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나연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끈 반도체 랠리가 후공정 업계로 번지고 있다. 9월 국내 주요 OSAT(반도체 조립·테스트 외주) 업체 주가는 평균 42.3% 상승했다. 같은 기간 코스닥지수 상승률(2.3%)을 크게 웃돌았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 확대로 메모리 제조사의 내부 후공정 설비가 HBM에 우선 배정되면서 범용 D램과 낸드의 패키징·테스트 물량이 외부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OSAT는 반도체 제조의 마지막 단계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산업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웨이퍼 위에 회로를 새기면, 이를 개별 칩으로 잘라 기판과 연결하고 정상 작동 여부를 검사해 완제품으로 출하한다. 반도체의 조립공장이자 검사소 역할을 하는 셈이다.
후공정은 크게 패키징과 테스트로 나뉜다. 패키징은 칩을 기판에 부착하고 외부 회로와 연결해 스마트폰이나 서버에 장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이다. 테스트는 완성된 칩에 전압과 신호를 가해 속도와 전력 소모, 불량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여러 D램 칩을 인쇄회로기판(PCB)에 올려 완제품 모듈로 조립하는 공정도 후공정에 들어간다. 인공지능(AI) 시대로 접어들며 HBM 적층 수가 늘고 패키지 크기가 커지면서 후공정의 기술 난도와 중요성도 급격히 커지고 있다.
HBM 만들수록 일반 D램은 밖으로…후공정 외주 확대
OSAT 업황 개선의 핵심 배경은 메모리 제조사 내부의 후공정 설비 재배치다. HBM은 여러 장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만드는 만큼 범용 D램보다 후공정 단계가 많고 공정 난도도 높다. HBM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장비와 작업시간이 HBM에 우선 배정된다. 이에 따라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일반 D램과 낸드의 패키징·테스트를 외부 업체에 맡길 유인이 커지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삼성전자의 HBM 생산 확대가 범용 메모리 후공정 외주화를 촉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정된 내부 생산능력이 HBM에 집중되면서 범용 메모리의 패키징, 테스트, 모듈 조립 물량이 외부 공급망으로 이동하는 구조가 한층 뚜렷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신 D램 규격인 DDR5 출하량이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HBM 중심의 후공정 라인 재편으로 범용 메모리에 할당되는 내부 생산능력은 줄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 모듈 조립에 집중됐던 외주 범위가 패키징과 테스트로 확대되는 흐름이다.
삼성전자는 DDR5 수요 확대에 대응해 자체 설비를 증설하기보다 외주 물량을 늘리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내년 삼성전자의 모듈 조립 외주 물량은 총 2조~3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양디지텍과 SFA반도체, 드림텍 등이 주요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한양디지텍의 경우 서버와 고용량 제품 비중 확대로 메모리 모듈 평균판매가격(ASP)이 지난해 개당 8718원에서 올해 상반기 1만2008원으로 38% 올랐다. 한화투자증권은 현재 생산능력 기준 연간 최대 매출을 약 1조1000억원으로 추산하며, 메모리 모듈 생산능력을 50% 늘리면 약 1조5000억원, 두 배로 확대하면 약 1조9000억원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HBM은 테스트 장비까지 바꾼다…범용 메모리 생산거점 재편
HBM 확대는 OSAT 외주 물량뿐 아니라 테스트 생산라인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HBM은 여러 메모리 칩을 적층하기 때문에 개별 칩 단계부터 불량을 세밀하게 걸러내야 수율을 유지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HBM4용 테스트 설비를 국내 주요 생산거점에 집중하면서 범용 D램 테스트 물량은 해외로 재배치되는 흐름이다.
이 과정에서 해외 거점에 범용 D램 테스트 설비를 새로 갖춰야 해 HBM4 검사 장비와 범용 메모리 검사 장비 수요가 동시에 늘어날 전망이다.
메모리 검사는 데이터 입출력 확인뿐 아니라 가혹한 환경을 견디는지 확인하는 번인 테스트를 함께 거친다. 높은 온도와 전압을 가해 초기 불량 가능성이 높은 칩을 사전에 걸러내는 방식이다.
