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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김현정 칼럼

김홍도 '서당' 속 훈장이 화면 안으로 들어간 이유

오피니언 |김현정 한국화가 | 입력 2026. 10. 08. 09:00

온라인 수업은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교실이다. 등교하지 않아도 수업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눈앞에 선생님이 없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은 쉽게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간다. 코로나19로 등교와 수업, 만남까지 화면 너머로 옮겨 가자 이 딜레마는 모두의 일상이 됐다. 국내 최대 입시 교육기업 메가스터디와의 아트 컬래버레이션은 이 딜레마에서 출발했다.

메가스터디의 고민은 분명했다. 온라인 수업은 편리하다. 그러나 편리한 만큼 집중력은 흩어진다. 필자는 이 흩어지는 집중력을 기술이 아니라 그림으로 붙잡아 보고자 했다.

필자가 참조한 작품은 단원 김홍도의 〈서당〉이다. 원작에는 훈장 앞에서 훌쩍이는 아이가 있다. 그 모습을 보며 킥킥대는 학동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있다. 〈21세기서당(feat.메가스터디)〉은 이 구도를 그대로 가져왔다. 바뀐 것은 손에 쥔 물건이다.

작품 속 학동들은 붓과 두루마리 대신 태블릿PC와 노트북을 앞에 두고 있다. 귀에는 무선 이어폰을 꽂았고, 곁에는 밤샘 공부의 동반자인 에너지 드링크가 놓였다. 이어폰은 잡음을 차단하고, 에너지 드링크는 잠을 쫓는다. 모두 흐트러지는 집중력을 붙잡기 위한 도구다. 한복을 입은 채 디지털 기기로 무장한 아이들은 그 시절 우리 모두의 초상이기도 하다.

가장 파격적인 장치는 훈장의 자리다. 원작의 훈장이 앉아 있던 자리에 칠판이자 스크린인 화면이 들어섰다. 화면 안에는 정장을 입고 갓을 쓴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이 있다. 전통과 현대, 권위와 캐주얼함이 한 인물 안에서 부딪힌다. 우스꽝스러운 이 조합이 상징하는 것은 '디지털 시대의 훈장'이다.

칠판에 적힌 문구도 메시지를 더한다. "기적=Σ(시그마) 열망"이다. 형식은 수학 공식이다. 그러나 입시라는 전쟁을 치르는 학생들에게는 격려의 말로 읽힌다.

훈장의 얼굴은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손 회장은 사교육을 가장 앞장서 비판해 온 인물이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사교육에 몸담은 인생을 후회한다"고 밝혔다. "사교육은 사회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이라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한국 사교육 시장을 두고는 "절벽이 다가오고 있다", "사멸할 것"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국내 최대 사교육 기업의 창업자가 사교육의 종언을 스스로 예언한 것이다. 그가 훈장으로 등장하는 순간, 이 역설도 그림 안으로 들어온다.

사교육 시장의 현실도 그의 진단을 따라가고 있다. 최근 발표된 사교육비 조사에서 전체 사교육비 총액과 참여율은 줄었다. 반면 실제로 학원에 다니는 학생 1인당 지출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학령 인구가 줄고 사교육을 받는 아이도 적어졌지만, 남은 소수를 향한 지출은 오히려 뜨거워진 것이다. 사교육이 끝물이라는 진단과 남은 이들의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현실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그림 속 에너지 드링크와 무선 이어폰이 단순한 소품이 아닌 이유다. 시장은 저물어도 그 안에 남은 개개인의 몰입과 긴장은 줄지 않았다. 서당의 훈장은 회초리 대신 온라인 강의로 학생을 만났고, 이제는 자신이 만든 산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됐다. 그 사이에도 화면 중앙에서 훌쩍이는 아이와 그를 보며 웃는 친구들의 자리는 그대로다.

재료와 기법 역시 메시지를 강화한다. 필자는 한지 위에 먹선으로 인물을 세웠다. 태블릿 화면과 이어폰 같은 현대 오브제에만 세밀한 담채를 얹었다. 구도는 원작을 충실히 따르되 소품 하나하나를 현재형으로 바꿔 시대를 옮겼다. 전통 회화의 형식 안에 오늘의 교실을 앉힌 것이다.

프로젝트는 작품 한 점에서 끝나지 않았다. 필자는 원작을 오늘의 교실로 옮겨 그리는 과정을 짧은 영상으로 담아 공개했다. 붓끝에서 훈장의 갓이 완성되고, 학생들 손에 태블릿이 쥐어졌다. 영상을 지켜본 이들은 '과거에도 온라인 수업이 있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라는 상상을 함께 나눴다. 그림과 영상으로 이어진 아트 컬래버레이션이었다.

이 그림에는 최근 또 한 겹의 질문이 더해졌다. AI가 학생 개개인의 학습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문제를 짜 주는 시대다. '누가 가르치는가'라는 질문은 '무엇이 가르치는가'로 옮겨 가고 있다. 훈장의 자리에 사람 대신 회장의 얼굴을 앉힌 이 그림은, 그 자리에 알고리즘이 들어설 다음 장면을 미리 보여 준 것인지도 모른다.

〈21세기서당(feat.메가스터디)〉에서 배움의 도구는 붓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뀌었다. 훈장도 사람에서 화면 속 얼굴로 옮겨 갔다. 그러나 몰라서 훌쩍이고, 알아 가는 순간 웃음이 터지는 감정은 몇백 년의 시차를 건너 그대로다. 사교육의 최전선에 섰던 사람이 그 종언을 예감하는 지금, 우리가 물려줘야 할 것은 시험을 통과하는 기술일까. 아니면 배우는 즐거움 그 자체일까.

한국화가 김현정은 선화예중·예고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동양화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2026년 8월 박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다. 현대 한국인의 삶과 감정을 유머와 풍자로 풀어낸 21세기 풍속도 〈내숭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으며, 작품은 초·중·고 교과서 31종에 수록되었다. EBS 〈해요화 해요〉의 ‘댕기언니’로 활동했으며 서울시와 희망브리지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현재 MBC 드라마 〈가족관계증명서〉와 작품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는 등 미술과 방송, 기업 브랜드를 연결하는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30만 팔로워와 소통하며 국내외 전시와 강연을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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