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지난 7월 12일 서울 중구 회현동 본사에서 열린 2024년 하반기 그룹 경영전략워크숍에서 임직원에게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뜻의 사자성어 "무신불립(無信不立)"을 언급하며, 고객의 신뢰 회복과 선도금융그룹 도약을 다짐했다. [출처: 우리금융그룹]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지난 7월 12일 서울 중구 회현동 본사에서 열린 2024년 하반기 그룹 경영전략워크숍에서 임직원에게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뜻의 사자성어 "무신불립(無信不立)"을 언급하며, 고객의 신뢰 회복과 선도금융그룹 도약을 다짐했다. [출처: 우리금융그룹]

|스마트투데이=김국헌 기자| 우리은행의 병폐를 바로잡을 적임자로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만 한 인물이 없다. 그는 공직에서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합병(합병 후 우리은행)을 맡았고, 금융위원장으로서 우리금융 민영화를 완수했다. 인연도 깊고, 상업-한일 파벌에 초연한 외부 인사란 장점도 더해졌다.

그런 평가는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됐다.

금융위원장 출신인 임종룡 회장이 올해 5월 금감원의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친인척 부정대출 제보 문의를 받고 나서야 그 내용을 금감원에 전달한 사실에 금융당국 후배들은 물론이고, 우리은행 안팎에서 실망 섞인 자조와 울분이 터져나오고 있다. 

임 회장의 잘못된 조용한 수습책이 회장 리더십 손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시민단체와 우리은행 출신 인사들 사이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임 회장 의 책임론이 일고 있다.    

작년 3월 말 취임한 임종룡 회장은 지난 12일 긴급임원회의 메시지에서 "올해 초 문제를 인지하고, 덮거나 비호함 없이 자체적으로 바로 잡아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올해 3월까지 "심사를 소홀히 한 것 외에 뚜렷한 불법행위가 없었다"고 해명하면서도 올해 4월 전 본부장의 성과급을 회수하고 면직 처리했다. 금감원이 6월부터 7월까지 현장 검사를 한 후에야 우리은행은 8월 초 배임 혐의로 전 본부장을 경찰에 고소했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출처: 우리금융그룹]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출처: 우리금융그룹]

임 회장은 공론화보다 내부 수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6월 공개된 180억원 우리은행 횡령 사건에 전임 회장 친인척 부정대출 사건까지 더해져 우리은행의 신뢰 실추를 우려했을 것이다. 전임자의 치부를 드러내서 선 긋기보다 조용히 털고 가려는 복잡한 심경도 읽힌다. 

DLF(파생결합펀드) 사태, 라임펀드 사태, 올해까지 이어진 숱한 횡령 사건들, 상사 갑질 사건 등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우리은행은 직원 "개인의 일탈"이라는 똑같은 해명을 내놨다. 이번에도 전 회장이 아닌 전 본부장 "개인의 일탈"로 수습하려던 모양새다. 손태승 전 회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친인척 대출을 지시한 적 없다고 부인하기까지 했다. 

다만 이는 조직에 잘못된 메시지를 던졌다. 임종룡 회장이 내놓은 2장짜리 메시지보다 임 회장의 ‘조용한’ 해결방식이 우리은행 직원들에게 더 선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우리금융그룹을 이끄는 회장인 그가 파악한 문제점은 "부당한 지시, 잘못된 업무처리 관행, 기회주의적인 일부 직원들의 처신, 여전히 허점이 있는 내부통제시스템, 이 모두가 이번 사건의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임 회장은 “부당한 상사의 지시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와 같이 원칙에 따라 처리한 직원은 조직이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원칙과 위계가 부딪칠 때, 원칙을 택하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다. 나치를 분석한 에리히 프롬은 절대권력에 굴종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라고 지적했다. 부당한 지시를 거스를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모범적인 길만 쭉 걸어온 은행원이라면 더욱 그렇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 [출처: 우리금융그룹]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 [출처: 우리금융그룹]

은행권에서 우리은행은 권위주의가 강한 조직이라고 평한다. 그런 조직일수록 권위를 가진 리더가 나서서 권위주의를 허물어야 한다. 임 회장 스스로도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을 이끌고 있는 저를 포함한 여기 경영진의 피할 수 없는 책임”이라고 자인했다.

우리은행의 권위주의를 깨지 않으면, 아무리 촘촘한 내부통제 원칙과 책무구조도를 마련해도 사건과 사고는 끊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모순되게도 권위주의 악령은 황제 경영을 한 지주 회장들보다 더 장수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전 회장 친인척의 부적정 대출에 대해 “돈을 다루는 금융인에게 사익 추구는 치명적인 단점”이라며 “일개 대리가 해도 충격적인 일인데 (전임) 회장이 했다는 것은 어떤 사람의 일탈이 아니고 그 회사 문화 자체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세대교체로도 우리은행의 악습은 사라지지 않을 거란 자조가 나올 정도로 우리은행의 병폐는 뿌리 깊다. 외부 출신인 황영기 전 회장, 박병원 전 회장도 ‘우리 문화’를 바꾸지 못했다. 임종룡 회장도 공론화 대신 ‘조용한 수습’을 택한다면 난제를 풀지 못할 수 있다.

금감원은 지난 11일 "지주 회장에게 권한이 집중된 현행 체계에서 지주 및 은행의 내부통제가 정상 작동하지 않은 이번 사안을 엄중하고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하루 뒤 금융정의연대도 논평에서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자회사인 우리은행의 경영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진 만큼 지주 회장에 대한 책임을 명백하게 물어야 한다"며 "감독당국이 대안으로 제시한 책무구조도가 실질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CEO(최고경영자) 및 금융지주 회장의 책임을 확실하게 물을 수 있는 제도 개선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스마트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