한화투자증권은 최근 번인과 기본 동작 검사를 한 번에 수행하는 챔버형 저주파 테스터(CLT) 도입도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두 단계를 단일 장비로 처리해 검사 시간과 설비 면적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엑시콘과 네오셈이 관련 장비를 공급하고 있으며, 와이씨와 디아이는 각각 HBM·D램 번인 테스터와 패키지 번인 테스터 공급망에 포진해 있다.
대만은 이미 가격 인상…글로벌 OSAT 공급 부족 신호
OSAT 업황 개선세는 대만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 전반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대만 후공정 업체에서도 물량 증가와 가격 인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칩MOS(ChipMOS)는 D램·플래시와 기업용 SSD 패키징·테스트 수요 증가, 가격 인상, 주요 고객사와의 3년 이상 장기계약 체결 소식이 전해지며 최근 한 주 동안 주가가 21.5% 급등했다. 파워텍(Powertech) 역시 후공정 물량 증가와 가동률 개선, 가격 인상 기대감으로 9.6% 상승했다.
글로벌 대형사인 ASE와 앰코(Amkor)도 AI 반도체 수요에 맞춰 생산능력을 확충하고 있다. 다만 후공정 설비는 장비 설치 후 고객사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해 즉각적인 양산 대응에 한계가 있다. 증설 속도보다 수요가 가파르게 늘면서 기존 설비를 확보한 국내 OSAT 업체의 추가 수주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반도체 수출 실적도 긍정적이다. 9월 반도체 수출액은 603억달러로 사상 처음 600억달러를 돌파했다. 일평균 메모리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342% 늘었고 D램(595%), 낸드(413%), SSD(597%) 모두 가파른 증가세를 기록했다. 메모리 대형주의 주가 상승 탄력이 둔화하면서 전공정 장비주에 이어 후공정과 소재·소모품 업종으로 투자 자금이 이동하는 흐름도 뚜렷하다.
SFA반도체·하나마이크론 메모리 집중…두산테스나는 시스템반도체
OSAT 기업 내에서도 주력 공정과 제품군에 따라 실적 변수가 갈린다.
SFA반도체는 메모리 후공정 외주화의 대표적인 수혜주다. 삼성전자 등이 생산한 D램과 낸드를 받아 패키징과 최종 검사, 모듈 조립을 모두 수행한다. 한화투자증권은 SFA반도체를 삼성전자 범용 메모리 외주 확대의 핵심 수혜 기업으로 분류했다.
하나마이크론 역시 D램과 낸드의 패키징·테스트가 주력이다. 고객사 외주 비중이 늘어날수록 가동률이 상승하는 구조를 갖췄다. 베트남 생산거점을 통해 대규모 외주 물량을 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한양디지텍은 메모리 모듈 조립에 특화돼 있다. 삼성전자가 공급한 D램을 PCB에 실장해 서버·PC용 완제품 모듈을 만든다. 주가도 강세를 보여 최근 한 달 동안 83.8% 급등했다. 같은 기간 하나마이크론(45.7%), 두산테스나(36.7%), 네패스(39.0%), 네패스아크(32.7%) 등도 일제히 상승했다.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는 두산테스나와 네패스아크가 두각을 나타낸다. 두산테스나는 스마트폰용 모바일 프로세서(AP), 이미지센서(CIS), 전력관리반도체(PMIC) 등 웨이퍼 테스트를 주력으로 한다. 네패스아크 역시 AP와 PMIC의 웨이퍼 테스트를 담당하며 패키징 전 단계에서 불량을 선별한다.
네패스는 웨이퍼 상태에서 배선과 패키징을 함께 진행하는 첨단 기술인 웨이퍼레벨패키징(WLP)에 집중하고 있다. 에이팩트는 D램 테스트를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향후 AI 서버용 차세대 메모리 모듈인 SOCAMM2 관련 테스트 물량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꼽힌다.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