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남방개발(KODECO), 최계월이 설립한 ‘한국 1호 해외 투자 기업’
92억 '유령 계약'·92억 '1% 담보' 대출 배임 인정... 정부, 상법상 주주권 행사
사주 일가 기업가치 훼손 방지...'물납증권 가치 보호 방안' 강하게 추진

|스마트투데이=이태윤 기자| 상속세 물납으로 비상장기업 '한국남방개발(영문약칭 KODECO)'의 최대주주(61.79%)인 정부가, 회사 경영진의 배임행위와 관련돼 소송을 걸어 1심 일부 승소를 했다. 지난 8월 정부는 ‘2026년도 물납증권 가치 보호 방안’을 의결했는데, 이번 판결은 그 시작으로 보인다. KODECO는 ‘칼리만탄의 왕’이라 불린 최계월 회장이 설립한 우리나라 ‘1호 해외 투자 기업’이다.
‘2026년도 물납증권 가치 보호 방안’은 세금을 주식으로 대신 낸(상속세 물납) 사주 일가가 기업 가치를 훼손해 주가를 떨어뜨리지 못하도록 정부가 상법상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는 취지의 제도다. 즉, 정부가 회사에 손해를 일으킨 경영진에 대해 교체와 손해배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것.
이번 한국남방개발 소송은 최대주주인 정부가 '한국남방개발' 경영진의 '유령 계약'과 '수백억대 부실 대출' 등 배임 혐의를 주장, 1심에서 이사 해임 판결을 받아낸 사건이다. 한국남방개발 측은 1심판결에 대해 묻자 “별도로 드릴 수 있는 답변이 없다”며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한국자산관리(캠코) 측도 해당 사건에 대해 “아직 소송이 진행중이기에 답변할 수 없다”면서도 “앞으로도 상속세 물납기업에 대해 ’2026년도 물납증권 가치 보호 방안’에 따라 절차대로 처리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 345억 증발... 363억 원대 '대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0월 31일, 원고 대한민국 정부가 한국남방개발의 사내이사 B와 기타비상무이사 C를 상대로 낸 '이사 해임 청구의 소'에서, B에 대한 해임 청구를 인용하고 C에 대한 청구는 기각하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소송은 최대주주인 정부가 ‘(한국남방개발)경영진이 대표이사 아들의 특수관계 회사와 불투명한 계약을 맺고, 회수 가능성이 희박한 거액의 대출을 승인하는 등 배임 행위로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며 이사 해임을 청구한 사건이다. 법원은 이 중 핵심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정부는 "피고 회사가 정관상의 사업목적('임산개발 및 판매업', '해외자원 개발업' 등)에 반하여 '이 사건 자금대여'를 하였고, 그 과정에서 충분한 담보를 확보하거나 회수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문제 삼은 총 대여 원금은 363억 원대에 달하며, 이 중 소송 제기 시점까지 미회수된 원금만 345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은 정부가 제기한 여러 사유 중, 사주일가와 관계된 인도네시아 N사를 상대로 한 92억 원대 컨설팅 계약과 92억 원대 추가 대출 건을 B 이사 해임의 결정적 사유로 인정했다.

