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나연 기자| 삼성전기가 3605억원 규모의 메모리 반도체용 패키지기판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하면서 내년 실적 성장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인공지능(AI) 서버 투자 확대로 고사양 반도체 기판에 이어 메모리용 기판까지 공급 부족이 확산되면서 가격 인상과 수익성 개선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증권가에서는 내년 영업이익이 4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주가는 최근 한 달간 약 16% 하락하며 실적 전망과 엇갈린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전날 글로벌 대형기업과 3605억원 규모의 메모리 반도체용 패키지기판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계약기간은 2027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년이다. 삼성전기가 지난 5월 이후 체결한 공시 기준 장기공급계약은 총 7건으로 늘었다. 누적 계약 금액은 약 4조3000억원에 달한다.
고사양 기판 넘어 메모리 기판도 공급 부족…3605억 계약의 의미
증권가가 이번 계약에서 주목한 대목은 메모리용 패키지기판까지 공급 부족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반도체 기판 시장의 공급 부족은 AI 가속기와 서버용 고사양 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FC-BGA)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이번 계약을 계기로 상대적으로 수급이 안정적이었던 메모리용 기판에서도 공급 부족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패키지기판은 반도체와 메인보드를 연결해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는 부품이다. FC-BGA는 주로 고성능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에 사용되는 고사양 기판이다. 메모리 반도체에는 주로 BT 수지 기반의 BGA·FC-CSP 계열 기판이 활용된다.
공급 부족의 배경에는 기판 제조업체들의 투자 편중이 있다. 글로벌 업체들이 수익성이 높은 ABF 계열 FC-BGA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동안 BT 계열 기판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됐다. 일부 업체는 기존 BT 생산라인을 ABF 생산라인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권민규 키움증권 연구원은 2028년까지 글로벌 ABF 기판 생산능력이 두 배 이상 증가하는 동안 BT 기판 증설은 10%대 중반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글로벌 BT 기판 업체들의 가동률은 80% 중반 수준으로 추정했다. AI 서버의 메모리 탑재량 증가와 일반 서버·스마트폰·자동차 등 적용처 확대를 고려하면 공급 부족이 2028년 이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번 계약처럼 메모리용 기판에서 연간 공급 물량을 장기계약으로 확보하는 사례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공급이 빠듯해지면서 고객사들이 향후 생산에 필요한 기판 물량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고의영 iM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장기 계약의 대상이 아니었던 제품에서 1년 단위 공급계약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고객사의 위기감이 커졌다는 방증이다"라고 분석했다.
증권사별로 추정하는 계약 품목에는 차이가 있다. 메리츠증권은 BGA 기판이 대부분이고 일부 SSD용 ABF 기판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했다. 키움증권은 서버용 고부가 BGA 중심으로, 미래에셋증권은 FC-CSP 비중이 높은 가운데 FC-BGA 물량도 포함된 것으로 추정했다. iM증권은 메모리용 BGA와 FC-BGA가 계약 대상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기 공시에는 세부 기판 종류와 제품별 공급 비중이 명시되지 않았다. 다만 증권사들은 메모리용 기판의 공급 부족과 고객사의 물량 확보 수요가 이번 계약의 공통된 배경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메리츠증권은 이번 계약 가운데 BGA 공급 규모를 약 3000억원으로 가정했다. 이는 삼성전기의 2025년 BGA 매출액의 약 26%에 해당한다. 양승수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기존 선수금 계약에 포함되지 않은 고객사들로도 가격 협상력 강화가 확산되고 있다며 다른 고객사와의 추가 공급계약 및 가격 인상 협상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가격 인상에 가동률 상승까지…기판 수익성 개선 본격화
공급 부족은 삼성전기의 판매가격과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고객사들이 안정적인 물량 확보에 나서면서 기판 제조업체들의 가격 협상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iM증권에 따르면 시스템반도체용 FC-BGA는 올해 들어 고객사별로 순차적인 가격 인상이 진행되고 있으며 분기당 10% 안팎의 상승이 반영되고 있다. 메모리용 BGA에서도 추가 가격 인상이 예상된다.
특히 가격 상승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지난 4월 메모리용 패키지기판 가격이 약 10% 인상됐을 당시에는 원재료비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반영하는 성격이 강했다. 최근에는 기판 공급 부족으로 제조업체의 가격 결정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iM증권의 분석이다.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인상은 생산설비 가동률 상승과 맞물려 이익률 개선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iM증권은 삼성전기의 올해 3분기 FC-BGA 영업이익률을 약 30%, BGA 영업이익률을 약 8%로 추정했다. 내년에는 FC-BGA가 40%, BGA도 10%대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FC-BGA는 가격 상승과 고사양 제품 비중 확대가 수익성을 끌어올리고, BGA는 가동률 상승에 판매가격 인상이 더해지면서 이익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키움증권은 이번 계약 물량이 추가적인 대규모 증설 없이 삼성전기의 국내 공장에서 생산될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서버용 고부가 BGA 기판은 기존 제품 대비 평균판매가격(ASP)과 영업이익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계약이 기존 생산설비의 활용도를 높이면서 수익성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삼성전기의 장기공급계약이 컴포넌트 사업에 이어 패키지 사업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지난 5월 이후 삼성전기는 실리콘 커패시터와 AI 서버용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고성능 인덕터 등의 공급계약을 잇달아 체결했다. 여기에 메모리용 패키지기판 계약까지 추가되면서 주력 사업 전반에 걸쳐 중장기 공급 물량을 확보했다.
