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투데이=김나연 기자| 1991년, 한국 주식시장이 외국인에게 완전히 개방되기도 전부터 그는 한국의 가능성에 투자했다. 이후 15년간 ‘코리아펀드’를 운용하며 펀드 규모를 10배로 성장시키고, 시장 수익률(KOSPI)을 연평균 10% 이상 뛰어넘는 기록을 세웠다. SK텔레콤과 삼성전자에 대한 장기투자로 각각 140배, 70배의 수익을 올리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한국 시장 최초의 뮤추얼펀드를 성공적으로 이끈 존 리 ‘존 리의 부자학교’ 대표. 한국 경제의 부흥기를 최전선에서 경험한 그가 지금 한국 경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한국 경제의 부흥기를 최전선에서 경험한 그는 우리가 ‘코스피 5000’이라는 숫자 너머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5000포인트를 찍고 다시 3000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며 “앞으로 10년, 20년에 걸쳐 1만, 2만까지 꾸준히 우상향하는 견고한 기반을 지금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경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 부동산에 묶인 돈과 정체된 산업…‘돈맥경화’ 걸린 한국 경제
존 리 대표가 진단한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심각한 ‘돈맥경화’ 현상이다. 경제 성장의 혈액이 되어야 할 자금이 돌지 않고 고여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돈맥경화의 가장 큰 원인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가계 자산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내외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 비율이 늘었지만, “주식하면 망한다”는 인식은 여전히 공고하다. 개인들의 주요 투자처는 지금도 부동산이다. 그는 “일본도 부동산 버블로 무너졌고, 중국은 이미 주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금을 옮기고 있다”며 “한국도 금융자산 중심으로 개편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우리나라 가계 순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5%에 달한다. 한국예탁결제원 자료에서도 상장사 개인주주는 2019년 612만 명에서 2021년 1374만 명으로 급증했지만, 2024년에는 1410만 명으로 사실상 정체됐다. 부동산 쏠림은 여전하고, 주식 투자 저변 확대는 멈춘 셈이다. 신규 자금이 시장으로 유입되지 않는 한, ‘코스피 5000’ 시대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신규 자금이 시장에 유입되지 않는 또다른 원인이 있다. 바로 대기업 중심으로 고착화된 산업 구조다. 수십 년째 대기업 중심으로 굳어진 산업 구조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존 리 대표는 “한국 증시는 새로운 기업이 상장해도 시가총액 상위권에는 여전히 전통 대기업이 포진해 있다”며 “이런 구조에서는 시장의 파이가 커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한국 증시는 성숙기에 갇혀 있어 외국 자본의 유입을 기대하기 어렵다. 금융의 중심지 미국에서는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계속 탄생하며 자본의 순환 구조를 만들어간다.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는 국내외 자본이 유입되며 경제와 증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여전히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에 머물러 있다. 존 리 대표는 “외국 자본은 성장의 여지가 있는 시장을 찾는다”며 “지금 한국은 새로운 기업이 자라지 않으니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수백 조 원에 달하는 연기금마저 국내 증시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그는 “미국 증시를 떠받치는 가장 큰 주체는 연기금이지만, 한국의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대부분 채권이나 예금에 묻혀 사실상 잠자고 있다”며 “이 돈이 국내 기업으로 들어와야 자금 순환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 막혀버린 자본의 핏줄, 연금·금융·노동 개혁으로 다시 ‘콸콸’
이처럼 수십 년째 꽉 막혀버린 돈줄을 어떻게 뚫을 수 있을까? 존 리 대표가 제시한 첫 번째 열쇠는 ‘연기금의 역할 변화’다. 그는 “연기금이 단순히 수익률을 좇아 해외 기업에 투자하는 단기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국내 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춰주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이익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금이 시장에 돌기 시작했다면, 다음은 혁신 기업이 탄생하고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존 리 대표는 두 가지 ‘어려운 개혁’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첫째는 금융 시스템의 개혁이다. 그는 “지금의 금융 구조에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은행 대출로는 한계가 있다”며 “은행은 담보가 없으면 돈을 빌려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자금이 부동산으로만 흘러가고, 혁신 기업은 자금을 얻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다.
반면 자산운용사는 투자 철학이 다르다. 그는 “블랙록 같은 자산운용사는 아이디어와 가능성에 투자한다”며 “이런 문화가 새로운 기업을 탄생시키고, 시장의 활력을 키운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도 자산운용사가 중심이 되는 구조로 바뀌어야 부동산에 갇힌 자금이 기업으로 흘러가고, 그 자금이 다시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둘째는 노동 유연성이다. 존 리 대표는 “해고가 쉬워야 노동자에게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성장할 때는 더 많은 사람을 뽑아야 하고, 반대로 위기를 맞았을 때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며 “이 과정이 막혀 있으면 기업이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일자리를 지키려는 법이 오히려 일자리 자체를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그는 노동 유연성이야말로 기업이 성장 단계에 맞춰 인력을 조정할 수 있는 ‘숨통’이라며 “이를 통해 자금과 기업이 함께 움직이는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강조했다.
존 리 대표는 이 같은 구조적 변화가 맞물릴 때 비로소 한국 경제의 체질이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금융 구조의 전환과 노동 개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며 “그래야 한국에서도 스타벅스나 아마존 같은 혁신 기업이 탄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되면 부동산에 갇힌 자금이 증시로, 증시의 자금이 다시 기업으로 흘러가는 건강한 순환이 만들어질 것”이라며 “이 변화가 실천된다면 ‘코스피 5000’은 숫자가 아니라 일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때 비로소 한국은 아시아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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