◆ 92억 컨설팅비, 서명자는 6년 전 퇴임한 '유령 이사'
법원이 B의 배임을 인정한 첫 번째 근거는 인도네시아 비상장회사 N사와 체결한 92억 원대 '컨설팅 계약'이다. 한국남방개발은 2016년부터 N사와 '인도네시아 신규 사업기회 물색' 컨설팅 계약을 맺고, 2024년 5월까지 총 92억 2400여만 원을 용역비로 지급했다.
문제는 N회사가 한국남방개발 대표이사 박민정씨의 아들 E가 2023년 3월까지 지배하던 특수관계 회사였다는 점이다. 또, 2022·2023년 두 차례에 걸쳐 체결된 2·3차 컨설팅 연장계약서에는 한국남방개발의 대표자로 '전 이사 P'의 서명이 기재돼 있었다. 그는 이미 2016년 7월 9일에 퇴임해 대표권이 없는 인물이었다. P는 한국남방개발 설립자 고 최계월 회장의 본처 아들로 추측된다. 창업주 작고시 한때 대표이사직을 물러봤은 바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남방개발 사주일가가 대표권이 없는 상태에서 내부 계약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창업주는 1961년 재혼을 통해 현재 코데코에너지를 이끄는 정필립 대표이사를 새아들로 맞았다.
재판부는 "대표권 없는 자에 의해 체결된 위법한 계약"이라며 "당시 사내이사였던 피고 B가 대표이사 박민정씨와 공모하여 배임행위를 저질렀거나 적어도 방조의 고의로써 방조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 인도네시아에 92억 추가 송금... 달랑 6천만원 담보 '황당거래'
정부는 사내이사인 B가 N회사에 92억 원의 추가 대출을 승인하는 과정에서도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B는 2024년 1월 4일 열린 이사회에서 N회사에 70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92억 1200만 원)를 연 5% 이율로 대여하는 안건을 승인했다. 이 대출의 명목은 N회사의 인도네시아 ‘R프로젝트’ 및 ‘T법인(팔랑카라야 석산 프로젝트)’ 인수였다.
정부는 이 92억 원짜리 대출의 담보를 지적했다. 한국남방개발이 담보로 설정한 것은 ‘R프로젝트’ 주체인 ‘Q법인’의 주식 15,038주였는데, 재판부가 인정한 이 주식의 총 가치는 6383만 원이다. 대여 원금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담보를 확보하고 92억 원을 인도네시아로 내보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해당 대여금 중 일부가 인도네시아 법령상 N회사가 직접 인수할 수 없는 다른 프로젝트(T 법인) 인수에 사용될 예정이었음에도, B가 채권 회수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은 채 만연히 대여를 승인했다”며 이는 명백한 배임 행위라고 판결했다.
◆ 기타비상무이사 C, '고의' 입증 부족… 해임 기각
한편, 재판부는 정부가 B와 함께 해임을 청구한 기타비상무이사 C에 대해서는 "고의성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C는 2023년 3월 28일 취임해, '유령 계약'인 3차 연장계약과 700만 달러 부실 대출이 승인될 당시 이사로 재직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사가 고의로 법령이나 정관을 심히 위반해 회사에 손해를 가하는 경우에 해당해야 한다"며 "원고(정부)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 C가 고의적으로 충실의무를 해태하였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 정부는 어떻게 '한국남방개발' 최대주주가 됐나

이번 사건의 무대가 된 한국남방개발은 1963년 11월 29일 설립된 비상장회사다. 주 사업 목적은 '임산개발 및 판매업', '해외자원 개발업', '해외유전개발업' 등이다.
설립 직후부터 인도네시아를 핵심 무대로 삼아, 원목 개발 등 임산 자원 사업을 벌이다 1980년대부터는 유전 개발 등 에너지 사업으로 주력을 옮겨왔다. 최근에는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서 빌딩 임대업도 하고 있다.
설립자 최계월 회장은 일본 히로시마에서 성장했다. 최 회장은 5.16 군사정변 이후 귀국해 인도네시아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을 주도했다. 그는 한국 최초 해외 직접투자 사업가로 1960~1970년대 인도네시아 산림유전 개발 사업을 성공시켰다. 이로 인해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의 왕’이라 불리기도 했다.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인도네시아와의 인연으로 국내 원유 수급에도 기여한바 있으며, 당시 박정희 정부와 김종필씨를 설득해 해외원시림 개발에 나섰다. 최 회장이 이끌던 한국남방개발은 우리나라 ‘1호 해외 투자 기업’이라는 타이틀도 획득했다.
기업가로서 ‘은탑 산업훈장’, ’국민훈장 동백장’, ’인도네시아 최고공로훈장’을 수상했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최 회장은 1993년 방영된 MBC 드라마 '제3공화국'에서도 중요한 인물로 다뤄졌다.
2015년 최계월 회장이 사망한 후, 손자인 E가 한국남방개발의 발행주식 총수 100%(260,000주)를 상속받았다.
E는 상속세 중 일부를 현금 대신 주식으로 납부(물납)했다. 이에 따라 2019년 4월 16일 정부가 이 회사 주식 160,646주를 취득하며 지분 61.79%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