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시티 프로젝트 ‘15분 도시’는 프랑스 수도에서의 주민 생활을 완전히 바꿀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파리가 15분 도시를 천명한 이후 이 개념은 유행병처럼 번지며 전 세계의 유명한 대도시를 물들이고 있다. 그만큼 큰 효과가 기대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영국 BBC 방송은 파리에 거주하는 프라이올리나(29세)라는 여성을 인터뷰하면서 파리 15분 도시의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그녀의 생활 양태를 전면적으로 바꾼 것은 당연히 코로나19에 따른 봉쇄였다. 물론 봉쇄는 집에서 반경 1km까지 이동이 가능한 제한적인 폐쇄였다. 이 기간 동안 그녀는 이웃과 친해지고 인근 상가를 이용하면서 단골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대형 슈퍼마켓보다 현지의 상점을 더 선호한다. 노숙자들을 위해 음식 바구니를 준비하는 시민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봉쇄됐지만 조용하게 완벽한 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BBC는 많은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파리의 15분 도시가 성공하고 있는 ‘진행중인’ 스마트시티 모델임을 설명하고 있다.
파리1대학의 혁신 전도사이자 파리 시정부의 스마트시티 특보이기도 한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는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파리 시민이 코로나19 이전의 생활 양태로 돌아갈 가능성은 제로”라고 단언했다. “주민들이 지역의 자산들에 대해 재발견하게 됐고 이를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는 것이다.
모레노는 ‘15분 도시’ 구상의 핵심 이론가로 활약하고 있다. 이는 거주자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도보 또는 자전거로 15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도시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필요로 하는 모든 것’에는 주택은 물론이고 근무하는 사무실, 레스토랑, 공원, 병원 등 사회보장성 공공 서비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모두 포함된다. 거주자들에게는 ▲살기 ▲일하기 ▲쇼핑 ▲돌봄 등 육아 ▲교육 ▲엔터테인먼트라는 여섯 가지 사회적 기능이 원활하게 수행되어야 한다.
BBC는 이어지는 특집 프로그램에서 15분 도시로 인한 변화상을 설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15분 도시는 ‘이웃 단위’로의 재구성이며 환경운동이면서 사회운동이다. 코펜하겐은 1962년에 주요 쇼핑가를 보행자 전용으로 만들면서 사회적 소통을 강화하도록 지원했다. 1980년대에는 걷기 좋은 도시를 장려하는 도시 디자인 운동 ‘뉴 어바니즘’이 미국을 휩쓸었다.
오늘날의 15분 도시는 삶의 편리성과 도보 이동성 및 공공서비스에 기초하면서도 직장, 문화활동, 사회적연결까지 고려하고 있다. 특히 친환경적인 접근을 위한 포괄적인 인프라 개념으로 발전한다. 앤 이달고 파리 시장도 ▲근접성 ▲다양성 ▲밀도 ▲편재성이라는 4가지의 주요 원칙을 핵심으로 삼았다.
2014년 이달고가 집권한 이후, 스마트시티로의 변화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달고는 오염이 심한 차량의 운행을 금지하고, 센 강 부두를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로 제한했으며, 도시 전역에 미니 녹지 공간을 조성했다. 2018년 이후, 40개에 달하는 파리의 학교 운동장이 ‘녹색 오아시스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50km 이상의 자전거 도로가 추가됐으며, 지난 달 바스티유 광장 리노베시션이 완료됐다. 앞으로 7개 주요 광장의 리노베이션이 이어지며 여기에는 3000만 유로가 투입된다. 이달고는 거리, 광장 및 정원의 유지 관리와 미화를 위해 연간 10억 유로를 추가로 지출하겠다고 맹세했다.
파리가 앞장서면서 전 세계의 다른 도시들이 15분 도시 모델에 매료됐다. 스페인 마드리드, 이탈리아 밀라노, 캐나다 오타와, 미국 시애틀이 가장 먼저 파리를 본떠 15분 도시 계획을 선언했다. 호주 멜버른은 약간의 변형을 가하면서 ‘20분 거리’ 장기 전략 프로젝트를 채택했다. 기후 변화 대응에 중점을 둔 도시연합인 C40는 코로나19 이후 회복을 위한 청사진으로 15분 도시 아이디어를 적극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회의론자들의 우려의 목소리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15분 도시가 사회적 격차를 심화시켜 빈곤층과 부유층 간의 불평등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외된 지역의 경우 교육이나 의료 등 사회적 서비스의 품질이 대폭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는 더 많은 차별과 불평등, 지역적인 낙인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파리 교외의 일부 거주자들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거대한 차별의 장벽에 둘러쌓여 있다. 영화 13구역은 파리의 숨겨진 이면이 그대로 노출된 대표적인 작품이다.
평방마일당 5만 3000명이라는 높은 인구밀도 때문에 파리의 15분 도시는 성공할 수 있지만, 런던이나 뉴욕과 같이 훨씬 더 널리 퍼져 있고 인구밀도가 낮은 도시에서는 성공하기 어려운 모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모레노 교수는 15분 도시로의 전환이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결국은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2024년까지 파리의 모든 거리를 자전거 친화적으로 전환하는 등 주요 목표는 이미 실행 중이다. 그는 “오늘날 도시가 부자와 가난한 사람, 중산층, 노동자, 술집, 사무실 등 돈과 계층으로 구분되고 있는 것은 맞다. 큰 괴리와 불평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15분짜리 도시를 이용해 공동의 선을 실현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충분한 자금과 지원이 올바른 방식으로 이루어질 때 불평등을 극복하고 모두를 위한 도시가 될 수 있다”고 재삼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