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김윤진 기자| 1896년 영국의 안과의사 W. 프링글 모건은 의학잡지에 '글자를 읽지 못하는 똑똑한 소년'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는 당시 14세 소년 퍼시(Percy)가 글자 읽기와 쓰기를 거의 하지 못했지만, 학교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이었다고 기술했다.
이 보고가 현대 의학에서 진단되는 난독증(dyslexia)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난독증은 더 이상 ‘게으르거나 노력하지 않는 아이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미국 소아 건강 및 발달 연구소(NICHD)와 국제난독증협회(IDA)는 난독증을 “정상적인 지능과 충분한 교육에도 불구하고 단어 인지, 철자, 해독 등 읽기 관련 기술에 현저한 어려움을 보이는 신경학적 학습장애”로 정의한다.
난독증의 핵심은 음소 인식 능력(phonological awareness)의 결함이다. 이는 소리를 청각적으로 구분하고 이를 문자로 연결하는 기능으로, 언어의 기초를 다지는 핵심 과정이다. 크게는 좌뇌의 언어처리 영역 발달이 상대적으로 뒤쳐지거나 반구 간 비대칭이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한 약 40%가 유전 요인과 관련이 있으며, 조기 언어 학습 과정에서의 과도한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문제는 인지 능력 전반이 아니라 ‘언어적 정보처리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수인재두뇌과학 인지심리센터의 이슬기 소장(서울대 인지과학)은 “난독증을 가진 학생들은 언어 중심의 학습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지만, 시각적 사고력이나 창의성에서 두드러지는 강점을 보인다”며 “아이의 지능이 낮은 것이 아니라, 정보처리의 경로가 다를 뿐이라는 점을 교사와 부모가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웩슬러 지능검사(WISC) 결과에서도 이러한 특성이 나타난다. 언어적 이해보다는 시각적 공간 지각, 패턴 인식 등 ‘비언어적 추론 능력’이 더 발달한 경우가 많다. 임상심리학자 김현규 박사는 “난독 아동의 전체 IQ가 정상 범위라도, 하위검사 중 언어기억력과 처리속도에서 낮은 점수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이 때문에 학력이 낮다고 오해받거나, 지능이 부족하다는 잘못된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난독증 아동은 글자 읽기 외에도 필기, 작문, 기계적 암기, 지시 따르기, 시간 인식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나 실행기능장애(executive dysfunction)와 동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난독증은 단일 증상으로 다루기보다, 아동의 ‘전체 인지 프로파일’을 다면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소아청소년정신과나 전문 클리닉에서는 정밀검사를 통해 언어인지, 작업기억, 주의력, 안구운동 등 학습 관련 인지지표를 평가한다. 경우에 따라 시각적 자극에 민감한 ‘얼렌 증후군(Irlen syndrome)’이 함께 발견되면, 색 필터 안경을 사용한 시각 보조치료도 활용된다.
이슬기 소장은 “난독증은 조기 개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발견이 늦어지면 ADHD, 학습부진, 정서불안이 복합적으로 얽혀 장기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의 학업 독려가 오히려 스트레스와 2차 정서 문제를 유발할 수 있으며, 아이의 특성을 이해하고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역사적으로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토머스 에디슨,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은 난독증적 경향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다. 글자를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사물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사고방식과 시각적 창의성은 인류의 과학과 예술을 바꿔 놓았다. 결국 난독증은 결함이 아니라 차이이며, 읽기의 어려움 뒤에는 다양한 인지적 재능이 숨어 있다. 조기 진단과 이해, 그리고 개별화된 지원이 ‘글자를 읽지 못하는 영재’를 ‘세상을 새롭게 읽는 창의적 인재’로 성장시킬 수 있다.
난독증으로 읽기와 쓰기, 암기활동에 어려움이 생기면 학습적으로도 처리속도와 시간 인식/조절 등의 문제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심리적인 위축감, 자존감 하락 등의 위험성도 커지기 때문에 정확한 문제원인에 대한 분석과 정기적인 추적 관찰, 학부모 상담까지 시기 적절한 개입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슬기 소장은 “웩슬러 지능검사(WISC)를 통해 아이의 학습수준을 점검하는 것도 도움이 될테지만, 근본적인 두뇌발달을 파악하는 두뇌기능검사 뿐만 아니라 주의집중력, 그리고 심리적 어려움을 파악할 수 있는 체계적인 종합신경심리검사를 통해서 증상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경심리검사 결과를 토대로 그리고 난독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비약물성 두뇌훈련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시청지각 훈련, 안구운동 훈련과 더불어 생체신호 분석을 통해 바이오피드백과 뉴로피드백 등을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다양한 두뇌훈련들은 난독증 문제에서 동반될 수 있는 ADHD 뿐만 아니라 학습장애, 발달지연 등에서도 맞춤형 프로토콜을 통해 소아청소년 관련 질환을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