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진출을 원하는 삼성, 때마침 나온 매력적인 매물
삼성 AI 가전 기술과 히타치 일본 시장 노하우 결합에서 시너지 기대

|스마트투데이=심두보 기자| 일본 히타치제작소가 일본 가전 사업 부문인 히타치글로벌라이프솔루션즈(GLS) 매각을 추진하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입찰 과정에서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경쟁사들보다 더 높은 M&A 프리미엄을 지불할 수 있는 여력과 전략적 동기를 갖추고 있어 최종 인수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M&A 시장에서 인수 기업이 지불하는 가격은 피인수 기업의 현재 가치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한 금액으로 결정된다. 인수 기업이 더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할 수 있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인수 기업의 전략적 필요성 ▲예상되는 시너지 효과의 크기 ▲재무적 여력 등이 이에 해당한다.

① 전략적 필요성: 일본 시장 진입 교두보

삼성전자의 일본 가전 시장 도전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삼성전자는 냉장고와 세탁기 등 백색가전을 앞세워 일본 시장 공략에 나섰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의 자국 브랜드에 대한 강한 충성도와, 소니·파나소닉·히타치 등 현지 기업의 높은 경쟁력 탓에 삼성전자는 사실상 실패를 맛봤다.

일본 시장 철수 직전인 2006년 삼성전자의 일본 현지법인 총 매출은 1조엔에 달했으나, 이 가운데 소비자 가전 비중은 1% 미만이었다. 이 매출도 대부분 법인 대상 B2B 매출이었다. 결국 삼성전자는 2007년 11월, 경영 효율화를 이유로 일본에서의 가전제품 판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전자는 약 30년 만에 일본 백색가전 시장에서 철수한 것이다.

이 때문에 히타치 GLS는 삼성전자가 일본 백색가전 사업을 재개하기에 적합한 M&A 타깃으로 여겨진다. 히타치 GLS가 보유한 일본 내 유통망과 히타치라는 브랜드 파워가 삼성전자가 원하던 요소라는 평가가 나온다. 게다가 히타치제작소는 5년간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인수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삼성전자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으로 해석되고 있다.

② 기대되는 시너지: 다른 시장에서 입증된 경쟁력

삼성전자는 백색가전 부문에서 글로벌 최상위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시장조사기관 JD파워(J.D. Power)가 발표한 ‘2024 생활가전 소비자 만족도 평가’에서 11개 전 품목 중 주방가전(7개)과 세탁가전(3개) 등 총 10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JD파워 평가는 최근 1년간 실제로 가전제품을 구매한 1만5,0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내구성, 성능, 사용 편의성, 디자인 등 7개 항목의 만족도를 조사해 브랜드별 순위를 발표한다.

삼성전자는 미국 생활가전 시장에서 21%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가전 시장이다. 유럽 시장에서도 삼성의 위상이 높다. 삼성전자는 독일 냉장고 시장 점유율 1위다. 이탈리아 시장에서도 삼성은 전체 가전 시장에서 1위를 기록 중이다. 이외에도 삼성은 중동, 아프리카, 러시아 등지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어려움을 겪는 시장은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사실상 점유율이 전무하며, 중국에서는 현지 업체에 밀려 부진하고, 동남아와 인도 시장에서는 이제 막 성장을 시작한 단계다.

즉, 히타치 GLS M&A는 삼성전자가 오랜 기간 고전한 일본 시장에서 단번에 의미 있는 점유율을 확보할 기회다. 특히 삼성전자가 일본 외 시장에서 쌓은 성공 경험과 기술력은 히타치 GLS와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핵심 자산이다.

삼성의 AI 가전 기술과 히타치가 가진 일본 시장 노하우가 결합되면 프리미엄 스마트 가전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은 냉장고의 'AI 비전 인사이드', 세탁기의 'AI 기반 세탁물 인식', 에어컨의 '사용 패턴 학습' 등 AI가 접목된 차세대 가전 제품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③ 재무적 여력: 막강한 현금 동원력

삼성전자의 M&A 경쟁력 중 하나는 막강한 현금 동원력이다. 현재 히타치 인수전에는 삼성전자 외에 LG전자, 터키의 아르첼릭, 중국 가전업체 등 7~8곳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삼성전자보다 자금력이 떨어진다.

3월 31일 기준 삼성전자는 53조원(연결 기준)이 넘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단기금융상품도 51조원이 넘는다. 둘을 합치면 100조원이 넘는 단기성 자금을 보유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조(兆) 단위의 M&A 경험도 풍부하다. 2016년 하만인터내셔널을 80억달러(약 9조원)에 인수했고, 올해에도 독일 플랙트그룹을 15억유로(약 2.4조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히타치 GLS M&A의 추정 규모는?

니혼게이자이신문과 마이니치경제 등 여러 현지 매체에 따르면, 히타치 GLS의 M&A 규모는 1,800억~2,200억엔으로 전망된다. 이는 한화로 약 1조7,000억~2조1,000억원에 해당한다. 인수 경쟁이 치열해지면 실질적인 M&A 규모는 더 커질 수도 있다.

한편, 글로벌 M&A의 주축인 글로벌 사모펀드(PEF)는 이번 히타치 GLS M&A에서는 핵심 플레이어가 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5년 고용 보장이 인수 조건으로 제시된 점과, 백색가전 시장에서 글로벌 규모의 경제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히타치 GLS는 지속적으로 몸집을 줄여왔다. 2020년 12월, 해외 가전사업을 터키의 아르첼릭에 매각했다. 아르첼릭은 히타치 GLS 해외사업 지분 60%를 약 3억달러(약 3,200억원)에 매입했다. 이 합작법인 '아르첼릭 히타치 홈 어플라이언스(Arcelik Hitachi Home Appliances)'는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히타치 브랜드 가전제품의 제조·판매 및 애프터서비스를 담당한다. 이 회사는 현재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서 사업하고 있으며,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해외 가전사업 매각 이후, 히타치는 에어컨 사업도 정리했다. 2024년 7월 23일 체결된 계약에 따라 히타치 GLS는 공조 합작법인 JCH(Johnson Controls-Hitachi Air Conditioning Holding) 지분 40%를 약 14억6,000만달러에 매각했다.

히타치는 현재 일본 백색가전 시장에서 3위권이며, 세탁기 등 일부 주요 품목에서는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 백색가전 시장에서 압도적 1위는 파나소닉으로, 시장 점유율은 약 3분의 1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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