 각각 3분기 실적을 공개한다. 주요 관전 지점은 두 기업이 제시할 2027년 전망이다. ASML에서는 반도체 제조사들의 장비 발주와 설비투자 계획을, TSMC에서는 AI 반도체 수요와 첨단공정 생산능력 확대 계획을 확인할 수 있다.
ASML은 지난 7월 2분기 실적 발표에서 AI 투자 확대에 따라 반도체 제조사들이 생산능력 확충 계획을 앞당기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ASML은 2027년 저개구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공급능력을 올해 대비 30% 확대할 계획이다. 올해 약 65대인 공급능력을 2027년 약 85대 수준으로 늘리는 구상이다. 심자외선(DUV) 액침 노광장비도 올해 약 130대에서 30% 확대하고 2028년 추가 증설을 검토 중이다. ASML의 올해 매출 전망치는 430억~450억유로다.
이번 실적 발표에서는 신규 수주액과 EUV 장비 수주 비중이 핵심 지표가 될 전망이다. 반도체 제조사들이 2027년 장비 공급 물량을 얼마나 확보했는지, 메모리 업체들의 주문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장비 수주가 확대된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메모리 제조사들이 내년에도 설비투자를 늘릴 가능성을 뒷받침하며,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신규 수주 기대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TSMC 실적을 통해서는 AI 반도체의 실제 생산 수요 증가세를 확인할 수 있다. TSMC가 지난 8일 공개한 월별 매출을 합산하면 3분기 매출은 약 1조4942억 대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약 51% 증가했다. 이미 성장세가 확인된 만큼 시장의 관심은 향후 생산능력 확대 계획과 2027년 설비투자 전망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 2분기 기준 TSMC의 고성능컴퓨팅(HPC) 부문 매출 비중은 66%에 달했으며, 7나노 이하 첨단공정의 웨이퍼 매출 비중은 77%였다. 올해 설비투자 예산도 600억~640억달러로 확대했다. 이번 발표에서는 2나노·3나노 첨단공정과 첨단 패키징 수요의 견조함 여부, 엔비디아 GPU 수요와 더불어 구글, 아마존, 메타 등이 자체 개발하는 AI 반도체 생산 확대 여부가 주요 관전 포인트다. 빅테크의 자체 AI 칩 수요가 늘어나면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의 고객 기반이 넓어져 개별 AI 기업의 투자 계획이 전체 반도체 수요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 수 있다.
DS투자증권 양형모 연구원도 이번 주 ASML과 TSMC의 실적 발표를 국내 반도체 주가의 방향을 가를 핵심 이벤트로 지목했다. 2027년 수요가 구글, 아마존, 메타의 자체 칩과 각국 정부 등으로 확대되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삼전·닉스 주가 반등 조건…2027년 이익·주주환원·외국인 수급
국내 반도체 주가의 추가 상승을 위해서는 2027년 이후에도 높은 이익을 유지할 수 있다는 시장의 확신이 필요하다. 실제로 증권가의 내년 실적 전망은 다시 상향되는 추세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2027년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지난 2일 546조원에서 8일 555조원으로 9조원 높아졌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컨센서스도 400조원에서 401조원으로 1조원 상향됐다. 두 기업의 합산 영업이익 전망치가 불과 4거래일 사이 10조원 증가한 것이다.
키움증권 한지영 연구원은 "삼성전자 3분기 잠정실적 이후 실적 전망 변화도 간과할 수 없는 변수"라고 강조했다. 지난 9월 이후 정체됐던 이익 전망치가 다시 상향되기 시작한 점이 국내 증시의 추가 하락을 제한하는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2027년에도 높은 이익을 기록하는 것과 이익 증가율이 계속 높아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이 급증한 만큼 향후 성장률이 둔화하더라도 이익 규모 자체는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주식시장이 2028년까지의 이익 전망에 주목하는 이유다. 이익 추정치가 추가로 상향될 수 있는지, 메모리 가격 상승세와 장기공급계약이 높은 수익성을 얼마나 오랫동안 뒷받침할 수 있는지가 주가 향방을 가를 핵심 요소다.
이달 말 예정된 SK하이닉스와 오는 29일 삼성전자의 실적 발표도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 실적 발표에서는 HBM4 출하 확대와 수익성, 장기공급계약의 가격 조건 및 2027년 설비투자 계획에 관심이 쏠린다. HBM4 양산 확대가 실제 이익 증가로 얼마나 연결되는지가 핵심이다. 삼성전자 실적 발표에서는 HBM4 공급 확대와 고부가 D램 판매 비중, 범용 메모리 가격 상승에 따른 수익성 개선이 주요 관전 지점이다. 2027년에도 HBM 경쟁력을 바탕으로 이익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두 기업의 추가 주주환원 정책 역시 주가 변수로 꼽힌다. 자사주 매입 종료에 따른 수급 공백 우려를 완화할 새로운 주주환원 계획이 투자심리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외국인 수급 회복도 필수적이다. 유안타증권은 미국 장기금리와 채권시장 변동성 안정, 외국인의 현·선물 매도 강도 축소,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 전망 추가 상향을 주요 확인 지표로 제시했다. 유안타증권 이재원 연구원은 반도체 업종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유지하면서도 양호한 실적이 곧바로 주가 상승이나 외국인 순매수로 연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향후 이익 성장의 지속성과 실제 수급 변화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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