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주주총회철이 다가오면서 기업들도 주총 준비에 한창입니다. 주총에선 등기이사 선임을 빼놓을 수 없죠. 주총에서 승인되면 비로소 임원 선임이 공식적으로 확정되는 셈입니다. 오너가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사 선임은 이사회 추천을 받아 이뤄집니다. 물론 당사자의 사전 결재 즉, 의견 조율은 불가피하죠. 이사회의 후보 추천. 오너 경영인에 대한 사내 혹은 셀프 평가서 내용을 파헤쳐 봤습니다. (편집자주)

"미래에셋금융그룹이 국내 최고의 금융그룹으로 발전하는데 혁혁(赫赫)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최현만(63)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회장의 사내이사 후보 추천 사유입니다. 미래에셋금융그룹 2인자로서 그룹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나는 한편으로 그 과정을 이끈 자신에게도 '참 수고했다'라고 말하는 듯한 자화자찬의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최 회장은 오너인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과 동원증권에서 부장과 사원으로 만나 미래에셋증권을 창업하고, 97년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를 시작으로 99년 합병 전 미래에셋증권, 2012년 미래에셋생명, 이어 2016년부터 지금까지 미래에셋금융그룹의 주요 계열사에서 대표이사직을 수행해왔습니다.
박현주 회장을 중심으로 좌(左)재상·우(右)현만으로 불릴만큼 미래에셋을 성장시킨 주역이었던 구재상 전 부회장이 2012년 사표를 쓰고 회사를 떠났지만 그만은 박회장 곁을 꿋꿋이 지켰다. 윤진홍, 강창희 부회장도 당시 구 전 부회장을 뒤따라 박회장에게 작별을 고했다.
올해로 미래에셋금융그룹의 CEO 생활 26년차. 그룹 안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를 가진 인물입니다. 특히나 지난 2012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지난 2021년에는 대표이사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월급쟁이 증권맨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회장 승진 이후 그룹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등 명예직이 아니라 실질적인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기에 부러움과 존경은 상대적으로 더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최 회장의 이사회 추천 사유는 회장 승진 이전과 이후로 매우 다른 모습인데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회장님'에 대한 각별한(?) 예우가 느껴집니다.
최 회장이 수석부회장이던 2021년 주총 당시 이사회가 공개한 추천서에는 "최현만 후보자는 30년간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금융투자업, 집합투자업, 보험업 등 다양한 금융분야에서 미래에셋금융그룹 내 주요 금융계열사에 근무한 금융업 전문가"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년간 경영진으로 경영에 참여하여 금융 비즈니스에 대한 높은 이해와 전문성을 통해 훌륭한 성과를 이끌어 왔다"며 "후보자는 2016년 11월 최초 이사로 선임되어 다년간 훌륭한 성과로 전문성과 경영역량을 검증 받았으며, 회사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되어 이사회에서 추천한다"고 했습니다.
이번 주총에 올린 추천서 내용은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큰 차이점이 눈에 띕니다. 이사회는 우선 "최현만 사내이사 후보자는 30년간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금융투자업, 집합투자업, 보험업 등 미래에셋금융그룹 내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를 역임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이어 "다양한 금융회사에서 다년간 경영진으로 재직하며 훌륭한 성과를 이끌어 왔으며, 금융 비즈니스에 대한 높은 이해와 전문성, 폭넓은 시각으로 미래에셋금융그룹이 국내 최고의 금융그룹으로 발전하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후보자는 2016년 11월 이사회에서 대표이사로 최초 선임되어 그동안 훌륭한 성과로 경영역량을 검증받았으며, 회사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판단되어 이사회에서 사내이사 후보로 추천됐다"고 추천서를 마무리했습니다.
2년 전 썼던 추천서와 달라진 내용이 어떤 부분인지 눈치채셨나요? '금융업 전문가'는 '경영인 즉, CEO'로 위상이 확 높아진 점을 확인하셨을겁니다. 아울러 그룹 전체를 조망하고 전략을 짜서 실행하는 등 최전선에서 작전계획을 진두지휘하는 회장님 이미지가 그려지진 않나요?
앞서 최 회장은 연초 신년사를 통해 "올해 전 세계 자산 가격이 조정되는 과정에서 더 큰 성장의 기회가 엿보인다"며 "혁신적인 전략을 세워 비즈니스 초격차를 확보하고, '글로벌 Top티어' 투자은행(IB)로 도약하기 위한 도전을 계속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1360여년 전, 황산벌 전투에 나선 계백장군의 결기를 보는 듯한 건 저만의 기시감(旣視感)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