미래에셋증권이 집계한 올해 장기공급계약 7건의 총금액은 약 4조3094억원이다. 이 가운데 2027년 기준 계약 금액은 약 3조5309억원이다. 증권가에서는 이러한 공급계약 확대가 향후 매출 가시성을 높이고 가격 인상에 따른 이익 개선을 뒷받침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내년 영업이익 4조원대 전망…2028년에는 7조원 넘어설 듯
실적 전망치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패키지기판과 MLCC 사업에서 가격 인상, 고부가 제품 비중 확대, 가동률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매출 증가와 영업이익률 개선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IBK투자증권은 삼성전기의 올해 3분기 매출액을 3조8313억원, 영업이익을 6668억원으로 전망했다. 영업이익은 기존 추정치인 6075억원에서 9.8% 상향됐다. 패키지 사업부와 컴포넌트 사업부가 각각 전 분기 대비 20.3%, 19.2% 성장하며 실적 개선을 주도할 것으로 분석했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를 기존 1조9559억원에서 2조1883억원으로 11.9% 상향했다. 내년 영업이익은 기존 약 3조원에서 4조4070억원으로 대폭 높였다.
미래에셋증권도 올해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기존 7063억원에서 8084억원으로 14.5% 상향했다. 2027년 영업이익은 4조8478억원으로 전망했다. IBK투자증권 전망치보다 약 4400억원 높은 수준이다.
두 증권사 모두 2028년까지 실적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IBK투자증권은 2028년 영업이익을 7조3970억원, 미래에셋증권은 7조4910억원으로 전망했다. 두 증권사의 추정치 모두 올해 예상 영업이익의 세 배를 웃돈다.
이러한 실적 전망에는 패키지기판 공급 부족과 MLCC 가격 인상 효과가 함께 반영돼 있다. IBK투자증권은 2028년 컴포넌트 사업부의 영업이익이 약 4조7000억원, 패키지 사업부는 약 1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AI 서버용 MLCC 비중 상승과 서버·AI 주문형반도체(ASIC)용 기판 확대가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전기의 이번 3605억원 계약은 증권사들이 제시한 2027년 예상 매출액 18조원대의 약 2%에 해당한다. 증권가에서는 계약금액에 따른 직접적인 매출 기여와 함께, 기판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인상 효과가 사업부 전반의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적 전망은 상향, 주가는 하락…AI 투자 우려가 발목
실적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삼성전기 주가는 최근 조정을 받고 있다. 19일 종가는 117만원으로 최근 한 달간 약 16% 하락했다. 52주 최고가인 227만원과 비교하면 약 48% 낮은 수준이다.
증권사들이 제시한 목표주가는 현재 주가를 크게 웃돈다. 미래에셋증권은 280만원, iM증권은 210만원, IBK투자증권은 175만원을 제시했다. 19일 종가 기준 상승 여력은 각각 139.3%, 79.5%, 49.6%다. 세 증권사 모두 기존 목표주가를 유지했다.
주가와 실적 전망이 엇갈리는 배경으로는 AI 인프라 투자 확대의 지속 가능성과 기업가치 평가 부담이 지목된다.
IBK투자증권은 삼성전기의 실적 추정치를 대폭 상향하면서도 목표주가를 175만원으로 유지했다. 이익 전망은 개선됐지만 비교기업인 일본 이비덴과 무라타의 밸류에이션이 낮아지면서 삼성전기에 적용하는 평가배수도 하향 조정했기 때문이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금리 인상과 대형 AI 모델의 성장 둔화 우려가 AI 관련 기업들의 주가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실적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음에도 "낮아진 밸류에이션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AI 산업에 대한 투자 확대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주요 변수다. 시장에서는 메모리 수요가 2027년 정점에 도달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IBK투자증권은 삼성전기가 발표한 패키지기판 투자 계획이 2028년 이후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고객사가 투자에 참여하고 최소 가동률도 보장하는 구조라는 분석이다.
미래에셋증권 역시 2027년부터 주요 고객사들의 물량 확보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며 공급 부족과 장기공급계약 확대 기조가 2028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대덕전자·심텍도 수혜 기대…메모리 기판 업계로 확산
삼성전기에서 확인된 메모리용 기판 공급 부족은 국내 다른 패키지기판 업체들의 실적 개선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키움증권은 관련 업종 최선호주로 대덕전자와 심텍을 제시했다. 두 기업의 기판 사업 내 BT 계열 매출 노출도는 각각 84%, 72%로 분석했다.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인상과 가동률 상승이 실적 개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메리츠증권은 대덕전자와 심텍, 코리아써키트 등이 올해 4분기부터 내년 1분기까지 추가적인 가격 인상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주요 기판 업체들이 BT 계열 생산능력 확대도 추진하고 있어 판매가격 상승과 출하량 증가에 따른 실적 개선이 동시에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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