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자=안정적 신화 붕괴…가격 하락 시 ‘출구의 용이성’ 부각
현물 ETF 구조가 비트코인 가격 변동성을 오히려 키운다는 지적도 있어

|스마트투데이=심두보 기자| 2024년 1월 현물 비트코인 ETF 승인 당시 시장은 들뜬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월스트리트 거물급 기관투자자들의 거대 자금이 순차적으로 유입되면서 비트코인 시장이 마침내 '성숙기'에 접어든다는 해석이 나왔다. 기관투자자의 진입은 비트코인 가격을 안정시킬 것이고, 개인투자자들도 규제당국이 보증하는 상품을 통해 더욱 쉽게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그 예측은 부분적으로 들어맞았다. 2024년 한 해 동안 현물 비트코인 ETF로는 약 353억 6,000만 달러(약 45조 원)의 순유입이 들어왔다. 블랙록의 ' iShares Bitcoin Trust(IBIT)', 피델리티의 'Wise 오리진 비트코인 펀드(FBTC)' 같은 대형 ETF들은 불과 1년 만에 각각 500억 달러, 15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이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ETF 출시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2024년 말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현상은 다르다.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자 이 기관 자금들이 그토록 ‘안정적’이지 않다는 점이 적나라해졌다. 지난 2월 25일(현지시간) 현물 비트코인 ETF들은 단 하루에 약 10억 1,000만 달러가 유출되는 사상 최악의 일일 순유출을 기록했다.
최근의 유출 속도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11월 17일(현지시간) 기준, IBIT에서 최근 1개월 동안 발생한 순유출은 15억 달러에 달한다. 같은 기간 FBTC의 순유출 규모도 6억 9810만 달러로 작지 않다. Grayscale Bitcoin Trust ETF(GBTC), ARK 21Shares Bitcoin ETF(ARKB) 등 다른 현물 비트코인 ETF에서도 마찬가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GTBC와 ARKB의 최근 1개월 순유출은 각각 3억 8730만 달러와 1억 4980만 달러다.
◆ ‘기관투자자 = 안정적 자금’이라는 신화의 붕괴
현물 비트코인 ETF 승인 전 시장의 주요 주장은 명확했다. 기관투자자들은 장기 투자 성향을 가지고 있고, 비트코인이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은 정식 자산으로 인정받으면 대규모 자금이 꾸준히 유입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이는 비트코인 시장의 거래량을 키우고, 극단적 변동성을 완화시켜 개인투자자들도 더욱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 것이라는 논리였다.
실제로 초반에는 그렇게 보였다. 2024년 11월, 트럼프 당선인의 암호화폐 친화 입장이 알려지면서 현물 비트코인 ETF로 대규모 자금의 순유입이 몰려들었다. 이는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비트코인에 배팅을 시작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러한 ‘안정성’은 상승장에서만 유지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2024년 12월 19일 비트코인이 약 10만 8000달러의 당시 최고가에서 처음 조정을 받기 시작하자, 현물 ETF의 자금 유출이 가속화되었다. 가격이 내려갈수록 대형 기관투자자들은 오히려 더욱 빠르게 출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금(gold) ETF와의 근본적 차이를 드러낸다. 금 시장에 ETF가 도입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금 가격의 변동성은 오히려 완화되어 왔다. 하지만 비트코인 ETF의 경우 역설적으로 가격이 떨어질 때 자금 유출을 가속화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기관투자자들은 장기 투자자가 아니라 트렌드 추종자(trend follower)일 뿐"이라며 "상승장에서는 매매 거래량을 늘리고, 하락장에서는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집단으로 탈출한다"고 지적했다.
◆ ETF 구조가 만든 '양날의 검'…유입만큼 유출도 쉬워졌다
현물 비트코인 ETF의 작동 방식을 살펴보면, 그 역설이 더욱 명확해진다.
현물 비트코인 ETF가 비트코인을 매수할 때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기관투자자가 ETF를 사고 싶으면, 공인된 중개인(Authorized Participant, AP)이 현금을 내고 ETF 발행사로부터 새로운 ETF 주식을 만들어낸다. 발행사는 이 현금으로 시장에서 비트코인을 구매한다. 결과적으로 기관투자자의 수요가 비트코인 시장에서의 직접적 수요로 이어진다.
그런데 역방향도 동일하게 효율적이다. 기관투자자가 ETF를 팔기로 결정하면, 공인 중개인은 ETF 주식을 반환하고 발행사로부터 현금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발행사는 보유 중인 비트코인을 시장에 팔아서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기관투자자의 이탈은 비트코인의 직접적 매도 압박으로 즉시 전환된다.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이 구조가 비트코인 가격 변동성을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현재 현금 기반 생성·환매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이는 매일 특정 시간에 기금의 순자산가(Net Asset Value, NAV)가 산정되는데, 이 시간대를 전후로 대량의 비트코인 매매가 집중된다. 특히 대규모 환매(redemption)가 발생하는 날에는 이 시간대 주변에서 투기자들의 매도 물량이 몰려 변동성이 급증한다.
SEC가 최근 현물 비트코인 ETF에 대해 현금 대신 실물 비트코인을 직접 이체하는 '현물 환매' 방식의 도입을 검토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현물 환매 방식에서는 ETF 발행사가 비트코인을 시장에 팔 필요가 없으므로, 직접적인 매도 압박이 줄어들게 된다.
2025년 2월 6일 SEC는 나스닥이 제출한 IBIT의 규칙 변경 제안을 수용했다. 다만 최종 승인 및 실제 운영과 관련해 공개 의견 수렴 단계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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