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투데이=심두보 기자| 국민연금이 결국 칼을 뽑았다. 서울 강남의 랜드마크 ‘센터필드’의 운용사(GP)인 이지스자산운용을 교체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그간 시장을 달궜던 미스터리(왜 만기 연장도, 매각도 반대했는가)가 풀렸다. 국민연금은 車(Asset)를 바꿀 생각이 없었다. 단지 운전대(GP)를 잡은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국민연금이 수조 원대 자산의 부동산 운용사를 임기 도중 교체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LP(출자자)가 신뢰 관계가 깨진 GP를 교체하는 것은 자본시장에서 드물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명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타이밍’과 ‘질서’라는 점이다.
현재 국민연금 앞에는 9월 대출 만기라는 시한폭탄이 놓여 있다. 1조 2,000억 원에 달하는 거대 펀드의 운용사를 교체하는 작업은 결코 간단치 않다. 기존 GP와의 계약 해지부터 신규 GP 선정, 자산 실사 및 이관, 그리고 가장 난관인 대주단의 동의 절차까지 첩첩산중이다. 통상 3~6개월이 소요되는 이 복잡한 방정식을 풀지 못하고 9월을 넘긴다면, 멀쩡한 1등 자산 센터필드는 기한이익상실(EOD)이라는 파국을 맞게 된다.
해외 사례를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이나 텍사스교직원연금(TRS)이 ‘무책임 해임권(Removal without Cause)’을 발동할 때 최우선 원칙은 ‘자산 가치의 보존’이다. 그들은 교체 과정이 자산 가치에 1%의 흠집이라도 낼 것 같으면, 차라리 ‘불편한 동거’를 유지하며 최적의 엑시트 타이밍을 조율한다. 교체 과정에서 대출 기관의 불안을 자극해 금리 인상이나 상환 압박을 초래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국민연금의 행보는 아슬아슬하다. 일각에서는 이지스자산운용의 잠재적 인수자가 중국계 자본인 힐하우스캐피탈로 거론되자, 거버넌스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정무적 판단’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명분이 아무리 훌륭해도 결과가 손실이라면 자산운용 세계에서는 실패다. 자칫 감정 싸움이나 정무적 논리가 앞서 자산 자체가 볼모로 잡힌다면, 이는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누가 운용하느냐’보다 ‘누구를 위해 운용하느냐’에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는 국민의 노후 자금이다. 투명한 설명 책임(Accountability)을 다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운용사 교체카드를 강행한다면, ‘자본시장 대통령’이라는 국민연금 스스로가 시장의 질서를 흔든 ‘갑질의 흑역사’를 썼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스튜어드십(Stewardship)이란 본래 ‘큰 저택의 집사(Steward)’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집사가 집 주인의 재산을 성실하게 관리하고 그 가치를 높이는 임무를 묵묵히 하듯이 기관투자자가 고객의 자산을 맡아 관리하는 ‘수탁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을 뜻한다. 정무적 판단이 경제적 실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 그것이 9월 만기 전까지 국민연금이 증명해야 할 진정한 스튜어드십의 도리다.
지금 국민연금에 필요한 것은 정교한 ‘출구 전략’이다. 대주단을 설득해 EOD 유예를 이끌어내고, 인수인계가 ‘초치기’가 되지 않도록 치밀한 타임라인을 가동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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